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젖은 한 여인이 있다. 그녀의 꿈은 어제 오늘의 꿈이 아니고 수십 년을 가슴에 품어온 요긴하고 슬픈 꿈이다.
슬프다는 표현을 하는 것은 수십 년씩이나 이루어지지 않은 꿈이므로,
그리고 어쩌면 이루기는커녕 물거품이 될지도 모르는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꿈꾸는 자의 것이라고 했던가. 꿈은 무엇이라도 다 아름답다고 누가 말했는가.
더구나 꿈꾸는 여인이란 말은 어딘가 환상적이고 매혹적인 뉘앙스마저 풍기지만 꿈도 꿈 나름이다.
일생 동안 단 한 종류의 꿈도 지니지 않고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살아가기보다는 꿈꾸는 것이 의미가 있고 값진 것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랜 동안 그녀의 불쌍한 꿈을 옆에서 지켜본 증인으로서의 느낌은 애절하다 못해 황당, 무모하다.
세상에 덕망 있고 사회적 기반이 쟁쟁한 남자, 경제력과 인품이 구비되고 게다가 근사한 체격에 잘 생긴 용모까지 갖춘 자식도 안 딸린 홀아비가 그녀 앞에 나타날 확률은 대체 몇 퍼센트나 될까. 중대형의 고급차에 와이프를 태우고 주말이면 드라이브를 즐기고, 온천 여행도 떠나고, 산채 정식이든 스테이크든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데리고 가고, 우아하게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듣고 이따금 블루스를 함께 추는 애인 같은 남자가 60년대 소설 속에나 행여 등장할까말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탐색하기를 포기했거나 체념한지 오래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환상과 기대가 크면 클수록 실망과 허탈도 큰 것인데, 애초에 그런 신비하고 고전적이라 할 수 있는 기사의 출현을 바라지 않은 편이 얼마나 슬기로운 판단인가는 살아 보면 누구나 알게 된다.
결혼은 결코 꿈의 성취가 아니라는 것쯤 결혼하여 몇 달만 경과하면 쉽게 얻어지는 결론이거늘, 그녀는 오늘도 꾸준히 멋진 남성에의 꿈을 부풀리며 거울 앞에 앉아 단장하기를 쉬지 않는다. 50대가 되도록 결혼식을 올려보기는 고사하고 머리 끝이 타버릴 만큼의 화끈한 연애 한 번 경험해 보지 않은 왕노처녀라고는 하지만, 이 세상과 남성들에 대한 그녀의 시각은 이제라도 시정해야하는 게 아닐까 무척이나 안타깝다.
그렇다면 과연 그녀가 이상형으로 꼽고 있는 독신 남성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가. 남성은 나이 70이 되어서도 돈 있다는 조건 하나 확고하게 내세울 만하면 딸 같은, 심지어는 손녀 같은 여인을 넘본다는데 그녀의 나이도 녹녹지 않은 게 아닌가. 50대를 쉰세대라고 부르는 거 그녀는 모르는가.
요즈음이야 부인과의 호르몬 치료요법이라고 해서 나이든 여성도 젊음을 연장시키고 남편과의 성생활을 가능하게 한다고 하지만, 그건 자연을 거스리는 게 아닌가. 그녀의 머리칼이 희어지고 턱주름이며 손주름이 얼굴보다 먼저 노화를 앞당기고, 하이힐을 신으면 앞으로 꾸부정하게 기우는 몸에 긴 줄 핸드백이 자꾸만 벗겨지는 아슬아슬한 황혼녘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는 것인가. 책을 펼치면 활자가 아물거리고 읽어서 감동받기보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조성한 TV의 현란한 화면에 편한 대로 길들여지는 할미꽃과에 편입된 거 그녀는 모르는가.
“글쎄, 키가 작더라”, “그 나이에 가진 돈도 없어”, “궁합이 안 맞아”, “만나는 날 곧바로 호텔로 가자는 거야.”
여기저기 결혼 상담소에 등록을 해두었으므로 그래도 심심잖게 소위 맞선이란 걸 볼 기회는 있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뭐든 한 가지씩 하자가 발견되어 다음 번엔, 다음 번엔 하면서 그녀의 인생은 20대에서 50대로 훌쩍 흘러가 버린 것이다. 자기 기준과 잣대에 부합하는 상대자가 정말 몇이나 있을까. 누군 뭐 백 퍼센트 만족해서 결혼한 줄 아는가. 그녀의 한없는 기다림이 가상하기도 하다.
철없을 때 만나서 정신없이 아들딸 낳아 기르며 함께 살아온 부부들도 인생 별거 아니구나 하고
개탄까지는 아니지만, 종종 아연하고 허망할 때가 많은데, 지금 중도에 상처했거나 이혼한 남성 만나서
최고의 보금자리를 펼쳐보고 싶은 그녀는 여태도 철이 없는 것인가. 그야말로 꿈의 노예인 것인가.
나는 가능하면 그녀의 협조자가 되고 싶었다.
그녀의 변함없이 순진무구하고 청정한 꿈이 남을 해롭게 하지 않은 것이면 이루어지기를 빌어준 때가 있었다.
어떤 때는 남성에게서 인간을 구하지 말고 우선 남자만 취하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본능으로 돌아갈 때 생물들은 가장 겸허하고 솔직할 것이므로.
그러나 나의 조언이란 것 역시 황당무계와 무관하지 않았다.
남성에게서 단지 남자만 흠뻑 취하라는 말뜻을 나 역시 잘 알고 있지 못하였고, 그녀에게는 더욱 생소했을 것이다.
이즈음 그녀를 만나면 막막한 장벽을 느낀다.
무표정에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모처럼의 만남이 쓴맛으로 끝나곤 한다.
지금까지 찾지 못한 그녀의 ‘신사’가 번개처럼 어느 한순간에 번쩍 하고 출현할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의 꿈꾸는 눈동자를 보면 서러움이 고인다.
그냥 사는 것이다. 남자도 인연 따라 만나는 것이다. 지나친 승화작용은 금물이다.
인간 대단한 거 아니고, 사는 일 또한 내게만 국한된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큰 사과 한 개와 큰 배 한 개씩을 깎아 먹고 그녀와 나는 작별했다.
잠에서 꿈에서 깨어나라. 나는 그 한 마디조차 하지 못하고 꿈을 향해 가는 그녀의 등 뒤에서 쓸쓸히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