몸이 말을 걸어왔다. 쉬어 주세요! 하고.
코로나 때문에 학생들은 올 여름에 방학이 없다고, 방학을 해도 단 며칠이라고 한다.
온라인 수업으로 집에 머물게 된 우리집 潤이하고 河도, 일상이 갑자기 혼란스러워 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해오던대로가 아닌, 아침 일어나는 시간에서부터 기존 질서가 헝크러진 것 아니었을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오랜만에 학교종이 울렸고, 매일은 아니지만 학생들이 가방 매고 학교로, 교문으로 들어가는 활기찬 모습을 볼 수 있어 감사했다.
쉰다는 것, 그것은 자신의 신체와 정신을 위해 매우 요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쉬지 않고 계속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학대이며 방임이 아닐 수 없다. 성경에 보면 여호와 하느님도 엿새동안 일하시고 7일 째, 일요일은 안식일로 정하셨다.
쉬여야만 하는 사정인데도 쉬지 않는 것, 이것은 거의 병증에 가깝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쉬지 않는 병, 이거야말로 너무나 바빠서 쉬지 못하는 사람에 비하면 좋은 조건일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시도 쉬지 않고 자신을 혹사시키는 사람은 미련하다 할 것이다.
이제까지 살아온 여정을 돌아보면 내가 바로 그 미련한 사람이었다. 책상에 앉지 않으면 뭔가 빈 것 같은, 무엇인지 모르게 심리적으로 불안감을 느끼는 것, 집밖에 나가 있더라도 얼른 집으로, 책상으로 돌아가야 할 것처럼 서두르는, 그런 사람이 다른 누구가 아닌 바로 나였다는 사실이다.
"자기가 없네요! 한 순간도 자기 삶을 살지 않았어요. 이재부터라도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보세요. 인생은 한 번 왔다 가는 것인데 어찌 남의 삶속에서 허우적거리다 그냥 사라진단 말입니까." 생시의 B선생님이 나에게 던진 화두였다.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한 지붕, 한 공간, 한 밥솥의 관계에서 자신의 삶. 타인의 삶이 따로 있다는 말인가. 어리둥절했다.
아! 이제야 알 것 같다. 내 일을 찾지 못하고 남의 일에 얽매여서 허둥거렸다는 사실을. 남의 일이라니! 처음 들을 때는 생소하고 이해 곤란한 이야기였다. 갓 태어난 아기도, 어른도 모두 독립된 개체이다. 독립과 독립이 어울려 소통하며 협력하고 조화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진정한 삶이 아닐까.
이정표도 확인하지 않고 쫓겨온 인생, 이제라도 정신을 수습하여 본연의 나. 나의 자리로 돌아가는 일이 중요하다. 코로나19로 인하여 학생이 있어야 교사가 있다는 깨우침을 얻듯, 내가 있은 다음에 남도 존재할 것이다. 潤이도 河도 등교와 더불어 제 자리를 찾았을까.
쉬어 주세요! 굳이 제주도까지 원정 갈 것도 없어요. 빈 방에 잠시 조용히 누워 생각에 잠겨보세요. 보일 거얘요. 나의 참 모습이, 내가 걸어가야 하는 나만의 길이. 내가 나에게 격려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