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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시상식

능엄주 2019. 9. 13. 22:38

 

아들이 전화했다.

 점심시간에 한두 시간, 시간을 내서 어머니를 시상식이 열리는 장소까지 모셔다 드릴 수가 있다고.

아니다 아들아! 점심시간이 아니고 15시 30분이란다. 아무 걱정하지 마라!  다행스럽게도 소설가 젊은 친구가 우리집까지

나를 데리러 온다고 했단다. 돌아 올때는 출판사 편집장이 모셔다 준다고 했어. 아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는 끙끙 신음소리를 내면서  과연 내가 오늘 남들 앞에 설 수 있을까.

사람들이 나를 선보러 오는 건 아니지만 독감으로 한 달여를 골골 앓다가 외출은 솔직이 큰 부담이 되었다. 

입고 나설 옷도 마땅치 않았다. 병원에는 숱한 돈을 퍼부으면서도 옷을 산다거나, 맛있는 것을 먹는데는 매번 소홀했다. 소홀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병마에 쫓기다가 나를 위한 다른 볼 일을  놓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런 내 사정을 알고 예쁘고 씩씩한 젊은 작가 한 분이 나를 위해 오늘 하루 기꺼이 봉사를 해준다니, 그 마음이 고마워서도, 용기를 낼 수밖에 없었다.

하늘은 짙게 흐려 빗방울이 장난하듯 떨어지고, 후덥지근 찌고 덥지만 내 몸은 한기가 났다. 옷장에서 근근이 골라놓은 , 나의 푸릇푸릇 빛나던  어느날. 입었던 원색의 옷을, 가을빛이 선연한 보랏빛 원픠스위에 걸치고 시상식이 열리는 목동의 대한민국예술인센터로 달려갔다.


연도에 피어난 달맞이꽃이 등불을 켠 것처럼 내 갈아앉은 기분을 한껏 돋아주는 듯햇다. 내가 탄 차는 1시간 남짓 걸려서 목적지에 도달했다.  꽃을 달고 수상자 석에 앉자마자 지인들과 친구들이 다가와서 악수를 청했다.

"축하합니다!"

"축하한다. 친구야!"

 나는 악수를 하면서도 내 목안 깊숙히 숨어 있는 기침이란 무뢰한이 폭군처럼 쳐들어 올가봐 줄곧 마음을 졸여야 했다.


대체로 시상식 장 분위기는 안정돼 있고, 수상자들의 가족과 친지들은 수상자보다 기분이 고양돼 있었다. 그들이 수상하는 당사자보다 더 분주히 오가는 모습이 보기에 흐뭇했다.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기침을 촉발하는 웃음이라든가 말의 기회를 될 수록 줄이는데 신경을 곤두세웠다.  

문협 이사장님의 축사에 이어 순서대로 시상식은 진행되었다.  문득 상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소설가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문제는 나의 수상소감이었던가. 내 차례가 되어 나는 단상에 올라갔다. 미리 준비해오지 않은 수상소감을  중언부언 했던가.

지금 기억 나는 것은 

"단편이든 장편이든 한 작품 낼 때마다 나는 죽도록 몸살을 앓는다. 그러나 고생하고 애쓴 그 보람은 크다. 내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 영광스런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이 상을 제정하신 한국문협과 이사장님을 비롯, 축하헤 주기 위해 이 자리에 오신 분들에게도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


자리에 돌아와 숨을 돌리고 있을 때 갑자기 한 소리가 내 귓전을 울렸다.

한 번 두 번, 반복되는 그 소리에 나는 고개를 뒤쪽으로 돌렸다. 세상에나! 그 소리의 주인공은  여고 동창 K였다.

"죽을 만큼 고생하면서 글은 왜 쓰니? 왜 써?"

내 옆의 다른 장르 수상자들에게도 들릴 만큼 큰 소리였다.


그 순간 잠복해 있던 기침이 촉발되려고 목안을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간신이 버티고 있던 내 심신이 솨르르! 무너져 내렸다.

평소에 나를 만나면, 카톡과 문자로도 '우리의 자랑스런  작가! ' 어쩌구 하면서 노상 옥타브 높여 용비어천가를 늘어놓던 K가 아니던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맨 뒷 자리에 앉아있던  K는 앞줄에 앉아있는 내 가까이 달려와서 그걸 말이라고 내뱉은 것인가.


내 몸이 괴로워서 일정을 마치고  곧장 집에 돌아왔다. 기침이 행사가 끝날 때까지 폭발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거실에 앉아 상패를 바라보는데 느닷없이 눈물이 솟구쳤다. 상을 위하여 수십년  동안 글을 써온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상은 인증받는 것이고, 창작의욕을 부추겨 주는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그런데 하필이면 글쓰기로 상 받는 날  "글을 왜 쓰냐" 고 공격하던 친구는 대체 그 심사가 무엇일까?


장하다! 능엄주!

그동안 수고 했어!  더 큰 상을 위하여 매진하자!

나는 나에게 위로를 건넸다. 기침과 눈물을 참고 집까지 무사히 돌아온 나에게 또 하나의 내가 감사 인사를 전했다.


오고가는 길을 수고롭지 않도록 자청해서 운전을 해준 젊은 소설가에게도 깊이 감사했다.

눈물의 시상식이 아니라 영광의 자리였으며 ,앞으로 더욱 찬연히 빛날 꿈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