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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는 피어나고

능엄주 2020. 6. 29. 12:11

능소화는 피어나고-

             - 인사동 나들이

 

코로나19로 전화 조차 뚝 끊긴  요즘, 친구가 전화했다.

만남의 횟수가 줄어들더니 전화도 문자도 카톡도 시들해진 것일까. 우리는 소원하게 지낸 게 6개월이었다.

"어치피 코로나 이거 길게 갈거니까 그냥 마스크 쓰고 나와! 다들 그렇게 다닌다고."

서울 도심에 살고 있는 친구는, 자주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는 3호선 라인에 사는 나와는 코로나19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 것 같았다.  가까운 병원, 평소에 자주 이용하던 의료시설에 확진자가 발생 -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나하고는 대조적이었다.

 

인사동의 오전은 한적하고 서늘했다. 거리에 나온 사람들이 극히 적었다. 일요일이어서 그럴까.

우리는 갑자기 넓어보이는 인사동 거리를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찰보리밥에 코다리 조림이 주메뉴인 식당에는 우리가 첫손님이었다. 간이 잘 맞는, 맵고 칼칼한 코다리조림으로 아침겸 점심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거리로 나왔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임대문의'를 써붙힌 상점이 많을까. 늘 손님들이 붐비던 보물가게뿐 아니라 여기 저기 문닫은 기게가 꽤 많이 보였다. 1,2년 전에 종로와 광화문에서도 '임대문의'가 숱하게 보였는데 여긴 또 무슨 일일까? 한 가게가 가고 다른 가게가 오는 것일까. 거리는 종래 보아오던 번잡하고 활기가 돌던 그런 거리가 아니었다.

 

"혼자서는 그게 한두 번이지 집에서 나와 걷는 것도 잘 안되더라"

혼자서 집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친구는 '임대문의' 를 붙인 문닫은 점포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경기의 불투명은 사람들이 모이지도 만나지도 않는데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었다.  집밖으로 나와야 보이는 것들이 자취를 감춘 것일까. 눈에 보여야 구매하고 싶은 충동도 생기고 이곳저곳 관심을 가지고 돌아볼 게 아닌가. 사람들을 만나야 삶의 활력소도 되고 의욕이 충만할 것이었다.

 

북촌마을을 지나 정독도서관까지 천천히 걸어가서 등나무 그늘 벤치에 앉았다. 먼 빛으로 활짝 핀 능소화 넝쿨이 보였다. 코로나19도, 경기 하강도 아랑곳없이 능소화꽃은 화려하게 피어나 그 요염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옛 경기고등하교 터에는 나무그늘마다 여러개의 벤치가 있어 수많은 사람들이 앉아 쉬고있었다. 그 풍경이 한가로워 보였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감지되는 공기의 흐름은 아래로 갈아앉은 것 같았다. 여기 까지 오는 동안에도 '임대문의' 문닫은 가게를 보았기 때문일까. 중소 상인들이 가게문을 닫고 어디로 살길을 찾아갔을까. 

 

"힘든 사람들이 얼마나 더 많을까?"

오랜만에 만에 만난 친구의 중소 상공인들을 염려하는 여유로움에 나는 별로 덧붙일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코로나 19로 발등에 불 떨어진 사람들이 어찌 그들 분일까. 고 윤보선 대통령 저택이 있는 골목을 돌아나오는 그곳에는 제철 만난 능소화가 활짝 피어나 고풍스런 담장에 넝쿨을 늘어트리고 있었다. 오가는 젊은이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순서를 기디리듯 걸음을 멈춘다.  

 

어둑한 시간 집으로 돌아오는 마음이 무거웠다. 조속한 시일내에 코로나19가 사라지기를 바랄 수 있을까? 서민들의 척박한 삶이 한 여름에 능소화가 피어나듯 활짝 밝아 질 날이 올것인가.  땡볕을 마다하고 오르내린 모처럼의 인사동 나들이가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타인의 걱정이 내 걱정이고 내 걱정이 타인의 걱정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