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고 싶은 마음, 곧 움직이고 싶은 마음,
한 자리에 머무는 게 더할 수 없이 실증이 나는 때가 나에게 온 것인가.
아침에 눈 뜨면 마음에 구름이 몰려오는 것을 느낀다. 별일이 일어나서가 아니고 그냥 그렇다.
오늘 하루 또 어떻게 견뎌내지?
손에 아무 것도 걸리지 않아 줄기차게 읽던 책도 저만치 밀쳐두었다.
밤이면 손에 들던 3천주 염주도 주머니에 넣어 눈에서 멀리 감춰놓았다. 기도는 얼마나 많이 했던가?
사시장철 눈 퍼붓는 강원도 오지 산사에 가서 스무하루 머물며 밤을 낮삼아 묘법연화경에 생명을 걸듯 매달린 적도 있다.
신통한 묘법이 내 생애에 활짝 드리워질 줄 알았던 것일까. 사월 초파일, 절에 가서 기숙하며 나와 내 가족의 수만큼 연등을 달고, 별빛아래 오색연등을 희망처럼 바라보면서 밤을 지새웠다. 모두 잘 되기를! 건강해서 탈없는 삶을 살기를! 온갖 좋은 언어와 덕담을 붙여서 긴 밤을 우아하게 아니 눈 부릅뜨고 앉아 가족의 안녕을 빌고빌었다.
산 속 기도원은 또 얼마나 자주 오래 다녔던가. 흙냄새 물씬 풍기는 습도높고 어두운 토방에 들어가 울며불며 없는 죄도 털어내지 않았던가.
날때부터 우리는 죄인이었다. 세상에 나와서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그대로 죄인의 멍에를 뒤집어써야 했다. 철야 기도, 성령기도 금요기도. 가지 수도 하많은 기도를 하느라 일상은 퍙개치고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닌 세월도 있다.
무엇이 잘못인가?
안정을 잊은 것은 대체 언제부터인가. 무슨 다른 실마리를 잡으려고 시도하는 것은 아니겠지?
당장이라도 비행기 표를 끊어 훌훌 떠나고 싶은 마음! 참을 만큼 참았고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 견디기 어려운 난제들도 묵묵히 지켜봤다.
이제는 떠나야 할 차례가 된 것일까. 그만 손 놓고 훌훌 날아가고 싶은 마음!
아들이 그립다. 저금통을 몽땅 털어 나에게 <소년동아>를 사다주고 글을 써보라고 하던 3학년 아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떠나고 싶은 마음 저변에 자리잡고 있는 아들의 영상!
이제 가트를 끌고 시장을 보러가자. 얼마 후면 음력 설날이다.
싫든좋든 가사노동과 봉사를 함께 해야하는 날이 다가온다. 상념을 지우고 일어서자. 오늘 해는 이미 정오를 지났다.
먹이를 구하러 나온 인간군상들을 만나러 가자.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혹 바뀔지도 모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