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가 고장났다.
네이버 카페에 들어가는 중에 갑자기 진홍색 창색, 등의 작은 직사각형으로 이루어진 모형 같은게 떴다.
아이그머니나! 나는 깜작 놀랐다. 마우스를 이리저리 옮겨봐도 그 직사각형 집합체는 요지부동이었다. 색깔도 혼란스럽고 도대체 그것들이 무슨 의미인지, 왜 모니터 전면을 가득채운 건지 까닭을 알수가 없었다.
컴퓨터 기사 아저씨를 호출했다.
"바빠서 오후에나"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방문한 그 기사는 컴퓨터를 들고 가버렸다. 전에는 연장도구 가방을 갖고 와서 간단히 몇 분 이내로 고치더니 이번에는 고장이 나도 크게 난 모양이었다. 갖고가서 뜯어봐야 안다는 것이다. 날이 어두워져도 컴퓨터 기사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다. 조급해진 것은 나였다. 나는 중요 문서를 교정하고 있었다.
문서도 중요하지만 아침에 눈뜨면 제일 먼저 책상에 앉아 기도를 한다. 그런 다음에 컴푸터를 열어보고 메일을 확인하고 답을 쓰는 게 습관이 돼 있었다. 컴퓨터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내 생활의 필수품, 없어서는 안되는 친구나 마찬가지였다. 컴퓨터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가 없게 컴퓨터와 밀착. 동반자나 다름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TV는 그다지 선호하는 편이 아니다. 뉴스도 컴퓨터로 조용한 가운데 보는 게 일상화되었다. 굳이 보고 싶은 프로 몇 개를 제외하면 거의 우리집 TV는 꺼져있는 게 정상이다.
다시 전화를 했다.
"내일 까지 봐야 알겠는데요."
답변이 좀 막연했다. 그럼 새 컴퓨터를 들여와? 나는 컴퓨터 없는 시간을 견디는게 몹시 힘들었다. 습관이 무섭구나! 느꼈고
다음번엔 좀더 조심해서 컴퓨터를 다루어야겠다고 작정했다.
다음날이었다. 컴퓨터 아저씨가 방문했다. 고장난 그 상태 그대로의 컴퓨터가 돌아온 것이다.
'새로 사시는 게 낫겠는데요! 컴퓨터가 죽었어요."
나는 아연실색했다. 그렇다면 노트북? 장기간 여행갈 때라든지 집밖에서 사용하던 노트북, 집에 펴놓기는 번거로웠다.
집도 넓지 않은데 여기저기 쌓인 책 더미속에 어디다 노트북을 펴놓는단 말인가.
일단 교자상을 안방에 들여놓기로 했다. 컴퓨터를 새로 구입하는 문제도 배달을 의뢰하거나 전화 한 통화로 해결될 일이 아니지 않는가.
베란다에 있는 교자상을 안방으로 가져와 먼지 닦고 펴놓았다. 다른 물건이나 책 같은 건 올리지 않고 테이블보만 덮어놓았다.
노트 북을 꺼내려는 순간 생각이 변했다. 다시는 더 컴퓨터를 만지고 싶지도, 가까이 가고 싶지도 않았다.
하던 일이 중단돼서 노심초사했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안방에서 편하게 쉬면서 TV 를 보는 것도 전혀 나쁘지 않았다.
컴퓨터! 너도 쉬고 나도 쉬자. 고치지 못하면 할 수 없고 새것을 사더라도 지금은 아니다.
TV 에서 흘러나오는대로 여기저기 채널을 돌려가며 모처럼 자유시간을 보냈다.
.
가끔은 손놓고 현실을 방기放棄하는 것도 과히 무모하지만은 않다고 생각되었다.
신종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지만 않았어도 설날 이후 줄곧 칩거하면서 컴퓨터에나 폭 빠지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쨋든 오늘은 마스크를 쓰고 외출을 시도해 볼일이다. 당분간 컴퓨터를 멀리하는 것이 그리 큰 손해일까 싶었다.
진시辰時가 지나 봄햇살이 화정중학교 교사 전면을 환히 밝힐 때 나는 집밖으로 나가리라. 그동안 힘들었고 고생이 많았다.
문서 교정은 좀 미루고 이제 좀 쉬도록 하자. 몇날 아니, 몇 시간이라도.
202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