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 아래서
박노해
만년설산에 둘러싸인 장쾌한 풍광의 파슈툰 마을
할아버지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심어 물려준
달콤한 포도나무 그늘로 어린 손주들을 부른다
아이들은 작은 사슴처럼 귀를 쫑긋 세운 채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재미난 이야기에 빠져든다
오래된 꿈과 전설과 선조들의 영웅담,
온몸으로 겪어내온 좋고 나쁜 경험들,
자신을 더 나은 존재로 이끈 모험과 고난의 이야기는
아이들의 가슴에 강물처럼 흘러 비옥한 영토가 된다
삶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남겨주는 것이다
삶은, 이야기를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이다
그 삶의 이야기가 후대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한
그는 사랑했던 이들 곁에 영원히 살아있는 것이다
출처 : - 박노해 시인의 숨고르기 ‘포도나무 아래서’
사진에세이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