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으로 갈지 西로 갈지
갈피 안 잡히는 마음 그대로 집을 떠났다.
한여름처럼 습도 높고 찌는 날씨였다.
동행하는 도반은 약속시간 30분 전에 벌써부터 도착 문자를 보내온다.
차창 밖 경치는 푸르디푸른 초록 나라였다.
조팝꽃이 한물 갔나 싶은데, 연도의 회화나무 꽃과 숲속의 산찔레, 아카시아 꽃이 우리의 부푼 마음을 황홀하게 해준다.
아! 정말 좋다! 도반의 목소리가 은구슬금구슬처럼 반짝거린다.
휴게소에 들러 명동칼국수로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고 우리는 달리고 달려간다.
적어도 움직이는 동안은 東으로, 西로 라는 관념이 끼어들 새가 없는 것 같다. 드디어 반야사에 도착!
요사채에 짐을 풀고 대여섯 시간 동안 우리는 태평하고 한유하다.
사찰에서 이른 저녁공양을 마치고 우리는 백화산에 올라갔다. 자신감때문이었을까. 자신감이 아니라 오만이었을까.
오를 때는 예외없이 굵은 밧줄을 잡고 가파른 돌 계단을 제법 잘 올라갔다. 예전 같으면 숨이 가빠서 몇번이고 큰 나무나 바위 등걸에 몸을 의지했을 터이다. 놀라운 것은 해발 900 M 정도의 산인데도 전혀 숨가쁘거나 털썩 바위에 주저앉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내려올 때는 호기심이 발동,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때 하늘은 당장이라도 비를 뿌릴 듯이 먹구름으로 가득했다.
산엔 큰 바위, 작은 바위가 수없이 많았고.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울울창창 숲을 이루었다. 낙엽이 쌓인 곳은 완전 지뢰밭이었다.
바위 틈새에 한 쪽 발이 빠지면 쉽게 빼낼 수가 없다. 수렁처럼 깊고 질척거렸다. 발을 헛디뎌 그 수렁에 굴러떨어지면 운동화, 양발, 바지까지 젖었다. 젖는 게 문제 아니다. 뱀이 생각났다. 한 번 물리면 죽을 수도 있다는 그 독사뱀. 겹겹이 쌓인 낙엽속에 점잖게 똬리를 틀고 있을 독사뱀! 우리는 혼비백산했다. 뱀보다 더 황당한 것은 그 지점에서 길을 잃은 것이다.
땀은 왜 그처럼 흘러내리는지, 산에서 길을 잃었는데. 숙소로 돌아갈 희망이 아득해졌는데.
손수건을 꺼내 땀을 처리할 수도 없고, 안경은 부옇게 시야를 가린다.
숲은 사위를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점점 어둠이 짙어갔다. 공포가 엄습했다.
두 사람이 동서남북을 가늠하지 못하고 무작정 숲을 더듬어 올라갔다. 숲인 줄, 산속인 줄만 알았지 위치 파악이 안 된다.
누구에게도 행방을 알릴 수 없는 위험 지경에 이른것이다.
낙상, 실족, 사고 등의 악惡 삼재를 조심하라던 K 선생의 충고가 떠올랐다. 삼재팔난을 이렇게 맞이하나?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사무실 팀장의 전화를 받았다. 밤이 되어도 두 보살님이 나타나지 않아 걱정이라고 한다. 우리는 그가 일러준 대로 필사적으로 나무 가지를 휘어잡고 허워허위 본래 갔던 곳으로 다시 올라갔다. 가까스로 내려가는 길을 발견, 숙소로 귀환할 수 있었다. 본래 갔던 길, 그렇다. 초행에서는 호기심은 금물인가.
기해년 사유축巳酉丑 삼재팔난이었을까? 막무가내로 저녁나절 깊은 산을 오르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깊은 산중에서 긿을 잃고, 날은 저물고 어쩔 번 하였나? 꿈속에서도 아찔하다.
불심좋은 도반이 함께해서? 사찰 권속의 기도 덕분에? 어쩌면 모두의 원력이고 미쁜 마음, 부처님의 가피라는 생각이 든다.
지치기도 했지만 더 머물고 싶은 생각이 달아났다. 한바탕 소동을 끝내고 예정보다 빠르게 집으로 돌아왔다.
천방지축 산을 헤매고도 무사히 귀가한 게 신기하기만 하다.
삼재팔난을 들먹일 정도로 내 인생의 즐거운 실수였을까. 즐겁다니 말도 안된다. 그건 우매한 중생의 오판, 오산이었다.
다행인 것은 우리가 이번 여행을 실보다 득에 더 가깝다고 여기게 된 것일 게다. 생소한 곳에 가서 함부로 동하지 않는 지혜?를 터득한 것으로 위안을 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