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설악의 기적(1)
8월 21일
설악산이라 하면 사찰의 성지순례로 수차례 갔던 신흥사 낙산사,
세미나 행사로 혹은 혼자서 다녀온 백담계곡과 백담사, 그리고 대명콘도에 머물며 수시로 바라보았던 울산바위,
그 울산바위 모습을 보면서 공손하게 부처님의 설법 듣는 중생들을 상상한 일, 날이 밝아올 무렵 대포항에 나가 막 배에서 내리는 싱싱한 생선을 산 일,
피서 길에 잠시 차를 세우고 철분 성분이 많아 위장병에 좋다는 오색약수 한 바가지 마시던 기억 정도였다.
강원도 지역에 친구 있어 춘천 속초 강릉을 몇 번 다녀왔지만 이번처럼 <바른법연구원>의 도반들과 남설악 등반을 시도하기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
21일 아침, 빗속에 남설악을 향해 떠났다. 오직 부처님 빽 하나 믿고서. 법사님과 함께 가면 오던 비도 뚝 그친다고 하던가.
윈도 클리너가 분주하게 앞 유리를 닦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도로는 내를 이루고, 시야는 짙은 비안개로 전후를 분간하기 어려웠다.
K 법사님의 스마트 폰에서는‘에델바이스’가 흘러나온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이어지는 곡은 구노의 ’아베마리아‘ 였다.
난롯가에 모여 앉아 구노의‘아베마리아’ 를 부르던 그 때 그 소녀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는가. 문득 그리운 시절을 회상한다.
빗줄기가 더 굵어진다. 바람도 거세게 일고 있는 것 같다.
2시간 쯤 달려 가평 휴게소에 도착, 뜻밖에도 나는 여고 동창 옥이를 만났다. 반가웠다.
당시 D신문사 기자와 결혼하여 현재는 준재벌이 된 친구를 여기서 만나다니. 잠시 손을 마주잡고 환성을 지르다가 차기 인사동 모임을 기약하고 각자 동행에게 돌아갔다. 김밥과 라면으로 점심을 먹는데 ‘바른법연구원 표’ 묵은지 궁합이 짱! 이었다.
12시. 가평휴게소 출발, 빗속에 춘천, 원주, 홍천 표지판이 희미하게 나타난다. 태풍은 지나갔는가.
현재 진행 중인가. 창밖엔 비의 리듬이, 차 안엔 사람의 리듬이 이어지는 가운데 K 법사님은 하버드대학교육보다 더 훌륭한 교육, 즉 <금강경>의 실용성을 강의하신다.‘자비, 팔정도, 자리이타’ 해보아야 먹히지 않는다고, 백성욱 박사님의 불교철학 즉 ‘바치는 것’ 이야말로 지혜가 생기고 인성, 창의성이 개발된다는 말씀이었다 .
‘<금강경>을 만나고부터 ’맹초의 업장‘에서 벗어났다는 K 법사님. <금강경>을 읽고 자꾸 바치므로 재앙이 축복으로, 불 건강이 건강으로, 가난이 부요로, 변화하는 법사님의 일곱 빛깔 찬란한 꿈.
터널 지나고, 다시 250M의 긴 터널을 통과한다. 마침내 비구름 잠시 비껴 간 광명한 천지가 전개된다.
춘천 강릉 가는 길이 펼쳐지는 듯하다가 또다시 화촌 터널을 비롯한 터널 몇 개가 연속적으로 다가온다.
다 왔나 싶으면 복병처럼 다시 나타나는 터널, 우리네 인생처럼 통과해야 할 터널이 너무 많다. 앞차가 하얀 물보라를 흩뿌리고 달려가고
비안개로 뒤덮인 주변풍경, 마치 지구 밖 외계인가. 은하계를 옮겨왔나 싶은 착각이 든다. 눈에 보이는 풍경이 없으니 귀로 듣는 음악이 더 간절해진다.
13시. 인제 터널에 이르러 주변의 산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운무가 온 골짜기를 휘감고, 그 운무는 용의 날개처럼 산머리에 올라앉거나 혹은 서성이기도 한다.
큰 산 밑에 그림 같은 집들이 띄엄띄엄 보인다. 새로 지은 펜션과 민박집으로 형태도 가지각색이다.
한계령으로 가는 길가에 칡넝쿨 우거지고, 왼편 높은 산엔 기암괴석이 뽐내듯 위용을 떨치고 있다. 구절양장으로 이어지는 길 몫에서 운전대를 잡은 Y보살의 뒷모습이 엄숙하고, K보살의 콧노래가 흥겹다.
13시 40분. 한계령 휴게소에 이르다. 여기는 바야흐로 안개바다, 비의 강물이다.
냉주스 한 잔씩 들고 비안개를 헤치고 앞으로, 앞으로. 빗속에 강행군, 이것 역시 <금강경> 수련의 한 종목이련가 하고 고개를 주억거려본다.
갑자기 속이 미슥거리고 울렁거리면서 머리에 열이 난다. 이름하여 차 멀미렸다.
내 체력이 한계령에 이르러 한계에 이른 것일까. <금강경> 독송 5개월 차 중생에게 부여한 부처님의 화두인가.
진땀이 폭폭 솟았다. 이 상황이 쾌적으로 변화하기를 발원하면서 급한 김에 손바닥 중앙을 꾹 꾹 눌러준다. 3 년 전 북한산 둘레길에서 김○○ 선생이 나누어준 막걸리 마시고 혼 난 일이 있더니. 그러나 안심이다. 차멀미도 내 마음이지 실상은 아닐 터.
15시. 비가 좀 뜸해질 무렵 오색그린야드콘도 505호실에 당도하다.
한옥 집처럼 높다랗게 뚫린 창문으로 바라보는 경치는 비안개 덕분에 운치가 그만이다.
깊은 산 깊은 골에 들어앉은 오색그린야드콘도는 용평 콘도와는 차원이, 격이 다르다는 법사님의 평가를 새겨볼만 하다.
집에서 챙겨온 비상약을 먹고 나는 자리에 누웠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기 두 마리가 윙! 하고 달려든다.
입추가 지났으니 설마 물진 않겠지 하고 방심한 게 잘못이었다. 순간적으로 손등과 어깨가 벌겋게 부풀어 오른다.
설악산 독모기의 환영인사였다.
18시. 거실에 빵과 포도, 천도복숭아를 진설하고 <바른법연구원> 도반들이 법사님을 중심으로 둘러앉았다.
폭우를 마다 않고 5~6시간 달려와 함께 만나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다른 뜻은 없고 쉬고 싶어 오시게 되었다” 는 말씀에 이어 자유롭게 기행문을 쓰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정비석의 산정무한, 이광수의 금강산 답사기를 읽으신 소감을 피력하신다. 아이고 어떡하지? 정비석의 산정무한을 흉내나 낼 수 있을까 몰라.
요즘 <금강경>을 읽으면서 늘 주체할 수 없이 넘쳐나던 내 감수성이 증발, 퇴색, 위축되어 글이 써 지지도 않고, 쓰기도 싫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소설 한 편, 수필 한 편 쓰지 않고 봄여름이 다 가도록 나는 방황했다.
계곡 물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온다. 시원하다. 심신을 힐링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본관으로 건너가서 캐나다 ○○ 님 메일에 답을 써 보내고 숙소로 돌아와 <금강경> 을 읽었다.
…當知是人 不於一佛二佛 三四五佛 而種善根…
…以今世人 輕賤故 先世罪業 卽爲消滅…
이게 무슨 말씀인가? 혹 내가 아는 누구 이야기인가? 아니 바로 나 자신인가.
<금강경>으로 하루를 열고 <금강경>으로 일과를 마감한다.
남설악의 기적(2)
8. 22.
수런거리는 소리에 선잠을 깼다. 밤 11시였다. 한참을 뒤채고 나서 겨우 잠이 들었다.
확실하게 들려오는 어떤 소리. 예민한 내 귀에 잡히는 그 소리. 법사님의 ‘미륵존여래불’ 이었다.
나는 얼른 수돗물에 얼굴을 행구고 소리의 현장으로 나갔다. 한 사람 두 사람 도반들이 모여들었다.
가지런히 대오를 지어 행진하듯 여러 목소리가 어울려 새벽을 깨운다.
가지런한 대오가 느슨해지기도 잦아들기도 하면서. 어떤 때는 다른 생각이 침투하여 글자를 잘못 읽거나 줄을 잃고 휘청거린다.
하얀 나비 한 마리가 주변을 돌다가 내 왼손을 스치더니 아예 날개를 활짝 펼치고 앉는다.
왜 일까. 나비도 <금강경>을 알고 있는가. 나비의 전생은 혹 어여쁜 소녀였을까.
5시 즈음하여 3독을 마친다.
6시. 이른 아침 식사. 흰죽 위에 잣을 얹었다. 죽을 뜨는 내 숟가락이 휘청한다.
그 사이 비는 그쳐 있고, 먹구름만 오락가락한다.
“커피 한 모금! 입안이 싹!” 하는 S보살님의 애교 있는 유혹에 진다. 한 모금 입에 물고 커피 향을 음미한다.
7시. 전원 남설악으로 출발! 출발 신호도 호각소리도 없다.
올 때 타고 온 차에 승차하면 출발은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먹구름이 수상하기는 하지만 법사님과 함께하면 오던 비가 뚝 그친다는 정설에 의지하기로 한다.
출렁다리 3개를 건너가 절 뒤뜰에 다섯 가지 색깔의 꽃이 피는 나무가 있어 오색석사라고도 부르는 성국사에 참배하다.
감로수 마시고 삼층탑도 보고. 대웅전 부처님도 뵙고 나서 도보 행군.
금강석처럼 변치 않는 마음, 부처의 지혜를 배우고자 들어가는 문,
잡귀가 미치지 못하도록 수호신이 지킨다는 안내표지판을 읽으며 금강문을 지나간다.
지모가 뛰어난 사람의 작품인가. 그 이름이 사뭇 미덥고 든든하다. 내가 읽는 <금강경>처럼.
비는 그쳤다. 먹구름이 양산 역할을 해주어 과히 덥지 않고, 등산객들이 폭우 예보에 등산을 자제하는가.
산은 텅 비어 있다. 오직 바른법연구원 도반들만 산을 오른다. 설악산을 통째로 전세 낸 듯 위풍당당하게.
용소폭포. 용이 물에 사는 동물이어서 일까. 연못은 용이라는 글자를 즐겨 쓴다.
하얀 포말을 날리며 일순 곤두박질치고 솟구치면서 뱅이고, 휘돌면서 아래로 용트림하며 흘러가는 모습이 용의 형상을 닮아서일까.
이 소에서 암수 두 마리의 용이 살았더란다. 그 중 숫용은 용이 되어 승천하고, 암용은 미처 승천을 못해 홀로 남아 이 장소에서 큰 바위와
폭포로 화했다는 전설. 얼마나 기가 막혔으면 바위가, 폭포가 되었을까.
콸,콸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물이 뿜어내는 에너지와 청량한 바람을 맞으며 내 속진을 떨어낸다.
용소폭포를 뒤로 하고 법사님을 선두로 전진 또 전진.
큰 비 내려 계곡물은 어디에나 풍성하게 흘러넘친다.
그 물살의 힘이 자못 압도적이면서 장쾌하다. 감히 어떤 장애도 끼어들 수가 없다.
너른 바위에 기대앉고 싶다. 물가로 내려가 발을 담그었으면.
어느 해. 가족과 함께 설악산에 올라 남자들만 대청봉에 올라가고 딸과 나는 중간 지점에서 멈췄던 기억이 새롭다.
이곳 남설악 경치가 몇 배 더 웅장하고 수승함을 당시엔 왜 몰랐던가.
마음씨 고운 도반들이 발걸음을 늦추고 헉헉대는 나를 격려해준다.
한 걸음만, 한 걸음만, 나를 부추기면서 위급할 때 먹는다는 공진단도 나누어 준다.
5분 오르다 5분 쉬고, 또 쉬고 하면서 부르는 나의 노래!
기필코 이 산을 올라야, 이 험준한 고갯길을 넘어야 내 문학, 내 학문이 설악산 계곡의 물의 힘, 산의 정기로 결실을 맺을 거라고,
이미 시작했고, 삼분지 이, 사분지 삼은 올라온 거라고 자위한다. 선지식 만난 인연공덕으로 생기를 얻을 거라고.
울퉁불퉁 바위 길, 험하고 위태로운 깔딱 고개 올라서니 법사님
“내년에는 더 높은 곳에 오르자고 할 것”이라며 덕담 한 마디 남기시고 도반들과 발길을 재촉하신다.
항상 긍정적인 말씀으로 희망을 품게 하고 기를 살려주시는 법사님.
눈꺼풀이 떨리고, 입술에 경련이 인다. 가슴은 얼마나 팔딱 팔딱 세게 뛰는지 숨을 쉴 수가 없다.
나는 멍한 채 S보살님이 펴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해발 658M. 가쁜 숨을 토해내며 허위허위 오른 높이였다.
30분쯤 지나자 더 높이 올라갔던 도반들이 내려와 김밥 점심을 펼친다.
김밥 몇 개를 천천히 먹고 나자 비로소 산이 내게로 밀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태양이 비구름을 헤치고 산붕우리 위에 비밀스러운 색조로 드러났다.
명암이 엇갈리면서 산은 신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장엄 수려한 풍광이 일시에 시야를 가득 메웠다.
'이창수의 영원한 찰라’히말라야 14좌 사진전에서 느낀 감동보다 더 깊고 정밀하다.
바로 내 영혼이 정화되는 기연(機緣)과 맞닥뜨리는 순간이었다.
남설악의 진경산수가 바로 눈앞이었다.
법사님께서 ‘만년설만 빼면 스위스의 융프라우보다, 중국의 장가계보다 못할 것이 없다’ 고 찬탄하신 말씀이 실감났다.
불현듯 장가계의 졸업여행이 즐겁게 떠올랐다. 원우들과 함께 아! 허! 히야! 라는 단음으로 기성을 맘껏 지르던 일.
날씨조차 바른법연구원 도반들에게 최대의 은전을 베풀고 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자연의 조화에, 선지식의 지혜에 가슴이 저린다.
남설악 등반은 2014년의 최고의 선물이요, 기적이었다. 부처님, 선지식이 나에게 주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