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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잠이 깨어/변문원

능엄주 2020. 3. 17. 07:25

새벽에 잠이 깨어/변문원


4시. 왜 잠을 깼는지 모르겠다.

꿈 때문이 아니다. 어젯밤 일찍 잠자리에 든 것은 더욱 아니다. 위층에서 무슨 소리가 났던가.

오래 전 나의 생활 패턴이 변경되었다. 본래는 저녁 9시 뉴스가 시작되기 전에 스르르 나도 모르게 잠에 떨어지곤 했다. 그리고 인시 즈음에 일어나 책도 읽고 글도 쓰면서 새벽 시간을 유용하게, 소중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시기부터 밤 늦어 귀가하는 과년한 딸로 인해서 내 기존의 생활방식이 그만 뒤틀려버렸다. 그런 날은 싫든 좋든 TV를 볼 수밖에 없다. 중국드라마 녹비홍수(綠肥紅瘦)를 가슴 졸이며 본 다음에, 이어서 샘 아빠의 가족- 월리암과 벤트리가 나오는 프로를 보게 되었다. 낮에 한 차례 본, 그것과는 다른, 언젠가 내가 놓친 회차가 분명한, 월리암과 벤트리가 모기장을 펼치고 집밖에 몇 시간짜리 둥지를 튼 장면에 푹 빠져들었다. 얼마나 깜찍하고 지혜스러운 아이들인가. 샘 아빠에게 심하게 야단을 맞은 것도 아닌데 필요한 물건을 주섬주섬 싸들고 집밖으로 행동반경을 옮기는 천진난만한 동심에 매료되어 다른 날보다 더 늦게, 거의 밤 1시가 넘어서 잠 들었다.


결과적으로 잠을 덜 자게 되었지만 월리암 벤트리 형제의 평화롭고 귀여운 모습을 보는 것은 코로나 사태가 아니더라도 흥미 차원에서 뿐아니라 힐링이라는 측면에서도 매우 바람직하다.  평소의 나는 TV는 소음으로 간주돼 별로 즐기지 않는 편이다. 대부분 모든 소리가 과장된 것 같고 침착하거나 안정적이지 않다는 게 내 정직한 평가였다. 물 흘러가듯 나지막하게, 또박또박 정황을 전해만 주어도 무방할 것을 호들갑스럽고 선동적이라고 여겨왔다. 온갖 제스추어를 동원해 사람들의 마음을 강제로 동요시키는 것 같아서다. 나만의 느낌일까. 차라리 래디오로 음악을 듣는 편이 훨씬 심신을 편안하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TV의 역할이 시청자의 심신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자연스럽지가 않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가 없다. 가까운 지인도 자연스럽지 않은 언행이 자주 노출되면 싫증나고 피곤해진다. 다행인 것은 연예인을 부모로 둔 아이들의 재롱이랄까. 그 천진무구한 연기라면 연기를 보는 재미는 연속해서 보아도 쏠쏠하다. 그 어떤 인위적인 동작이나, 상업화로 굳어진 어른들의 저급한 전략에 의해 미리 짜여진 각본대로가 아닌, 타고난 순수한 성정 그대로 연출하므로 많은 시청자를 모으는 인기프로그램이 된 것이 아닐까. 

 

그 프로만큼 나를 TV로 가까이 다가서게 하는 요소는 극히 드물다. 더구나 근래의 코로나 19 사태는 그렇지 않아도 팍팍한 삶을 더욱 황폐하게 만든다. ‘뭐 이래“ "이게 사는 거야?" 라고 절규할 만큼 무기력, 우울증을  유발한다.  현재의 삶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해서도 불안감 공포감을 증폭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어떤 날은 하루 종일 TV를 켜지 않는다. 생활도, 심신도 소란스러움을 거부한다. 일부러 볼륨을 높이지 않아도, 아니 순전히 볼륨 때문만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시간시간 흘러나오는 그 내용 보다 그것을 전해주는 목소리가 거의 소음 수준으로 인식되어서이다. 적적하거니 무료하다거나 딱히 할 일 없고 무엇을 하고 싶지도 않을 때, 심심풀이는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때로는 아주 절실하고 필요한 볼거리도 TV에서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부분은 별로 많지 않다, 역시 내 생각일까.


새벽에 잠 깨어 나는 TV를 켜는 대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뉴스도 보고 메일도 확인하고, 여러 매체를 돌아다니며 좋은 글도 골라 읽는다. 종이 신문보다 컴으로 보는 게 더 잘 보이는 이유다. 어쩌다 마음에 쏙 드는 글, 그 글을  쓴 사람을 발견하게 되면 그 순간 비로서 기쁨과 보람을, 그리고 깊은 감동을 받는다. 그런 분, 그런 좋은 글을 만나므로 하루가 빛나게 되고 새로운 꿈을 꿀 수가 있다. 날개가 달린 것처럼 어려운 일도 순조롭게 풀려가는 것 같다.


새벽에 잠이 깬다는 것은 어느 의미에서는 축복이다. 지극히 고요한 시간, 만물이 아직 깊은 잠속에 푹 빠져 있는, 나만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도 종종 새벽에 일어나려고 맘먹는다. 젊은 딸이 밤늦도록 볼 것, 갈 곳, 만날 사람 많아 귀가시간이 늦어지면 늦어지는대로 두고, 나는 나대로 일거리를 찾아 좌정하면 하등 불편할 것이 없다. 인간은 언제 어디서고 홀로 설 수 있어야 인간이 아닐까.

TV가 주는, 그리고 스마트 폰, 컴퓨터로 인한 스트레스 또한 만만치 않다. 그러나 사람과의 대면보다는 그 미치는 영향이 훨씬 덜하다고 본다. 현대를 살면서 문명의 기기를 완전 무시하거나 일상에서 배제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사람도 만날 때마다 멀미를 촉발시키고 혐오감을 심어주는 일이 다반사거늘, 묵묵히 감내하면서 내 길을 가는 수밖에 없을 것같다. 굳이 보람, 가치, 효율, 그딴 것 염두에 두지 말고 이제까지 해온 바대로 차분히 나의 길을 가는 것이다. 느닷없이 새벽에 잠깨어 생각이 분분하다.


날이 밝아온다.

오늘은 아들네가 이사 가는 날. 이제 컴퓨터에서 물러나 서둘러 아들네로 가야한다. 무엇 한 가지라도 타인에게 도움이 돨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긴 세월 살아오면서 고마움과 미안함을 내게 끼쳤던, 모든 이들에게 마음으로 물질로 보은 보답하고 이 세상을 떠날 수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을 듯하다. 오늘도 화평한 하루가 되기를 간구한다.  (202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