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화창하다.
남쪽나라 시인에게서 삽작 문 옆에 매화꽃이 피었다고 카톡이 도착했다. 매화뿐일까?
모르면 몰라도 길상사 화단모퉁이에 수선화 노란꽃도 예쁘게 수줍게 피어났을 것이다.
영춘화는 좀 있다 필 것이지만 수선화는 겨울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엉성한 화단 한 모퉁이에서 가장 먼저 앙징맞은 노란 꽃술을 들어올리고 사람들을 기쁘게 맞이하고 있을 것 같다. 봄꽃을 보러가고 싶은 마음. 봄을 맞이하고픈 마음. 오랜 은둔에서 자리를 떨치고 일어서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내 마음의 동향을 감지한 것일까. 오늘 일요일 여기 저기서 전화가 걸려온다. 그것도 집 전화로. 당연히 집에 있겠거니 상상하는 것 같다.
강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순전히 자발적 은둔도 아닌, 한 달여나 집안에만 들앉아 있는 막막한 심정은 전화를 해준 그들도 나도 동일할 터이다.
움직여야 산다. 몸 뿐 아니라 마음도 한 곳에만 머물다보면 사리판단에 오류를 범할 수 있다. 편협하고 분별력이 낙후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가. 육신이야 더 말할 게 없다. 부단히 움직여야 한다는 것. 단순히 건강차원에서가 아니라 급속도로 변화발전하는 세태에 뒤지지 않으려면 발빠르게 움직여 주는 게 볼 것도, 배울 것도 있을 것 같지 아니한가.
'멈추면 보이는 것들' 이라는 혜민 스님 저서가 생각난다. 그 말씀이 몸과 마음에 다 해당하는 말씀일까. 마음 쪽에 더 비중이 실려있는 가르침, 법문이 혹 아니겠는가. 살아 있는 생물체로서 움직여야 의욕도, 살맛도 지속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재앙의 시대! 전염병이 날로 날로 확산 일로를 달리고 있어. 공포와 불안감이 사람들의 발목을 굳게 잡고 있는 것 아니냐?
본시 겁이 많기도 하지만 신문 방송 모든 매체가 시간시간 전해주는 뉴스를 보면 서뿔리 밖에 나갈 용기가 스러진다. 완전히 사람들의 기를 꺾어버리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잘 못 판단하여 밖에 나갔다가 본의 아니게 감염경로도 정확하게 밝혀지지않은 코로나19의 마수에 걸려들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감옥살이? 아니 비참한 죽음이 다가올 지도 모르는 현실 아닌가.
"우리 언제 만나지?"
"만나기는 요. 냉장고 다 뒤져서 맛난 것 해서 드시고요. 오직 건강만 잘 챙기세요!"
별 수 없이 심약한 답변으로 통화를 끝내면서 나는 창밖을 바라본다. 포릇포릇 새움이 돋아날듯, 목련나무 가지에 물오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같다. 봄은 오는데 코로나는 대체 무슨 심술인가. 코로나의 기세가 겨울과 함께 깨끗히 사라지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