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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 가는 마음/변영희

능엄주 2020. 2. 13. 00:13

코로나 바이러스가 겁나서라는 게 첫 번째 이유다.

지난 해 여름부터 가을까지 3개월 여 혹독하게 독감을 앓은 터라 아픈 건 질색이었다. 바깥 출입도 못하고 긴긴 날을 아플거라면 차라리 하늘나라 가겠다는 게 평소의 내 주장이다. 염라대왕이 생시의 죄업을 심판해서 벌을 주는 그런 곳만 아니라면 달려서라도 가는 게 노상 콜록거리고, 기침 한 번에 창자가 다 딸려나올 것 같은 극심한 고통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감기도 감기나름이지, 독자가 들어간 감기는 참기 어려웠다.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은 야차하면 감기가 쳐들어 온다. 외출을 자제하면서 코로나가 비켜가기를 기다리는게 현명한 방법이라고 여겼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치과 방문을 미루고 차일피일 하면서 미련을 떨게 한 주범이었다.


두 번째 이유라면 치과는 다른 어떤 과 진료보다 치료과정이 두려웠다. TV 에서 보니 그 유명한 샘 가족, 월리암 5세와 벤툴리도 치과 치료를 받던데 내가 그걸 못 참아? 그래도 오싹 소름이 돋는다. 병원 출입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산부인과 보다 더 가기 싫은 곳이 치과였다.  쇄~쇄~ 하는 치아를 갈아내는 소리가 꿈결에서도 들려올 만큼 한 번 다녀오면 두 번은 가고 싶지 않은 곳이 치과다. 더구나 툭하면 백대 이상을 호가하는 치료비용도 부담이 되었다. 어느 과 보다 시간 걸리고 비용도 만만치 않은 곳, 그래저래 치과 검진을 미룬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디.


사건이 발생했다. 오래 전 금으로 씌운 두 개의 치아가 양치질 하는 중에 저절로 떨어져 나왔다. 그에 따른 미세한 부속물도 2차 3차 부서져 나왔다. 맨살이, 신경이 노출된 것일까. 물을 마셔도 그 자리가 당장 재리고 시렸다. 졸지에 음식물을 섭취할 수가 없게 되었다. 기존의 저작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엄마! 절대 밖에 나가지 마. 거리에 사람들이  안 나온다. 지하철이 널널해서 앉아서 출근해요."

당부를 반복하던 딸이 만약을 생각해서 일회용 마스크를 넉넉하게 구입해 놓아 마스크 걱정은 안해도 되었다.

열일 제치고 치과에 전화했다. 더 망설이고 꾸물 거릴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간호사는 시간 걸리는 환자가 계신다며 내가 늦게 도착하기를 원했다.


치과를 향해 집을 나섰다. 1시간 이상 걸리는 먼 곳이었다.

나는 여행한다 생각하고 마스크를 쓴 채 집을 나섰다. 안경은 코 위로 부옇게 김이 올라와 시야가 가리므로 집에 두었다.

치과는 치료중이었다. 대기의자에 앉아  쇄~쇄~ 하는 소리를 음악소리로 변환하여 들으려고 애를 썼다. 내  몸은 자동으로 경련이 일어나면서 자즈러질 것 같았다. 치료받고 있는 저 사람은 얼마나 고역일까.


내 차례가 되었다. 대강 증상을 설명하자 사진을 찍자고 했다. 사진 결과는 절망스러웠다.

치료의자에 앉았다. 얼굴에 푸른 보자기가 드리워지고 치료가 시작되었다. 찌릿찌릿 아프면서 크게 벌린 입안에 침샘이 고여 절절맨다. 갈아낸 치아 부스러기가 잇몸 아래로 들어가는 것 같아 혀를 움직여보았다. 입술도 혀도 내 의지대로 움직여 주는 단계가 아니다. 손발을 묶지 않았으나 이건 포박상태였다.

행운인 것은 이 닥터는 언제나 환자를  기 죽게 하는 설명을 하는 법이 없다. 치료 내역 견적서를 미리 보여주는 법도 없다. 오직 치료에만 정성을 쏟는 것 같았다. 치료 중 아프고 겁나는 순간이 있었지만 시리고 재리던 치아가 진정되는 기미였다. 30분만에 진료는 종료되었다. 다음 번에는 신경치료를 한다면서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한다.


치과, 닥터, 치료에 감사했다.

고마워! 나는 그 치과를 소개해준 친구에게도 고마워!를 연발했다. 진심이었다. 다 사는 방법이 있는 거야. 다시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일도 할 수 있는 거야! 나 자신에게 격려의 말을 들려주며 비오는 거리를 느긋하게 바라보았다.

치과에  오기 전의 떨리고 무서운 감정은 사라지고 닥터에 대한 신뢰와 안도가 가슴속에 차올랐다.


나는 매일 아침 좋은 음식을 주셔서, 새로운 아침을 맞이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기도를 한다.  좋은 글,  좋은 친구, 좋은 장소가 이제 내 앞에 이르렀는가. 확대해석까지 곁들였다. 나는 지하철 빈자리에 앉자 졸기 시작했다. 내 빈약한 지갑을 공략당하지 않았으므로,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좋은, 치과 나들이였다. (202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