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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만의 외출/변문원

능엄주 2020. 2. 11. 20:42

햇살이 퍼지자 집밖으로 나섰다. 설날 이후 첫번 째 외출인 셈이다. 화정 로데오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진정 단계인가.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하 오래 집에 들앉아 있어서 다리가 제대로 풀리는 것 같지 않고, 걸음걸이가 다소 부자유하게 느껴졌다. 바람도 불지 않고 날씨는 쾌청이다.


요진 타워 지하상가에 있는 문방구로 갔다.

컴퓨터에 이어서  프린트 기기가 고장이 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A4 100장이 넘는 분량을 집에서 인쇄하기는 무리였다.

나는 내가 집밖으로 나온 사실이 대견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에게 위협적으로 공포감을 주어 2주이상 폐칩閉蟄 상태 이었으니까.


문방구 직원이  USB의 많은 자료중에서 내가 적어준 자료 두 건을 찾아내 복사기를 작동시켰다. 15분 ~ 20분이 지났을까.

그녀가 두 건의 인쇄물을 간추려서 나에게 주었다. 나는 날씨도 좋겠다, 기왕 나온 김에 MBC 신사옥이 어디에 있는지 그 동네를 가보고 싶었다. 직접 가서 제출하는 게 편리할 것 같았다. 어차피 나 혼자 도모하는 일이니 다른 사람 손을 빌릴 필요도 없다. 우체국 가서 등기로 발송하기보다 내 발로 걸어 그곳에 가면, 혹 배울 것도 볼 것도 있지 않을까.


나는 인쇄물 봉투를 들고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갔다. 얘상외로 지하철 구내에도 사람들이 많아 모여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봄이 온 줄 알고 멀리 도망이라도 갔는가. 마스크 착용은 했지만 사람들 얼굴은 봄맞이하러 나온 듯 밝은 모습이다.


경의선은 다른 노선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다.10여분 정도 기다려 6호선으로 환승, 수색역에서 내렸다. 찾아가는 길을 입혁해 놓았으므로 느긋하게 햇살을 즐기며 걸었다. 지하터널을 지나갔다. 밤이라면 이 길 다니기가 무서울 것 같다. 지하보도를  빠져나와 다시 층계를 올라가자 맞은 편에 방송국을 알리는 대형 TV 가 보이고 서울 도심에서나 볼 수 있는 멋지고 거대한 건물들이 즐비했다. 


횡단보도를 건넜다. 물빛문화공원의 반대 방향, MBC 신사옥 표지판을 보고 곧장 걸어갔다. 하필 점심식사 시간에 도착할 것 같아 내 스마트 폰을 보는 대신 지나가는 청년들에게 길을 물었다. 그쪽이 더 빠를 것 같아서다. 아니나 다를까. 아주 친절한 청년을 만난 것이다. 그 청년이 나의 목적지를 검색해서 알려주었다.


"쭉 들어가세요. 저기 보이시죠. 저 건물이 맞을 거예요."

거기까지 가는 동안 나는 마치 외국에 온것처럼 세련된 거리 풍경에 어리둥절했다. 초현대적 감각으로 변해 있는 거리를 두루 살피며 목적지에 다다른다.


9층으로 올라갔다. 복도가 넓고 깨끗하다.  젊은 이들 셋이 내가 찾아가는 사무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아. 접수하러 오셨어요?' 한 사람이 혼잣소리처럼 짧게 말하더니 잠근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도 따라 들어갔다. 접수를 수월하게 마쳤다. 되든 안되든 내 힘으로 신청서를 작성했고, 내가 올 수 있어서 감사했다. 기분이 썩 유쾌했다.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이런 것인가. 왔던 길을 돌아보며 사진을 찍었다. 너무나 훌륭하게 탈바꿈한 거리가 마음에 쏙 들었다. 차도 없는 거리를 가슴에 명찰을 단 젊은이들이 무리지어 어디론가 가고 있다.  내가 사진을 연속 찍으니까 완장을 찬 키큰 젊은이가 다가왔다. '어디를 찾으십니까?' 아니, 찾는 게 아니라 거리 구경을 하고 있어요. 여기가 미국인가 유럽인가 싶어서요.


세상이, 거리가, 아렇게 변할 때 나는 무엇을 했던가 . 나에게는 어떤 발전, 성장이 있었던가. 나의 지난 날을 돌아보니 조금 씁쓸했다. 거리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면서 천천히 걸었다. 봄빛이 지하철 창밖으로 아련히 펼쳐지고 있었다. 나의 17일 만의 외출은 매우 만족스러웠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행여 내 희망대로 보조금 혜택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방법은 또 있을 것이다. 마음 편하게 기다리자. 혼자서 자문자답하며 어둑한 지하보도를 나와 수색역 광장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