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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희야 뭐 하니?

능엄주 2015. 4. 13. 08:36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

잠잔다 잠꾸러기

세수한다 멋쟁이

밥 먹는다

반찬은 뭐니?

개구리 반찬

죽었니 살었니?


“살았다!” 하고 술래가 대답하면 술래 앞에 늘어서 있던 아이들이 일제히 와아! 함성을 지르며 도망간다.

만약에 “죽었다!” 하면 그 순간 말도 하지 말고, 웃지도 말고,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멈춰 있어야 한다.

어쩌다 잘못하여 술래에게 잡혀 새로 술래가 된 아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억울해 했고, 술래에서 해방된 아이는 득의양양했다.

아득히 먼 날의 일들이 낡은 필름처럼 펼쳐진다. 승권이의 전화 때문이었다.

 

“영희야 뭐 하니? 나 지금 애기 본다.”

와이프는 어디 갔어?

“응, 외출했어. 오늘은 내가 당번이야.”

당번이 다 있어?

“그래, 근데 이게 장난 아니다. 힘들어 야.”

애 보는 일이 장난이 아닌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리면서 통화는 중단되었다.

 

갑반과 을반 두 반뿐이던 C교대부속초등학교는 중도에 학교를 그만 두거나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가서

6학년 졸업 때는 그 숫자가 대폭 줄었다. 그래서 더 소중하고 친 동기간처럼 정이 들었다.

형제들이 많고 보니 위아래 언니 오빠들과도 얽히고 설켜서 누구 네 집에 사발나팔꽃이 활짝 피어서 아침마다 울타리 밖 나팔수 역할을 하는지, 누구 네 할머니가 대꼬바리를 더 세게 두들기는지, 누구 네 고양이가 더 암상궂은지 아이들은 죄다 꿰뚫고 있었다.

 

승권이의 전화 이후 며칠이나 지났던가.

“영희야! 승권이가 심장수술을 받다가 그만…….”

영석이는 말끝을 잇지 못했다. 용인에 사는 정자도 비통한 심정을 문자로 날렸다.

“벌써 가는 게 어디 있니. 나쁜 자식……”

영석이가 울먹였다.

 

파란 하늘 가로 아이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술래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해 달려가는 아이들의 발소리.

그 속에 승권이의 검정색 운동화는 보이지 않았다.

 

“영희야 뭐 하니?”

승권이의 느슨한 충청도 사투리도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