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한 마음
많은 시간과 물적 심적 노고를 기울여 작품집 한 권 생산하느라 진이 다 빠져버렸다.
그 틈을 타고 삼복 염천에 독감이란 놈이 침투했다.
지난 6월 24일 부터 8월 5일 오늘 현재까지 내 육신은 독한 기침과 가래 생산 공장으로 변한 느낌이 들 정도다.
작년보다는 더위가 그다지 심하지 않아 컴퓨터 앞에서 장시간 뜸을 들여도 고단한 줄 몰랐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냥 연례행사처럼 가볍게 찾아오는 감기 손님인 줄 알았더니 기침의 기세가 맹수처럼 사납다.
동네 병원, 서울특별시 병원, 이약 저약, 민간요법 , 내가 아는 고뿔 퇴치 방법을 다 동원하였으나 얼마나 그악스럽고 모진지 끄떡도 안 한다. 긴긴 여름해가 나에게 지옥터널이 되었다. 밤이라고 편안한 수면을 누려볼 수 있는가 하면 그건 더 아니다.
밤엔 저승사자까지 동행해서 오장육부가 뒤집히도록 기침으로 지샌다. 울컥! 울컥! 콧물과 눈물, 가래, 진땀 범벅으로 헤매다보면 날이 밝는다.
그 와중에 내 책 [입실파티]가 세상에 나왔다. 반갑기도 하고 두려웠다.
최소한 그동안 책 빚을 진 동료들과, 내 책을 좋아하는 측근들, 그리고 존경하는 선 후배 선생님들께 책을 발송하기로 결정했다.
아프다! 힘들다! 하는 내 육체의 신고辛苦가 쉬이 끝날 것 같지 않아서 과감하게 용단을 내린 것이다. 과감이 아니라 극도의 무식, 무지의 소치였다.
더 힘들고 어렵게 사는 이웃들도 있는데 까짓 독감이 대수랴! 결코 독감은 까짓 게 아닌 것이 날마다 내 몸을 통해 증명되었다.
아침 나절은 매우 하늘 맑고 바람 잔잔해서 안심하고 도모한 일이었다.
한 나절이 지나자 회오리처럼 바람이 몰아쳤다. 기왕 하고자 한 일인데 비바람이 문제인가.
한다면 한다! 나는 홀로 기함을 토했다. 낑낑대면서 한 권 한 권 사인하고, 주소 쓰고, 풀로 붙인 후, 산더미 같은 책 보따리를 이고 지고 우체국에 갔다. 그리고 평상시 보다는 훨씬 많은, 거액에 가까운 우편요금을 카드로 결재했다. 돌아올 때는 캑! 캑! 콜록콜록! 인정사정 없이 기침이 폭발했다. 나는 길가 벤치에 주저앉아 허리를 펴지도 못하고 절절맸다.
거대한 문단 단체의 선생님은 문인끼리 서로 존경하라! 가끔 훈시를, 격려 말씀을 하신다.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랑하겠느냐고 하신다. 존경 존중 사랑. 다 좋은 말이다. 나는 그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문학 동지들이 보내오는 책을 받는 즉시,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한다. 전에도 해왔지만 더 충실하게.
"애쓰셨어요! 대단하십니다, 잘 읽겠습니다. 문운이 함께 하십시오!" 대개는 덕담이지만 그게 내 진심이었다.
어릴적 어머니가 별식을 준비한 날, 작은 오라버니와 내가 서로 경쟁하듯 어머니의 쟁반을 들고 골목을 뛰어가던 일이 생각났다. 이웃들에게 어머니의 요리를 나누어주는 심부름이었다. 아마도 나는 그때처럼 촌스럽고 구식의 사고방식으로 움직였는지도 모른다.
조금 있으면 휴가철이다. 서둘러 책을 발송한지 3,4 주가 지났다. 지금 회의가, 짙은 허무감이 엄습한다. 이것이 무명 작가의 울분일까? 다른 이들도 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까. 오늘 저녁은 유난히 씁쓸하다.
"등기로 보내세요! 중간에 없어져도 우리는 책임 안 집니다." 우체국에 갈 때마다 창구 직원은 늘 이렇게 권했다.
등기우편은 지역에 따라 우편요금 편차가 심하다. 기실 비싼 요금도 그렇지만 집에 사람이 있어야 받을 수 있는 단점이 있다. 오히려 상대방을 번거롭게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저래 일반 우편을 이용하거나 급할 때는 택배로 발송한다. 이번 지출 목록에서 우편요금은 내 병원비를 상회했다. 시원하고 예쁜 원피스 구입건은 물거품이 되었다. 더 이상 외출이 허용되지 않을 만큼 체력이 급하강했고 병원나들이만으로도 폭폭 지친다.
일반우편으로 보낸 게 문제일까! 그래서 책이 도중 분실된 것일까.
책 보내는 행위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소통의 역할 내지는 우의를 다진다. 동료의식을 고취하는 측면이 있을 터이다.
혹 내가 무시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벼라별 생각이 다 든다. 3주 4주가 지나도 이티저타 말이 없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야 옳을까. "등기로 보내세요!' 우체국 직원의 그 말을 듣지 않은 것이 잘못인가. 그도 저도 아니라면 [입실파티] 그 표지와 제목이 함유하는 의미가 사치스럽고 호사스러워 보여서일까?
사회적 지위가 높아서 그딴 책 한 권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 것인가.
유명세를 타는 어르신이라 책 같은 것은 거들떠볼 겨를이 없어서인가?
책이 가는 길이 하 멀어서 도착하지 않은 것인가? 수신자가 부재중인가?
아직은 허무하지 말기로 할까. 입맛 없는데 얼갈이 물김치나 담아라!
독감 기세가 수그러지지 않은 상태에서 입맛을 이끌어 줄 물김치 담그는 일 말고, 나에게 더 바랄 것이 무엇인가?
허무한 마음은 독감을 따라온 요물妖物이라고 생각하자!
20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