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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좋은 나라/문원

능엄주 2020. 3. 1. 12:24

냉장고에 짱 박혀 있던 식 재료를 뒤져서 끼니마다 그럭저럭 잘 넘어갔다.

환절기에 입맛없는 것도 한 몫 거들어 그 종류와 분량이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크게 걱정하지 않고 지낼 수가 있었다.  한 달이 훌쩍 지나자 이제는 기본 식재료가 바닥이 난 상태다. 마트로, 아니면 시장으로 어쩔 수 없이 위험을 무릅쓰고 먹이를 구하러 집밖으로 나갈 수박에 없다.


먹이를 구하는 일보다 더 긴요한 것은 코로나 19에 대한 심리적 불안감, 공포심을 가라앉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매 시간 TV 켜는 게 두렵고 짜증이 난다. 지금쯤은 남녘에서 사랑스러운 봄꽃소식이 연달아 올라와야 하는 절기다. 매화를 비롯 산수유, 수선화, 그리고 쑥과 냉이, 달래 같은 자연에서 채취한 봄나물이 흙향기를 날리며 TV를 풍성하게 장식해야 걸맞는 철이 아닌가.


대구 지역의 신천지 신도 우선 검사 이야기가  인터넷에 떠돈다.  신천지 신도를 우대했다는 역겨운 소식이었다.  진위는 직접 겪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그 사연에 달린 수 십이 넘는 댓글을 보면 사건의 실마리가 얼추 잡히는 느낌이다. '신천지 신도가 우선 ...' 이라고 말하기 전에 신천지 신도의 코로나 19 전염 여부가 더 긴급사항이라면, 아예 신천지 신도를 별도로 격리든 검사든 시행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럴 만한 증상으로 치료를 요청했는데 거부했고,  그 환자는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했다고 한다. 

 

시중 가격의  1/5 싼값에 달랑 일회용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 장시간 줄을 서는 사람들을 보니 어처구니가 없다. 마스크를 만들 수 있게 재봉틀을 굴리는 집이 어디 있을까. 어떤 이는 정 급하면 소창이나 천을 사다가 꿍덕꿍덕 바느질해서 코에 걸치고 다녀도 된다고 말한다. 그런 바느질 이야기가 통하는 세상인가.  요즘 바늘과 실꾸리를 가지고 있거나 사용하는 가정이 있을까?


1.4후퇴 때,  진눈개비가 펑펑 쏟아지던 시절, 이불을 뜯어  어린 아이들에게 솜모자를 만들어 씌우고 피난길을 떠났던 분들은 지금 없다.  설사 그 분들의 후손이 살아 있다 해도, 와이셔츠 단추가 한 개 떨어져도,  바늘과 실꾸리를 챙길 손을 찾아볼 수 없을 것 같다.  스마트 폰만 클릭하면 뭐든 원하는 시간안에 해결할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 아닌가. 그 어떤 이는 안 그래도 뒤숭숭한 이때에 왜 하필  아득히 흘러간 시대의  바느질 이야기를 꺼내는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가.


부득이 한 경우  일회용 마스크를  빨아서 재사용해도 무방하다는 자신감 없는 목소리가 TV 에 뜬 것 같다. '재사용도 가능합니다' 라는 신빙성 있는  음성으로 들리지 않았다. 판매한다고 발표한 날자에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섰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마음은 그 순간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했을까.


오랜 세월이 흘러도 잊을 수 없는 일은 6.25 한국전쟁 발발 직후 '사흘 안에 적을 격퇴할 것이다, 문밖에 나가지 말고 맡은 바 일에 충실하라' 사흘도 못가 허위 방송, 사기 방송으로 밝혀진,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갈라놓은 중차대한 그 발언이다. 위기 상황에서 때로는 각자의 결단력이 더 유효했음을 일깨워 준 교훈이었다. 


일은 열일 제치고 생필품을 조달하러, 그리고 마스크를 구입하러 집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모든 것은 지나갈 것이다,  코로나 19  공포가 물러가고 살기 좋은 나라가 도래하기를  간절히 꿈꾼다. 꿈은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