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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초대/단편소설/변영희

능엄주 2019. 12. 14. 10:08

  화려한 초대

 

                                                   

  꿈에 비가 내렸다.

  억수로 쏟아지는 빗속에서 허우적거리며 푸,푸, 숨을 몰아쉬는 물체가 있다. 시커먼 물체가 황톳 빛 물속에서 올라 왔다가 가라앉기를 되풀이한다. 사람 형상의 물체가 드디어 사력을 다해 언덕을 기어오른다. 환호성을 지르다가 잠이 깼다.

  현관문을 나서려는데 폰이 울린다. 전화를 받는다.

“안녕하세요? 전화 받으시는 분 현석 어머님이 맞습니까? ”

  그녀가 긴장한다.

“혹 등칫골 산딸기를 기억하시는지요?”

“누구세요?”

  비로소 목소리를 낸다.

“현석이랑 산딸기를 따던 동진이…….”

  그게 언제 일인가. 강산이 몇 번이나 변하는, 까마득한 옛일이 아닌가.

“뭐? 동진이? 동진이라고?”

“네! 어머니! 저. 동진입니다!”

“동진이?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제가 가장 뵙고 싶은 분이었어요. 진즉에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오전리에 산사태가 나던 그해 여름, 폭우가 퍼붓자 동진은 마을 아이들과 함께 무작정 더 높은 산으로 올라갔다고 했다. 올라가다 보니 함께 올라간 마을 아이들이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큰소리로 불러 봐도 들리는 건 빗소리뿐이었다. 비가 뜸해지자 그는 바위 밑에 쪼그리고 앉아 오들오들 떨며 밤을 새웠다. 배고픈 줄도 모르겠고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날이 새기 무섭게 그는 무리에서 멀어진 늑대처럼 마을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산속을 헤집고 다녔다.

  Y시의 수해 복구 팀에 의해 발견된 동진의 몰골은 산짐승이 따로 없었다. 산속에 갇힌 지 스무하루 만이었다. 경찰서 당직실에서 몇 날을 지냈다. 경찰 아저씨들이 옷과 운동화를 사주었다. 작은 심부름을 하면서 경찰 아저씨들과 친숙해 질 무렵 수원 소재 〇〇보육원으로 옮겨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진은 그곳에서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시카코의 양부모는 그를 애지중지 내 자식처럼 돌보았다. 동진은 훌륭한 사람이 되어 귀국하는 게 꿈이었다. 양부모도 그의 소원을 적극 지지했다. 공과 계통의 〇〇대학교를 졸업하고 양부모 밑에서 다년 간 사업경력을 쌓은 후 그는 귀국을 결심했다. 그러나 본국으로의 사업 이전은 절차가 복잡하고 일이 많아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는 신규 사업 관계로 귀국한지 한 달 남짓 되었다고 했다.

“저런! 고생을 많이 했구나! 동진아! 네가 살아줘서 정말 고맙다.”

  그녀가 큰 소리로 외쳤다.

“저는 항상 등칫골 산딸기를 생각하고 살았어요. 그곳에 세기물산이라고 건축자재를 생산하는 공장을 지었어요. 한국에 거점을 만들 계획이죠. 개관식에 어머님과 현석, 경석이를 초대하고 싶습니다.”

  상상도 하지 못한 동진의 금의환향, 화려한 초대였다. 동진은 오전리 일대에 만 여 평에 이르는 공장건물을 신축했다고 전했다. 순간 그녀의 뇌리는 아득한 과거로 급속히 회전하기 시작한다.

 

  초여름인데도 날씨는 푹푹 쪘다. 오전리 왕천리 대곡리 전역의 내 논 네 논 할 것 없이 논이란 논은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졌다. 혹독한 가뭄이었다. 모내기철이 다 지나가도록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다.

  어쩌다 먹구름이 하늘을 시커멓게 물들이면 이제야 비가 오려나 보다 하고 마을 사람들은 담뿍 기대를 걸었다. 비가 내릴 듯 말듯 하늘 가득 먹구름만 끼었다. 은나라 말, 주의 폭정으로 사회가 혼란할 때 백성들이 모두 서쪽의 성인인 문왕文王에게 몰려갔다. 이를 시기한 주왕이 문왕을 유리옥에 가둔다. 졸지에 감옥에 갇힌 문왕의 심사처럼 전국은 밀운불우密雲不雨의 연속이었다.

  근근이 심어놓은 채소밭도 누렇게 말라 죽었다. 농촌과 도시 모두 가뭄에 대한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매스컴은 계속되는 가뭄에 대해 연일 뉴스를 쏟아냈다. 농사 뿐 아니라 일반 가정의 생활용수도 턱없이 부족했다.

  이른 새벽 그녀는 펌프가로 종종걸음을 친다. 펌프는 주인집 안마당을 가로질러 한참 걸어가면 밤나무 숲과 겹 복숭아나무가 둘러서 있는 낮은 산 아래 있다. 주인집 할머니가 드럼통처럼 생긴 커다란 고무함지를 가리킨다. 그녀는 그 큰 고무함지를 굴리다시피 하면서 끌어다 펌프 앞에 놓는다. 거기에 펌프 물을 받는 것이다. 한 바가지의 마중물을 펌프 안에 부은 후 힘껏 펌프를 구른다. 흙탕물이 콰르르 쏟아진다. 펌프를 계속 구르면 흙탕물이 희석되면서 점차 맑은 물이 나온다. 펌프 구르는 소리가 인근 마을과 뒷산으로 퍼져나간다. 

  마을 사람들은 눈 뜨기가 무섭게 아랫마을 공동우물에 내려가서 물을 길어 오든가, 왕곡천 개울물이라도 몇 통 들어다 놓고 일터로 나가야 했다. 물을 긷는 일은 아낙네의 팔 힘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남정네들이 물 긷기에 동참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우물의 깊이가 수십 미터라는 것이다. 마을이 생기면서부터 있던 오래된 우물이었다. 지독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는 일이 없다는 소문이었지만 근래에는 그마저도 물이 딸렸다. 불침번을 서듯 우물가에 물통을 줄 세우고 기다렸다가 한 양동이씩 퍼오는 게 고작이었다.

  이 마을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는 그녀는 우물가에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에 비하면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녀는 힘껏 물을 퍼 올려 큰 통에 가득 채운 뒤에 두 양동이 정도 부엌으로 옮겨오는 게 습관처럼 되었다. 그 방법이 최선이었다. 하루 두 양동이 물로는 세수 할 물도 넉넉지 않았다. 물은 쓰기 나름이라지만 아껴 써도 감질이 났다.


  옛 지명이 등칫골이라는 오전리 산동네로 이사 올 무렵만 해도 집 앞 개울엔 물줄기가 졸졸 흘렀다. 그녀는 그 물줄기가 반가웠다. 졸졸 흘러가는 개울물은 모진 역경에서도 꺾이거나 소멸되지 않는 소시민의 희망처럼 보였다. 그 개울에서 소소한 빨래를 해결했고 아이들 놀이터도 대개는 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녀의 남편은 산에서 나뭇가지를 모으고 아이들의 장난감 차바퀴를 이용해 개울에 작은 물레방아를 만들어놓았다. 산마을에 이사와 적적해 하는 아이들을 위한 배려였다. 물 흐름이 원활하면 물레방아는 저 혼자 핑핑 잘 돌아갔다. 아이들은 손뼉을 치며 신이 났고 다른 집 아이들까지 현석이 네 물레방아를 구경하러 우! 우! 몰려왔다.

  개울가에는 돌미나리를 비롯하여 국수댕이, 벌금잘이, 냉이, 질경이, 미나리아재비가 여기저기 자라고 있다. 빨랫감을 비벼 빨고 나면 의례히 그것들을 뜯었다. 잠깐 사이에 손아귀가 그득했다. 개울물이 바짝 마르면서 물레방아가 돌지 않자 아이들을 이끌고 산으로 들로 다니며 취나물을 뜯었다. 나물 뜯는 일은 그녀의 시골 생활에서 제법 쏠쏠한 즐거움이었다.

  스스로 노인네라고 자처하는 주인집 할머니는 69세로 손자, 동진과 살고 있었다. 왜 아들내외가 없는지 그녀는 감히 물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매일 새벽 주인 할머니는 그녀에게 소래포구 젓갈시장에 늘어선, 드럼통처럼 생긴 고무함지 두 개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명령했다. 펌프 물 퍼 올리는 일꾼처럼 주저함이 없다. 지극히 당연하다. 그녀는 아침잠을 설쳐가면서 펌프를 굴러야하는 고역을 떠맡은 거나 다름없다.

  그녀는 헉!헉! 숨이 가쁘다. 손바닥은 발갛게 물집이 잡혔다. 다음 날 새벽에 보면 대형 물통 두 개가 예외 없이 비워져 있다. 설사 몇 바가지의 물이 남아 있다고 해도 그것을 박박 긁어 채마밭에 뿌려주곤 했다. 마루 걸레라도 빨고 나서 뿌려주어도 족한 것을 주인집 할머니는 물을 아낄 줄 모르는 사람 같았다.

  그녀 부부와 여섯 살 현석이, 4살 경석, 그리고 첫돌 지난 순미 등 모두 5명이지만 일정기간 회사에서 숙식하는 현석이 아빠를 제외하면 물을 사용하는 인원은 4명이었다. 그녀가 사용하는 분량에 비해 주인집은 식구도 없으면서 몇 배나 많은 양을 소비한 것이다.

  펌프 가에 작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동진이었다. 새벽이슬도 채 마르지 않은 시간에 동진은 산딸기를 따러 산에 갔다 온 모양이다. 바지가랑이가 온통 젖어 있다. 산딸기 따는 일이 즐거운가. 배가 고파서인가. 동진이가 그녀에게 불쑥 산딸기를 내민다. 

 “너나 먹지 그러니?”

   동진이 준 산딸기는 알갱이가 토실하고 향내가 짙었다. 산딸기의 검붉은 빛깔은 산티아고에게 자아의 신화를 설명하는 연금술사의 강렬한 눈빛을 떠올리게 했다. 연금술사는‘눈빛은 곧 영혼의 힘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산딸기는 동진의 눈빛을 닮은 것 같았다. 동진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산딸기로 보일 때도 있었다.

“우리 엄마는 산딸기를 좋아하셨어요. 엄마가 있다면 엄마를 주었을 텐데… 뭐, 괜찮아요.”

  동진이 뜬금없이 엄마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나! 동진아, 너희 엄마 어디 계시냐?”

“아빠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자 여섯 살 때 엄마도….”

“음! 그래?”

  동진은 키도 몸체도 너무 작아서 학교에 다닐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체형에 비해 별처럼 영롱한 눈빛은 인상적이었다.

서울에서 어린이집 다니다가 중단한 현석, 경석 형제를 비롯하여 어른인 그녀도 산동네가 한 없이 적적했다. 집 앞을 흐르는 개울물이 그들 가족에게 놀이터 겸 쉼터였으나 개울물이 마르자 그녀는 쫓기듯 순미를 들쳐 업고 들로 산으로 갔다. 그녀가 나물을 뜯는 것은 나름대로 시골 생활을 잘 견뎌내려는 몸짓이었다. 동진은 그림자처럼 그녀를 따라다니면서 현석과 경석 형제를 보살펴 주었다. 동진은 현석이네의 가장 친근한 이웃이나 마찬가지였다.

  매일 저녁 보리쌀 삶을 시간대에 방영하는 어린이 TV 만화, 태권브이. 마징가 제트, 마린 보이, 원더우먼을 보기 위해 동진은 동네 조무래기들과 함께 현석이네 셋방으로 오는 게 일상이 되었다. 어린이 만화 프로가 끝나면 다른 집 아이들은 TV 앞에서 스스로 일어나는데 동진은 저녁밥 먹을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가지 않았다. 그녀는 주인집 할머니에게 동진 엄마와 아빠에 대해 묻지 않았다. 해가 저물고 저녁시간이 되었는데도 손자를 데리러 오지 않는 할머니가 그녀는 무서웠다.

 

  현석이 아빠는 회사 일로 동분서주 주말에 한 번 올까 말까했다. 남편이 다녀가고 나면 주인집 할머니가 그녀를 안채 대청마루로 불러 앉히고 이것저것 캐물었다.

  어느 회사를 다니느냐? 왜 집에 오지 않느냐?

  애들 아빠는 이제 막 건설 중인 공장 - 서울 K 본사에서 파견 나온 자재 괸리 책임자이다. 주야로 작업이 진행되므로 회사 기숙사에서 숙식을 한다. 공사가 종료 되는대로 다시 서울로 간다. 집 계약서 쓸 때 미리 알렸지만 할머니의 궁금증은 끝이 없는 듯하다. 할머니의 채근과 탐색, 질문이 뜸해진 것은 그녀 집에 TV가 들어앉고 부터였을까.

  소형 장롱처럼 좌우로 문을 드르륵 열면 TV 몸체가 드러나는, 당시는 그런 형태의 TV가 대세였다. 오전리 산동네에서는 아랫마을 이장네와 그 마을 부녀회장이라는 영갑이 할머니네, 그리고 주인집이 고작이었더니 현석이네까지 도합 네 집이 되었다. TV는 놀이터가 없는 동네 조무라기들을 현석이네로 불러들이는 강력한 매체가 되었다.

 

  서울과 수원을 잇는 도로변에 이제 막 큰 공사판을 벌린 K 건설회사 말고도 〇〇제약회사, 〇〇화장품공장 등 몇 개가 더 있었다. 교통과 생활 편의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산마을로 처자식을 이끌고 모여든 도시 유민들이 골목마다 넘쳐났다. 왕천초등학교로 내려가는 큰 길을 따라 급속하게 형성된 상가는 아침저녁뿐 아니라 하루 왼 종일 시장판처럼 북적댔다.

  서울로 가는 버스 노선이 새로 개통되고 오전리 마을 뒷산 중턱에는 흡사 벌집 닮은 형태의 간이주택들이 속속 들어섰다. 주택이 무슨 벌집 같다고 할까. 아니 주택이란 말은 택도 없다. 스레이트 지붕에 들어가는 문만 있지 바람이 지나갈 창문 하나 없는, 방 한 칸에 부엌이 딸린 무허가 판잣집이었다.

  출입문을 열면 곧바로 연탄아궁이가 눈에 들어오고 연탄아궁이 위에는 김이 솔솔 나는 커다란 양은솥이 얹혀 있는 풍경은 어느 집이건 비슷했다. 연탄가스가 부엌과 방안을 가득 채워도 부엌문 겸 출입문을 여는 것으로는 별 효과가 없는, 상당 부분 위험하고 불편한 주거공간이었다.

  그녀가 세든 집은 그 마을에서 몇 안 되는, 제법 잘 지은 기억 자 형태의 기와집이었다. 집 앞에 작은 개울이 있고, 오전리 뒷산을 배경으로 고즈넉하게 자리 잡았다. 창문이 산등성이쪽으로 두 개나 뚫려 있어 방과 부엌은 넓고 밝았다. 출입문 앞에 쪽마루가 놓여 있어 쪽마루는 아이들의 간이 놀이터가 되었다.


  펌프 가로 소리 없이 다가 온 작은 그림자, 동진의 조그만 얼굴이 검게 그을려 있다. 코가 오뚝하고 눈빛은 언제 보아도 맑고 깊었다.

“아줌마! 제가 할 게요!”

“동진아! 학교에 안 가니?”

  왕천초등학교는 그 마을의 유일한 교육기관으로 만약에 중학교에 진학하기로 하면 큰 도시로 유학을 가야 한다. 외지로 유학가려면 공부를 더 잘해야 할 것이었다.

“아줌마! 제가 물을 풀게요!”

“힘들어. 너는 안 돼!”

  펌프는 동진의 키보다 더 높았다.

  주인집 할머니가 달려왔다.

“이누무 새끼! 저리 비키지 못해?”

  할머니는 동진의 작은 체구를 양동이로 밀쳤다. 동진이 두 손으로 머리를 싸안고 우는 시늉을 한다. 그녀는 묵묵히 펌프 대에 힘을 준다.

“내 말 좀 들어보라구! 애기 엄마 네가 우리 집에 이사 오고 나서 동네 아새끼들이 시도 때도 없이 이리루 모여 들잖어. 우리 손자 녀석까지 병아리 새끼마냥 애기 엄마만 따라다닌단 말여.”

  할머니의 역정이 시작되었다.

“즈그 애들도 셋이나 되면서 대체 무슨 까닭으로 동네 애들을 받자하는 겨? 애가 셋이나 있어 세 안 줄라 했는데 애기 엄마가 인상이 선하고 해서 내가 그냥 주었던 거여. 알지? 저기. 저것 좀 봐! 꽃 대궁 부러진 거 보여? 안 보여? 내 눈에 띄었으면 뉘 집 아 새낀지 당장 손모가지를 끊어놓을 것을.”

  할머니가 안채 건물 앞 화단의 백일홍 나무를 보라한다. 막 봉오리를 벌기 시작하는 백일홍 꽃대가 무참하게 꺾여 있었다. 오늘 낼 활짝 피어날 연분홍 꽃봉오리였다. 할머니는 사람보다 꽃이 먼저인가? 아들내외가 없어 심화가 깊은가.

  화단에는 채송화, 과꽃, 분꽃, 백일홍, 봉선화, 금잔화, 나팔꽃 등, 대부분 일년초들이 가득 심겨져 경쟁하듯 꽃을 피워냈다. 그 중에서 넝쿨 화초들은 넝쿨 순을 허공으로 마구 뻗어 올리고 있었다. 마치 도시에서 살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다가 개발 붐을 타고 산마을로 몰려온 다수의 무리처럼 나팔꽃, 수세미, 등나무, 포도나무는 뒤죽박죽으로 얽힌 꼴 새였다.

“동네 애들 못 오게 좀 하구랴! 당최 시끄럽고 정신머리 사나워. 도시 개발인지 뭔지 바람이 불어설랑 큰 공장들이 들어서는 바람에 동네 인심이 사나워졌어, 저자에 맨 낯모르는 사람들이 벅신거리니 문밖출입도 조심스럽다고.”

  할머니는 바가지로 물을 펑 펑 퍼서 양동이에 채우며 푸념한다.

“애기 엄마! 이것 좀 번쩍 들어다 우리 정짓간에 가져다 놓구려!”

  그녀는 숨이 가쁘다. 펌프 구르는 동작을 멈추지 않는다. 멈출 수가 없다. 멈추면 더는 펌프를 구를 수가 없을 것 같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같이 펌프를 구르다보니 기진맥진이다. 서울에서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주르르 쏟아지는 순조로운 환경에서 살다가 주인집 물까지 대령해애야 한다. 어린이집도 개설되지 않은 산마을에서 취학 전의 아이 셋을 혼자 돌보아야하는 그녀는 체력이 달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사 오지 말 것을, 오랜 가뭄과 물 긷기는 감히 예상을 못하던 일이었다.

  동진할머니는 식식거리며 물 양동이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간다. 땅딸한 체구에 목덜미의 탄력은 삼십이 채 안 된 그녀를 능가했다. 가뭄이 길어져 물이 귀하다보니 산 아래 큰 우물에서는 자주 분쟁이 일어났다. 물통을 순서대로 대놓아도 잠시 한 눈 팔면 뒷전으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눈에 불을 켜고 밤을 새우다시피 지키고 있어야 겨우 차례를 찾아먹을 수 있다고 했다. 할머니 말에서 너희는 펌프가 있는 집에 세사는 걸 고마운 줄 알아라 하는 듯한 뉘앙스가 언뜻 내비쳤다.

  남자들은 공장일도 고달픈데 집안에서 사용할 물까지 길어주고 출근을 해야 했다. 아낙네들이라고 종일 다리 뻗고 누워 지내는 것도 아니다. 대규모 채마밭을 소유한 그 마을 토박이 이장네의 밭일을 도우거나, 영갑이 네에 세든 열댓 가구가 집단으로 사용하는 공동변소를 청소한다든지, 안채 마당과 셋방 가구를 연결하는 긴 통로의 상수리나무 아카시나무 사이로 눈치껏 싸리비를 끌고 다니거나 했다. 흔해빠진 시금치라도 한 소쿠리 얻어먹기는커녕 일 같지도 않은 일들이 셋방살이하는 아낙네들을 고달프게 했다.

  부모 따라 산마을로 이사 온 아이들은 저녁 끼니때가 되면 현석이네로 제 어미가 데리러 온다. 대개는 아이들 스스로 TV 앞에서 일어난다. 동진은 아니다. 애들을 부르러 온 어미들은 단칸방에 참하게 들어앉은 이웃아이들을 보고 그녀에게 고맙다고, 혹은 미안하다고 인사를 차렸다. 그 중 한 엄마는 쑥개떡을 쪄서 가져 오기도 했다.

  그녀는 집에 가지 않고 남아있는 동진에게 요기할 것을 준비한다. 혼잣손에 애들 셋을 건사하기도 벅찼으나 동진을 내칠 수는 없다고 여긴다. 떡볶이를 해주거나 오뚜기 라면을 한두 개 더 끓여 동진을 먹인다. 가끔은 서울우유 공장 넘어 먼 산을 올라가는 초입에 있는 양계장에 애들을 데리고 간다. 계란을 사와 막걸리를 넣고 빵을 쪄주기도 한다. 간식 겸 자주 해먹는 음식이므로 하는 김에 동진이도 챙겨주었다.

  동진이가 현석이네의 단칸방에 붙박이처럼 앉아 있는 것은 그녀가 이 등칫골로 이사 오고부터라고 해야 맞다. 작은 장롱처럼 생긴 TV를 구입하기 전, 동진의 용건은 현석이와 산에 올라가는 일이었다. 현석이 영문을 몰라 주춤 거리면 동진은 제 등을 내밀고 현석에게 업히라고 했다. 8살 동진이가 현석이를 동생처럼 보살핀다. 현석이 동진에게 업힐 때 보면 영락없는 가을 들판의 메뚜기 형상이다. 어미 몸보다 더 큰 새끼메뚜기는 현석이었다.

  산딸기는 동진이 뿐 아니라 부모 따라 산마을에 강제로 편입된 아이들에게 긴요한 간식이었다. 잘 여문 산딸기 말고 까치 시엉, 껍질 벗기고 씹어 먹는 연한 식물이 또 있다. 까치 시엉은 아삭아삭한 게 씹는 소리도 시원하고 목이 마를 때 제격이었다.

  그녀도 애들을 따라 두어 번 산딸기를 따러 간 적이 있다. 가시덤불을 헤치느라 손등을 긁힌다. 때로는 벌떼의 습격을 받고, 산딸기나무 아래 똬리 틀고 있는 독사를 만나기도 한다. 큰 바위가 많은 등칫골 뒷산엔 유난히 뱀 굴이 많다. 그렇게 딴 산딸기를 동진은 현석이 바구니에 몽땅 쏟아주었다. 현석이가 사양해도 동진은 막무가내였다.

  할머니는 동진이 학교에 가건 말건, 산딸기를 따러 가건 말건 별로 참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끼니때가 되어도 동진을 데리러 오는 일이 없다. 가끔 동진이 현석이 네에 오지 않는 날은 안채에서 동진의 울음소리와 함께 할머니의 격앙된 목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그녀는 남편이 집에 오는 날. 수면에 방해가 될까싶어서 바람이 불거나 비가 내리거나 상관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산으로 들로 헤매고 다닌다. 그럴 때도 동진은 그녀를 졸졸 따라왔다. 지금 생각하면 어미의 사랑을 갈구하는 그애의 방식이었다. 동진에게 좀 더 따뜻하게 대해 주었더라면 하고 후회 할 때가 있다. 사랑은 주어도주어도 마르지 않는다고 했던가.


  동쪽으로 향한 부엌 한가운데로 아침 햇살이 질펀하게 깔려 있다. 엄마의 기척에 여섯 살 현석이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온다.

“엄마! 동진이 형 왔어?”

“동진이 이따가 올 거야. 현석이 배고프지? 우리 밥해 먹자!”

  배가 고픈 것은 그녀였다. 두어 시간 넘게 펌프질을 해댄 끝이라 허기가 진다.

  쌀을 씻어 뚝배기에 뜨물을 받아 냉이를 넣고 된장을 푼다. 저번에 사다가 묻어둔 파를 개울가에 내려가 두어 뿌리 뜯어온다. 잎 새는 시들었어도 뿌리 쪽은 실했다. 그녀는 세 아이들을 이끌고 식재료를 사러 2km도 넘는 산 아래 상가에 내려가는 일을 힘들어했다. 주인 집 텃밭에는 열무며 배추 상추, 깻잎 풋고추 파 호박, 없는 것이 없지만 그림의 떡이다.

“현석아! 동생들 깨워줄래?”

  뻐꾸기시계는 오전 9시를 가리키고 있다. 그날따라 펌프 구른 시간이 길었던 탓이다. 찬장 위에서 소반을 내려 주섬주섬 밥과 반찬을 진설하고 방안으로 들고 들어간다. 경석이와 순미도 현석이 옆에 나란히 앉았다.

  불구덩이 같은 뜨거운 햇살이 집 건물 안팎으로 열을 뿜어내고 있다. 햇살이 부엌 벽을 달구는 이맘때면 새빨간 등짝에 둥글고 검은 반점이 박혀있는 무당벌레가 금빛 날개를 펼치고 눈부신 축복처럼 떼 지어 날아왔다. 무당벌레는 길이가 고작 1cm도 채 안되는데 광택이 나고 화려한 몸체가 흡사 무당처럼 보였다. 무당벌레, 혹은 딱정벌레 뒷박벌레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만 80여종이 있고, 일본에서는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천도충(天道蟲)이라 하고, 프랑스인들은‘하느님이 주신 좋은 선물’독일에서는‘성모마리아 딱정벌레’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무슨 행운인가. 귀한 명칭을 가진 무당벌레가 무리지어 날아온 게 그녀는 신기했다. 진딧물이나 잡아먹고 산다는 무당벌레가 그처럼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색깔이 유려하고 그들의 군무는 볼수록 황홀했다.

  순미는 여느 아이들보다 더 무당벌레를 좋아하는 것 같다. 무당발레를 보기 위해 밥을 빨리 먹은 듯 순미의 볼에 하얀 밥풀이 눈꽃처럼 붙어 있다. 옷에도 다리에도 밥풀이 붙었다. 순미를 안아 올려 밥풀을 뜯어준다.

  무당벌레를 발견한 현석이와 경석이가 환성을 지른다. 순미도 좋아라 손뼉을 짝짝 친다. 세 아이가 벽 쪽으로 다복다복 붙어 서서 무당벌레를 구경한다. 이웃 아이들이 하나 둘 현석이네로 모여든다. 산동네 조무라기들의 새로운 날은 늘 그 지점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누무 새끼들! 또 왔어?”

  할머니 손에 커다란 물바가지가 들려 있다.

“앗 차거워! 왜 물을 뿌려요?“

  아이들의 항의하는 목소리가 이구동성으로 골짜기를 울린다. 어느 엄마도 아이들이 욕을 먹건 물벼락을 맞건 나와서 항의하는 목소리가 없다. 항의는커녕 숫제 알지도 못한다. 연탄 냄새에 취해 쪽방에 널부러져 있거나 왕곡천으로 빨래를 하러, 혹은 산더덕을 캐러 큰 산에 갔는지 그녀는 그들의 행방을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할머니는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아이들이 흩어져 간 골짜기를 노려본다.

  아침 설거지를 마친 그녀가 밖으로 나온다. 무당벌레가 앉았던 부엌 벽엔 물 얼룩뿐, 그 많던 무당벌레는 한 마리도 남아있지 않았다. 무당벌레를 환호하던 동네 아이들도 흩어져갔다. 공을 차거나 줄넘기할 평지조차 없는 산마을에 이사 온 아이들이 그녀는 가엽다.

  몸을 돌려 언덕 아래를 내려다본다. 순미가 엄마를 보자 아장아장 다가온다. 물을 홈빡 뒤집어 쓴 듯 순미 머리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움켜쥔 주먹에는 무당벌레가 소복 들어 있다.

“순미야! 이게 뭐야? 무당벌레 예쁘지? 살려줄까?”

  순미 주먹에 든 무당벌레를 날려 보낸 후 순미를 안고 방으로 들어간다.

“내가 뭐랬어? 동네 아새끼들 받자하지 말랬지? 젊은 댁이 이 노인네 말을 개머루로 듣는 거여? 뭐여? 그렇다면 우리 집에 못살지. 암 못 살고말고.“

  가뭄이 심해지면서 할머니의 성정이 더욱 험상해진 감이 없지 않다.


  물벼락을 맞고 흩어진 아이들이 한 낮이 기우는데도 돌아오지 않는다.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산마을은 깊은 정적에 잠겨 있다. 그녀는 순미 손을 잡고 펌프 가를 서성거린다. 시간은 바삐 흘러갔다.

  저녁 어스름이 산마을을 휘감는다. 그녀가 뒷산을 바라보며 망연히 서 있다.

“현석아! 경석아! 동진아.”

  산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현석아! 경석아! 동진아!’

  산이 대답한다.

  후두둑! 두둑, 두둑! 빗방을이 떨어진다. 순식간에 검은 구름이 무더기로 몰려온다. 바람이 솨아! 산과 숲을 휩쓸고 지나간다. 현석이가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다. 경석이도 뒤따라온다.

“와아! 비야 비! 비가 온다!”

  그녀가 손바닥을 펴 빗물을 받는다.

“동진 형아! 비 온다! 얘들아! 빨리 내려와!”

  빗방울이 굵어졌다. 바람결도 점점 거세진다. 현석이네 가족이 합창으로 부르는 소리가 빗소리에 묻히고 만다.

   좌륵, 좌르륵! 딱!

  영갑이네 지붕 기와가 깨지는 소리일까. 빗소리가 더욱 사납다. 그녀가 순미를 등에 업고 한 손으로 현석이 손을, 현석이는 경석이 손을 잡은 채 집으로 뛰었다. 그때였다.

- 등칫골 주민 여러분. 폭우 주의보를 알립니다. 오늘 밤중에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내린다는 기상청 예보입니다. 만일에 대비하여 간단한 물건을 꾸려 부녀회장 집 안마당이나 마을회관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곧 피난을 서둘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오전리 마을 부녀회장 〇〇이 전해드렸습니다. -

  방송은 여러 차례 반복되었으나 거친 빗소리에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엄마! 동진이 형 어떻게 해?”

“내려 올 거야. 어서 방으로 들어가!”

  그녀는 애들에게 젖은 옷을 벗기고 새 옷을 입혔다. 전등불이 꺼졌다. 천지가 캄캄하다. 그녀가 초를 찾아 켜는 동안 빗소리는 더욱 강하고 위협적으로 변했다.

  구릉! 구릉! 험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큰 산이 꺼지는 변고를 예고하듯 그것은 음울하고 구슬프게 이어졌다.

“얘들아! 잠들면 안 돼!”

  그녀가 앉은 채로 졸고 있는 애들을 일깨운다.

  콰르릉 딱! 딱!

  천둥 번개가 하늘을 부술 듯 요란하다.

 "주민 여러분! 어서 집밖으로 나오십시오! 현재 경기 남부 지역의 강우량이 500mmm에 이르고 있습니다 …….“

   마을 회관에서 방송이 나오다말고 끊겼다.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추세다. 집 앞 작은 개울은 눈 깜짝할 사이에 황토 강이 되었다. 큰 바위들이 구릉, 구릉 굴러가며 아랫마을을 휩쓴다. 나무가 뿌리 채 뽑히고 집 기둥이 맥없이 쓰러진다.

  우지끈 딱!

  무엇이 무너지고 무엇이 결단 나는 소리일까? 하늘의 소리를 제외하고는 인간의 소리는 일체 감지되지 않고 있다.

“빨리 나오세요! 위험합니다.”

  홀연 창밖에서 마을 장정들이 외쳤다. 맨 먼저 현석이가 장정의 손에 끌려 영갑이 네 마당으로 이동했다. 그 다음은 경석이, 마지막으로 그녀가 순미를 안고 창문을 넘었다. 가방이고 물건이고 아무것도 챙기지 못했다. 물 흐르는 소리가 일체의 감각을 마비시켰다. 수 십 개의 집채 만 한 바위덩어리가 탱크 굴러가듯 구릉, 구릉, 괴상한 소리를 냈다. 현석인네 집도 맥없이 거센 물결에 휩쓸렸다.

  그 밤 등칫골에 둥지를 튼 다수의 사람들은 부녀회장네의 안마당에 멍석을 펴고 빙 둘러앉아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날이 밝았다. 뒷산 중턱의 게딱지 집들과 그 한 참 아래 있는 동진이네 집 건물이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작은 개울이 거대한 황토 강으로 둔갑, 황토 강은 아랫마을 초가집들을 무너뜨리고 저 멀리까지 흘러내려 바다처럼 넓고 깊었다. 사람들은 숫제 입을 열지 못한다.

 

‘1977년 7월 7일 오랜 가뭄 끝에 갑작스런 집중호우로 오전리 일대에 산사태가 일어났다. 7월 8~9일, 이틀 동안 안양천 유역에 쏟아진 집중호우로 인하여 시흥에서는 산사태가 일어났으며, 안양천은 유수량을 미처 배수하지 못하여 안양시 일대가 침수되었다. 그 당시 집중호우의 기록은 안양지역 460㎜, 시흥 400㎜, 영등포 343㎜였다. 이는 1925년 을축년 대홍수와 버금가는 사건이었다.

특히 왕곡천과 오전리는 물바다가 되었다. 〇〇초등학교도 창고와 별관 뒤쪽 담장 및 정문 좌측 담장이 붕괴되는 등 피해를 입었다. 면사무소에서는 수재민들에게 라면과 담요를 지급하고 마을 회관 뒤편에 천막을 지어 수재민을 긴급 수용했다'.

 

   신문에는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일어났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오전리 산마을에서만 사망자가 0명이라고 했다. 산속에 들어갔던 동네 아이들 중 6명이 죽고, 실종자는 동진이 한 명 뿐이라는 비보였다. 이장님은 동진이 할머니가 초저녁잠에 들어 미쳐 빠져 나오지 못하고 급물살에 휩쓸려 〇〇교회 아래 논바닥에서 겨우 시체를 찾았다고 전했다.

  마을 회관은 시체 안치실로 변했다. 회관 밖이나 안은 똑같이 참혹했다. 동진이는 쉬이 돌아오지 않았다. 오전리 산사태 뉴스가 TV와 신문에 떠들썩해도 동진은 마을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동진이 할머니는 무연고로 지정, 면사무소 주관으로 합동장례식을 치렀다. 면사무소에서 신속하게 천막을 세워 수재민들을 수용했다. 수재민 대부분은 불량주택에 거처하던 사람들이었다. 마을 사람 누구도 동진의 행방을 찾지 않은 채 가을을 맞이했다. 수재민 천막에 귀뚜라미 소리가 잦아들 무렵 현석이 아빠의 회사일이 일단락되었다. 현석이네는 동진의 소식을 알길 없는 채 수재민 생활을 마감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타고난 운명으로부터 도망갈 수 없는가. 사는 동안 수많은 고난과 불운가운데서도 자비로운 전능의 신은 변함없이 인간을 지켜주는 것인가. 현석이네 일가는 산마을을 떠나 서울 본집으로 무사히 복귀했다.

  그녀의 남편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현석, 경석은 해외에서 살고 있다. 순미도 곁에 없다. 그녀는 혼자서 세기물산 신축공장 개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여름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오전리 가는 길은 넓고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연도의 가로수와 건물들도 잘 정리되고 거대해보였다.

  그녀는 택시에서 내려 산중턱에 아담하고 낮은 직사각형 건물이 여러 동 늘어서 있는 길을 더듬어 올라갔다.

  개관식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안내하는 직원을 따라 대강당에 들어서자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박동진이 뛰어와 그녀에게 덥석 안긴다.

“아! 고향 냄새! 아줌마가 바로 저의 고향이었어요.”

  동진이 울먹였다.

 "네가 원한다면 내가 너의 고향이 되어주마!"

  동진이 고개를 끄덕인다.

“제가 댁까지 모셔다 드릴 게요”

  동진의 차에 동승했다. 세기 물산 박동진 사장의 차에서는 아름다운 노래가 흘러나왔다.‘나의 살던 고향’이었다.

  그녀가 작은 소리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순간 운전대를 잡은 박동진의 눈에서 등칫골 산딸기를 닮은 여문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