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제부터 말하려는 그 아저씨, 506동 아저씨는 특별했다.
햇볕이 피부에 닿으면 어지간히 따가운 초여름 날씨였다.
나는 야채 과일 등을 사러 단지 안에 있는 상가를 지나서 큰 길로 나갔다.
시장바구니에 물건을 한가득 싣고 돌아올 때는 지름길인 506동 앞으로 질러오곤 한다.
그 길은 아침나절 그늘이 져 덥지 않고, 506동 앞 화단에서 한 아저씨를 만나게 되는 즐거움이 따르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모자를 푹 눌러 쓴 아저씨. 키가 그다지 크지 않은,
게다가 남자로서 가히 등치발이랄 것도 없는, 그렇다고 왜소하지도 않은 체형은 짐작으로 대강 알 수 있었다.
그는 손에 작은 연장, 호미나 삽을 들고 화단을 손보고 있었다.
채양이 달린 회색 모자를 쓴 그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안정되고 차분한 분위기가 느껴지곤 했다.
아마도 그 아저씨가 사는 곳이 506동 일거라는 내 추측은 정확할 듯싶었다.
506동 화단에서 그 아저씨는 화단 가장자리에 둥글게 자른 나무토막으로 길과 화단의 경계를 지어놓는 작업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 화단에서 해당화, 모란, 장미, 산찔레, 붉은 동자꽃, 노란 낮 달맞이꽃,
꿀풀, 수국,인동초, 부겐빌리아, 붓꽃, 족두리꽃, 수선화, 할련화, 맨드라미,
개양귀비, 금낭화, 맥문동, 산나리 등의 각종 화초와 야생화를 만날 수 있었다.
대단위 아파트 단지에 비하면 작은 면적인데도 내가 감히 이름도 모르는 꽃들이 그 꽃밭에는 더 있었다.
나는 한참이나 꽃밭을 바라보았다.
활짝 꽃핀 것도 있고, 봉오리 맺힌 것, 아직 꽃필 날을 기다리는 것들을 일별한 후,
그 아저씨의 뒤통수에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며 총총히 발길을 돌렸다.
“저 많은 꽃들! 누가 심은 것인가요?”
나는 506동 경비에게 물어보아 사실을 확인했다.
그 꽃밭은 이를테면 506동 아저씨의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틈날 때마다 꽃을 가꾸는 아저씨의 꽃밭,
그것은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506동, 아니 아파트 입주민 전체의 화단이었다.
그러나 화단을 돌보는 일은 오직 그 아저씨 한 사람뿐이었고,
그 꽃들이 진기하고 아름다워서 구경하는 사람은 늘 있게 마련이었다.
내일은 잊지 말고 물어보리라고 나는 다짐한다.
아저씨는 왜 꽃밭을 그처럼 정성껏 가꾸는 것이냐고. 꽃들과 특별한 사연이 있느냐고? (-문학의 집 서울에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