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오늘이 그 날이었다.
코로나 19가 우리나라 전역을, 더하여 전셰계를 강타하고 있는 이 시기를 택하다니 처음엔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파트 단지 여러 세대의 보일러 열량계를 점검 교체한다하여 우리 가족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코로나 19 확진자와 사망자 증가가 날로 그 숫자를 더해가는데 하필 이때냐 하는 이유였다.
대형 마트는 고사하고 재래시장이고, 동네 노점상도 자유롭게 갈 수 없어 애궂게 냉장고 문만 하루에도 열두번 더 열고닫기를 거듭했다. 오래 묵어 꽁꽁 얼은 식재료는 해동시켜보아야 이미 본래 맛은 훨씬 감한 터여서 차라리 TV 홈쇼핑을 이용하기로 했다. 앉아서 주문하고 앉아 받으니 편리하다고 할까. 그러나 그 편리가 누구에게나 적당하고 좋은 것만은 아닌 듯하다. 국이나 탕은 몇 끼 연속 먹으면 질리기 마련이었다. 포장되어 배달된 과일도 제맛이 안 났다.
겨울 난 봄나물이 포릇포릇 비타민 C를 듬뿍 머금고 밥상에 오르면 얼마나 상큼하고 맛깔스러운가. 밖에 나가서 이것저것 둘러보면서 만원권 한장으로도 잎이 넓고 싱싱한 방풍나물, 바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햇미역, 해풍 맞고 자란 시금치며, 쌉쌀하면서 새콤달콤 무쳐놓으면 입맛이 살아나는 씀바귀 뿌리, 덤불속에서 솜털같이 연한 순을 뽑아올린 여린 쑥, 봄을 맞이하는 기분으로 눈으로 직접 보면서 사는 재미도 있고, 봄나물을 섭취하는 적기가 아닌가.
감기들기를 일년이면 수없이 반복하는 체질이라 코로나 19 에 그만 기가 죽어 엎드려 지내기 지루했다. 한동안 엎드려 지내자니 나갈 의욕도 스러졌다. 누구든 집에 오는 것도 반가울리 없게 되었다. 전화 역시 코로나가 주된 화제라 싱드렁했다.
그래도 어쩌랴!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일부러 날자를 코로나 강세에 맞춰 잡은 것은 아닐터이다. 진즉에 보일러 열량계 관련 업체와 계약을 했을 것이므로 울며 겨자먹기로 수락하고, 나는 지난 밤에 잠까지 설쳤다. 칩거상테태에서 외부인을 집안에 들여야하니 성가시다고 여겼다.
딸애가 마치 어렸을 때 내가 그애에게 했듯, 오늘은 특별히 당부사항이 더 늘어났다. '앞뒤 창문을 다 열어놓고 옷을 단단히 입고 공사가 종료될 때까지 잘 견디라. 마스크는 쓰되 말을 시켜도 말은 간단히 해라. 그 사람이 일을 마치고 갈 때는 현관문 고리를 소독해라. 현관바닥을 소독하는 것은 물론, 보일러 근처를 정리정돈하되 꼭 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할 것. 입었던 옷은 다 벗어 세탁기를 돌려라.' 등등이었다. 그 내용을 두세 번 반복해서 말하므로 저절로 긴장이 되었다고 할까.
공사는 간단히 끝이 났다. 예상 밖이었다. 베테랑 기사가 방문한 듯 기분이 명쾌하기까지 했다. 나 또한 그 기사가 버리고 간 빨갛고 파란 전선같은 줄 뭉치와, 녹쓴 기계를 닦아낸 휴지 덩어리 등, 그 뒷처리를 깨끗히 했다. 현관에 소독약을 뿌렸고, 문고리를 물로 씻고 마른 걸레로 훔쳤다. 오로지 병이 무서워서였다. 나 어릴 때 패결핵으로 가까운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나도 폐결핵을 앓아 부모님 정성으로 폐 한쪽을 희생하고 근근 살아났다.
신종풀루, 메르스 때는 이런 정도로 겁을 내지는 않았다. 그때만 해도 훨씬 젊어서 물정을 몰라서였는지, 사는 일에 몰두해 신경 쓸 여력이 없었는지 모르지만 무사히 지나갔다. 그런데 코로나는 집에 콕 들어앉아 TV를 시청한 덕분에 더 겁을 낸 것 같다. 오늘은 아예 TV를 켜지 않았다. 집안이 조용하고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았다. 병을 이렇게 무서워하니 문밖으로 언제 나가볼 것인가.
나 말고도 코로나 19 때문에 여러 가구에서 항의 전화를 한 모양인데, 숙련된 기술자 아니고서는 일을 단시간에 마칠 수 없었을 것이다. 큰 가방(아마도 연장, 도구가 들었을) 을 둘러메고 와서 조심조심 보일러 열량계를 교체해준 기사 아저씨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