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훈장勳章
복희 언니
지리산 과목科目
어머니 꽃, 하얀 무궁화
수면 도우미
미혹
매지리에서 꿈꾸다
인연의 숲에 노닐다
외도外道 2
봄미나리
[예스24 제공]
출판사 서평
「훈장」은 손자 동호를 통해 들여다보는 가족의 이면과 속내가 정숙여사의 의식을 통해 차분하게 드러나고 있다. 「복희 언니」는 어머니의 묘소를 찾아가는 길 위의 겨울 풍경을 서정적으로 그리면서, 눈길은 6·25 전쟁으로 빚어진 험난하고 비극적인 가족사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지리산 과목科目」은 내시경 검사를 앞두고 두려움에 뛰쳐나온 병원 앞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엉겁결에 찾아간 지리산의 숲과 자연 앞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지희의 형상에 누구나 공감이 간다. 무궁화 문학상 대상 수상작이기도 한 「어머니 꽃 하얀 무궁화」는 무궁화에 얽힌 가족의 비극이 너무나 아프게 다가와 가슴이 먹먹하면서도, 무궁화의 이미지가 독자들에게 특별하게 다가온다. 「수면 도우미」는 해발 830미터 산에 있는 칠불사 절에 모여든 친구들이 서울에서 벌어지는 대통령 탄핵에 관한 저마다의 처지 때문에 각자의 주소지로 돌아가는 심리와 상황을 눈에 보일 듯이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미혹」은 몸이 아픈 정애가 우리나라 고유의 자연치유 방식으로 질병을 고친다는 민족문화교육원에 입소해서 벌어지는 일들을 실감나게 형상화하고 있다. 정애가 자신의 병은 자신의 노력과 방법으로 고쳐야 옳다는 결론을 얻기까지 겪은 우여곡절의 시간이 굵직한 형상의 발자국을 남기고 있다. 표제작인 「매지리에서 꿈꾸다」는 소설가인 연희가 토지문화관에 들어가 박경리 선생님과의 인연을 비롯해 자신이 문학을 만나고 또한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사연을 풍부한 경험의 결을 따라 풀어가면서 인생이 무엇인지 담담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인연의 숲에 노딜다」는 화영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혹은 그 발걸음이 오래도록 만들어 낸 인연의 시간과 그리고 자신의 남편을 빼앗은 여자의 형상을 통해 바라보는 인연의 불교적 사유의 우물을 정면으로 들여다보게 만든다. 「외도外道2」는 남편 외도의 사연이 쉬지 않고 울려 퍼지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의 이미지와 함께 희경이 앓고 있는 치통과 어우러져 독자들에게 기묘한 고통으로 전이된다. 「봄미나리」는 봄나물을 파는 골목길의 풍경에 얹힌 순자 씨와 오식이네의 가정사가 마치 봄에 맛보는 봄미나리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작가의 말
소설을 안 쓰면 모를까 소설 쓴다고 자리를 잡으면 전화도 제때 못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앉아 있어도 늘 허둥지둥한다.
소설병이 들어도 아주 깊게 든 것 ...(하략)
추천평
변영희 작가의 소설집 ??매지리에서 꿈꾸다??에는 인간, 자연, 우주의 자연스러운 교감이 들어있다. 6·25 전쟁의 체험부터 대통령 탄핵 시간까지 드넓은 시, 공간을 넘나드는 이야기는 따뜻하고 세심하면서도 고통스러운 무늬를 지니고 있다. 그 무늬는 인간, 자연, 우주의 합일을 통한 지점으로부터 세상의 모든 사물을 보아내려는 모자이크로 읽힌다. 그 모자이크는 순간순간 현현하고 있는 일들이나 현상을 읽어내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그런 화자들의 모습이 기이하게도 인간과 자연 그리고 우주와 소통하는 언어로 읽힌다. 화자들은 일상에서 부딪치는 가족과 이웃의 공동체와, 새와 숲의 풀 한포기, 우주의 별 하나 하나에 그 눈높이를 맞추어 겸허히 다가가려는 모습이다. 그런 삶의 마음가짐과 눈높이가 결국은 우주와의 합일을 이루는 기본 덕목이라고 소설의 화자들은 일관되게 말하고 있다.
??매지리에서 꿈꾸다??는 시간 앞에서 쉬지 않고 변해가고 낡아가는 세상 모든 존재들의 이야기이다. 일상적인 사건을 따라 살아가던 소설 속 화자들이 한 순간 세상의 쉼 없는 변화를 각성하면서, 10편의 각기 다른 이야기들이 결국 같은 이야기로 귀결되어 그 감동의 인드라망 폭이 깊고 넓어진다. 불교에서 무명을 통과하지 않고는 깨달음의 빛을 알 수 없는 것처럼, ??매지리에서 꿈꾸다??는 무덤 같은 밑바닥이나 환영의 신기루를 넘어서서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인간들의 구체적인 모습을 진정성 있게 포착하고 있다. 또한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문장 속에 눈부신 경구처럼 숨어있는 글을 발견하는 기쁨도 크다. 그래서 이 소설집은 끝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반복의 고리 속에 살고 있는 나와 너 혹은 모든 존재에 대한 찬가로 읽히기에 충분하다.
김성달(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