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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 구하기/변영희

능엄주 2020. 5. 14. 21:28

바람부는 저녁 마트로 갔다. 대형마트에서는 재난소득금을 사용할 수 없다고 하니 중간쯤 되는 마트로 갔다. 우리 동네는 유감스럽게도 그 마트 한 곳 외에는 구색을 제대러 갖춘 그만한 규모의 마트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로 내려가고 올라오고 했다.  지하 마트가 어지간히 붐빌 것 같앗다. 그냥 갈까. 나중에 다시 올까. 코로나 19 이후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가면 괜히 겁부터 났다.


한 번 집 나서기는 쉬우냐. 일단 들어가 볼까. 혼자 자문자답하면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말 그대로 복작복작이었다. 카운터 앞에는 물건 구입이 종료된 사람들이 삐뚤삐뚤 줄서 있어, 카트를 끌고 다니기가 불편했다. 대형마트에 비해 통로가 좁고 사람은  더 붐볐다.


나는 내가 적어온 목록보다 사고 싶은 게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주색 양파를 만져보니 단단한 게 농약을 덜 먹은 놈 같았다. 요즘 채소나 과일은 사온지 이틀만  지나면 껍질은 가죽처럼 두텁고 질긴데 안은 곯아 있거나 썩는다. 예쁜 포장지에 가린 물건들은 살 때부터 물컹거리는 것도 있다. 자색 양파를  가트에 담았다가 금방 꺼냈다. 목록에 없는 것부터 사게 되면 예산초과의 염려가 있다. 그리고 하얀 색 양파가 집에 있기 때문이었다. 육고기 전을 지나서 건어물 매대로 이동, 영광 굴비를 보러 갔다. 꽁꽁 얼기만 했지 꾸덕꾸덕 마른 게 굴비로 알은 나는 그걸 사야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다가 얼른 가트에 넣었다.


카운터 직원이 밤이 늦어서야 배달을 해준다고 하면서, 굴비가 녹아 상하면 책임 안 진다고 나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그건 들고 가세요! 였다. 그것 뿐 아니고 쌀포대만 두고 다른 것들은  다 들고 가란다. 내가 산 물품을  밖에 내놓고 가면 밤이 늦어서야  배달해준다는 것이다 . 나는 그 비린 물건을 들고 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오른 손목이 저려왔다.   


 나라에서 준 거금?을 이렇게 헤프게 사용해서 될까 은근히 걱정도 되었다. 아끼려해도 이미 물건값이 팍 뛰어갖고 있는 것이었다.

"엄마! 뭘 그리 곰곰 생각을 해?  그냥 사와요! 족발도 큰 걸로 하나 사오시고~"

딸애는 물건 값이 비싸고 싸고보다 무엇을 사오는가에 관심이 집중돼 있는 모양같았다.

"그래도 그렇지 소중한 돈을 이렇게 써도 돼?"

먹이 구하는 일을 대강  끝내고,  이미 녹기 시작한 덜 마른 조기 한두름과 무거운 몇 가지를 들고 오면서  돈 쓰기도 쉬운 일이 아니고, 벌기는 더 어렵고,  무수한 세월을 이렇게 살아왔구나! 사는 거 참 시시하다 싶었다.


집에 오자 인터넷으로  고향' 노래를 들었다. 먹이를 구하러 다닐 때마다  고향집에 둥그렇게 들러 앉아서 굴비 가시를 바르던, 두부 송송 썰어넣고 뚝배기에 끓인 명란 찌개가 생각났다. 음식은 추억을 부르고 추억을 창조한다. 그리고 그 추억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것이 된다.


누구와든 마주 앉아 식사를 할 수 없는 현실이 서글펐다. 식사는커녕 모임과 행사에 참여도 못하고 봄이 간다고 생각하니 더욱 고향집 대청마루에 모여 앉앗던 그 때가 그리웠다. 언제나 고향은 그리움이다.

비상시기에 먹이를 구하는 일, 오늘은 이 정도로 마무리한다. 사는 게 별거냐. 살아지는는대로 사는 거다.(201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