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사태로 올 해 초파일 행사는 윤 사월 초파일로 변경했다고 <가피> 4월호에 통보되었다. 그날이 5월 30일이었다.
그러면 아직도 멀었네. 연등은 천천히 달아도 되겠구나 생각했다. 하도 안 나가 버릇 하니까 외출이 영 성가신 게 돼 버렸다.
만날 사람도, 모임도, 병원 진료도, 무기한 연장해버린 것이다. 급할 게 뭐 있나. 느슨히 풀어지고 무기력해지는 나날이었다. 그저 습관적, 의무적으로 식생활 위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살아온 것이다. 코로나 때문이었다.
연등을 달기 위해 일부러 , 다만 그 볼일 하나로 마스크 쓰고 나가기보다는 그냥 온라인으로 연등을 신청할까.
아니다! 이렇게 연등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면 직접 나가서 연등을 달고 와야한다. 귀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안일하다.
외출이 귀찮다고 여긴것 자체가 불경스럽게 여겨졌다. 갑작스럽게 외출 준비를 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오전 내내 컴퓨터 켜놓고 공부했으니 피곤했다. 피곤한 것은 지하철에서 만회하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지하철은 온통 마스크다. 하늘색 흰색, 분홍색, 어떤 것은 예쁜 문양으로 새로 출시된 것 등, 가지각색의 마스크를 쓴 승객속에 나는 검정색이었다. 생년 숫자에 따라서 조달하는 마스크보다 착용감에 있어서, 아들이 나에게 준 검정색 마스크는 숨쉬기가 덜 답답한 감이 있었다.
눈을 감는다. 마스크 쓰고 무엇을 더 보겠다는, 듣겠다는, 그런 생각은 거두었다. 볼 것이 무엇인가. 들을 것은 더 없다. 검정마스크로 얼굴 대부분을 가려놓으니 오히려 심신이 갈앉는 느낌이 든다. 검정색의 마술이었다.
어릴 적, 작은 중소도시 내 고향의 초파일을 기억했다. 해질 녘 신작로를 가득 메우고 수많은 시민들이 엄숙하게 걸어가는 모습. 그들은 손에 손에 연등을 들었다. 어린이들에게 신기한 그림이었다. 연등행렬은 줄을 지어 우리집 앞을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그 행렬에 끼어들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지켜보는 가운데 나 혼자 돌출행동을 하기는 좀 그랬다. 하염없이 연등행렬을 바라보기만 했다. 신작로를 메운 사람들 손에 든 연등은 각가지 색깔의 연등, 크기도 모양도 각각 다른 연등이었다.
"가족수대로 이름을 쓰고 소원을 적으세요!"
연등 접수를 받는 보살님이 일러줬다. 우리는 연등을 접수하고 초파일을 기다렸다. 다른 날보다 일찍 절로 간다. 내 연등, 우리 가족의 연등이 어디에 있나 찾는다. 천왕문 있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큰 법당 앞뜰, 약사불이 모셔진 감로수 주변, 자비전으로 오르는 계단. 다른 많은 가족들과 어울려 연등찾기는 어른도 아이들도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찾았다. 가족의 이름자를 확인하고 그 연등 아래 바위에 앉아 밤을 지새운다. 어린 날 크리스마스 이브에 교회유치원에서 밤을 새우듯, 절에서도 그 한 밤을 거룩하게 지새는 것이다. 바위가 차갑게 느껴지면 담요를 깔고, 어깨가 시리면 담요로 몸을 두른다. 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이렇게 많은 별떨기는 처음 본다. 도시에서는 별도 달도 보기 어려운데 깊은 산중에는 온통 별세계다. 멀지 않은 숲에서 밤새가 울고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명상의 시간이다. 참회와 감사의 시간이라할까. 그 밤 내내 중생들의 영혼은 상서로움으로 가득찬다.
"찾았어! 나도 찾았어요!"
우리보다 늦게 온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연등을 찾았노라고 고함을 치면 그 소리 또한 환희심을 부추겼다. 어릴 때 소풍가서 보물을 찾듯, 그 수백 수천의 연등이 하늘의 별보다 더 반짝이는 밤, 바람불면 연등이 흔들리지만 불날 걱정은 없다. 산바람에 연등이 찢어질 염려도 없다. 오직 부동의 자세로 자기자신과 대면하는 것이다. 사바세계에서 묻혀온 때와 먼지를 제거하는 밤인 것이다. 애기들은 순하게 잠들고 어른들은 잠들거나 기도하거나 그 행동거지가 자연스럽다. 하늘에 별, 땅엔 오색 연등이 다채로운 밤. 깊은 산, 청정지역 큰 바위에 가부좌 튼 것만으로도 평화였던 밤.
그때를 생각하면 마스크 쓰고 나가는 게 번거롭다고 뭉그적거릴 수가 없다. 달려가 연등 달고 돌아오는 길은 흐뭇했다. 마음가벼운 외출이었다고 여긴다. 연등의 의미를 새삼 돌아보지 않아도 좋다. 자연과 조화된 사찰, 자연이 좋고 절이 좋은 이유다.
우리는 이미 이루었다. 지금도 이루고 있다.
오월 푸른 날, 능엄주, 정연심, 내 연등이 창공에 나붓긴다. (202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