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켜면 온통 코로나! 코로나!
중국 코로나, 우리나라 코로나. 대구 청도지역의 코로나 확산!
더 멀리 미국에도 코로나. 미국은 코로나보다 미국독감이 더 무섭다고 한다.
작년에 내가 앓은 독감도 미국독감이었나. 그 독하고 독한 독감에 굴하지 않고 살아난 게 기적이었다. 내가 잘 견딘 것인지, 하늘이 지상에 더 남도록 말미를 주신 것인지, 그런 독감 두 번 다시 쳐들어오면 못 참을 것 같다.
코로나가 겁나서 꼼짝없이 집에 들어앉은 게 근 한 달이다. 급한 볼일로 은행에 한두 번 갔고, 눈보라 휘날리던 날 여의도에도 한 번 다녀오기는 했다. 일상의 질서는 헝크러졌지만 나름대로 시장대신 TV 홈쇼핑을 이용해 식재료를 조달했다. 집안에만 있다보니 공연히 냉장고가 바빠졌다. 뭔가 색다른 게 없는가 살피느라고 하루에 수십번을 열고 닫는 동안 하루해가 저문다.
언제 넣어두엇는지도 모를 것들이 랩에, 비닐 봉지에, 혹은 한지나 신문지에 쌓인, 방물장수 할머니 물건처럼 꽁꽁 고무줄로 동여맨 것들, 분명 내손으로 넣었을 그것들의 정체를 몰라 풀어본다. 그것들을 꺼내 손질해서 반찬으로 만들기는 귀찮아 도로 집어넣는 동작을 반복한다. 오늘에서야 신춘문예 작품집 두세편, 신예작가 작품을 읽기는 했지만 장편은 열어보지도 못한다.
코로나가 문제인가? 아니면 내 요동치는 마음결이 원인인가. 바람불고 비 내려도 할 일을 해야 사는 맛이 날터이다. 친구와 호수공원으로 나가서 적당히 햇볕 바라기를 하는 일도 중요하다면 중요하다. 대형마트에 나가 가트를 밀고 다니며 이것저것 신상품을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기나는 일이 집밖에 더 있는 것 아니냐.
"천혜향 도착했지? 엄마 그거 많이 먹어!"
언제부터인가 나는 먹는 일, 외출하는 것, 모든 면에서 관리당하는 존재가 되었다. 외출을 스스로 자제하는 것 뿐아니라 감시 감독 간섭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천혜향 많이 먹고 잘 놀아라' 하는, 바로 그런 기분이다. 혼자서 무슨 맛이랴! 애꿎게 냉장고 문이나 여닫을 뿐이다. 입맛은 살맛이라는데 환절기여서일까. 매사가 시들한 건 반드시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렸다.
귀중한 시간을 냉장고 문이나 여닫는다면 내일의 내 꼴은 무엇이 될까.
분발하라! 각성하라! 나에게 엄중히 명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