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학병원에서 검사를 일찍 끝낸 나는 마로니에 공원 주변을 흐르는 서울특별시와 종로구의 합작품 대학로의 '실개천'을 보러갔다.청계천의 물줄기가 시원하게 흘러내린 사연이 불과 얼마 되지 않았는데 대학로에도 시냇물이 돌돌돌 흘러가고 있었다.
한참 중국어 열풍에 빠져서 공부하러 이 길을 오가던 그 당시에는 프라타너스 그늘아래 벤치가 있었고, 오갈데 없는 노숙자들이 지저분한 이불을 온몸에 말고 대낮에도 누워있곤 했던 자리였다.비교적 인도의 폭이 넓은 탓인지 이불 말고도 시커먼 보퉁이며 간단한 취사도구도 있어 라면 정도는 그냥 그 곳에서 끓여먹는 눈치여서 그곳을 지나다니는데 거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노숙자들이 여름철 숙소로 삼거나 취사 현장으로 삼았던 나무벤치는 간곳 없고 무슨 고산에서나 봄직한 기묘한 바위며 희귀 식물같은 화초 종류, 그리고 규모가 크지 않은 연못에는 작은 폭포가 있다. 물풀같은 것도 심어서 나름대로 도시의 품격을 격상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 대학로 실개천은 과거 북악산에서 성균관을 지나 대학로로 흘렀던 흥덕동천의 물길이 흘렀던 곳' 이라는 동판에 새긴 글을 읽고서야 이곳에 왜 실개천이 만들었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흥덕동천은 북악산의 남서쪽에서 흘러내려와 대학로를 지나 청계천으로 합류, 그 흥덕동천의 모습을 재현했다고 하는 설명을 읽으며 복원하고 재현할 것이 많은 서울 거리에 호기심이 동했다. 그 시냇물은 거의 서울대학교사범대학 부설초등학교가 있는 이화동 사거리까지 연결되는 모양이었는데 물이끼가 시퍼렇게 끼어있고 때가 겨울철이라 약간은 썰렁한 느낌을 주었다. 어느 해 늦은 가을 날 L선생님 일행과 대학로의 프라타너스 가로수길을 걷던 일이 생각났다. 넓고 길게 이어진 그 길은 둘씩 셋씩 걷기에 아주 좋은 거리였다. "엄마 뛰어!" 갑자기 맑은 소리가 내 곁에서 울려왔다. "야아! 그래 뛰자!" 또 한 소리가 신종풀루 방어용 마스크 착용으로 어눌해진 내 청각을 자극해왔다. 네살 정도의 여자 어린이가 엄마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가고 있는 게 보였다.나 역시 얼결에 그 예쁜 모녀의 뒤를 따라 파란 불이 한 개씩 줄어들고 있는 횡단보도를 향해 뛰었다. "내가 일등!" 실개천이 있는 데서 반대 방향으로 건너온 여자아이가 두 손을 쳐들고 좋아라 한다.그들도 나처럼 실개천을 보러 온 것일까. 곤색 반코트에 스커트 그리고 검정색 머플러와 갈색 부츠 차림이 제법 폼 나는 어린 숙녀였다. 나는 그 모녀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길 위에 서 있었다. 횡단보도를 언제나 엄마와 딸이 함께 구호?를 외치며 뛰어가곤 했던 것일까. 엄마보다도 뛰는 솜씨가 빨라 보이는 어린아이가 불현듯 내 딸의 유년을 떠올리게 하였다.
경복궁엔 많은 관광객과 더불어 제00회 주부백일장에 참가한 전국 각처에서 모인 주부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회를 거듭할수록 참가자 숫자가 불어나서 심시위원들은 예정된 시간에 심사를 마치지 못하고 1시간이나 연장했다. 딸아이는 무엇이 그리 신나는지 엄마 손에끌려 거기 나온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를 좇아다니거나 경회루 연못에 잉어를 보면서 폴싹폴싹 잔디 위를 날아다니다싶이 하였다. 일본인 관광객인듯 한 남자가 그런 딸아이의 사진을 찍고 나에게 주소를 적어달라고 하였다. 초록 원피스를 입은 딸애는 하얀 얼굴이 돋보였고 하얀 얼굴보다 더 사랑스러운 것은 그애의 밝고 환한 스마일, 웃는 모습이었다.
엄마들이 글 쓰느라 엎드려 있던 시간과 지연된 한 시간은 온전히 아이들의 시간이었는데 나는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다가 그만 깜박 딸애를 놓치고 말았다. 유모차를 밀고온 젊은 새댁이며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들, 그리고 숱한 관광객들 속을 헤집고 다니며 "00야!" 를 목청껏 외쳤다. 주부백일장 결과를 보지 말고 일찍 집으로 갈걸 하고 후회도 되었다. 어디갔지? 대체 어디를 간 거야? 초가을 땡볕에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연못 끝에도 가보고 화장실 근처에 가서 악을 써보고 두리번 두리번 사방을 훑어보아도 벨로아 초록 원피스를 맵씨나게 입은 여자아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자리를 정돈해 주시기 바랍니다. 곧 제 00회 '전국주부백일장' 심사발표가 있겠습니다." 행사장에 마련된 마이크가 조용히 자리에 앉아달라고 반복해서 말하자 나는 하는 수없이 내 소지품이 있는 의자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다. 장려상부터 발표하기 시작하여 시부문과 산문 부문을 나누어 3등에서 부터 호명하였다. 심사발표를 듣는 등 마는 등 나는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동서사방으로 눈을 돌려 딸아이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산문부 일등 000씨! 내 이름이 불려지는 것도 모른 채 넋이 나간 상태로 멍청히 서 있을 때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지면서 수런수런 이상한 기척이 났다. "네!" 하는 소리와 함께 튕기듯 나타난 것은 초록 원피스의 5살 어린아이, 바로 딸아이였다. 딸아이는 쪼르르 미끄러지듯 단상 앞으로 달려나가며 엄마가 어디 있나 찾는 기색이었다. 모든 눈길이 딸애를 향해 쏟아졌다. 나는 황망중에 앞으로 주춤주춤 걸어나갔다. 사람들이 힘껏 박수를 쳤다. 박수소리는 상장과 상품을 받아들고 딸의 손을 잡고 내 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자리에 앉고나서도 나는 흥분을 갈아앉히지 못했다.
대학로에서 만난 어린 여자아이와 내 딸을 생각하며 돌아오는 길은 흐뭇함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 기쁨들이 어찌 딸의 어린 날에나 국한하랴. 이제 소망하기는 엄마를 염려하지 말고 딸아! 너만의 행복을 찾아 길 떠나기를 빈다. 결혼 상대자는 60점만 넘으면 합격이야. 아니 원래 100점은 없는 거란다.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거지. 엄마는 염려 마. 엄마는 언제든 책상 앞에 앉을 수만 있으면 만사오케이라는 거 너도 잘 알잖아. 적어도 "엄마를 부탁해" 라고는 피차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가 무슨 물건이냐, 어디다 뭘 어떻게 부탁할 건데. 엄마의 자존심이 혼자서 독백하였다. . 그 모녀를 만남으로하여 대학로 실개천 나들이는 성공적인 산보코스가 된 셈인가. 오늘의 검사 내용이 별탈 없음을 예감이라도 하듯 나는 즐거이 지하철 계단을 내려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