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9.3 내가 걷는 문학의 길
-영혼이 맑아지는 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같은 명작을 생산하지도, 각종 지면에 문학 활동으로 내 이름을 크게 떨치지도 못했다.
동서사방으로 방황의 세월이 길었고 늦게 발화한 문학의 지평은 주변 여건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활기차게 뻗어나가지 못하고 자주 좌초했다.
그러나 나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기왕 하는 문학인 바에야 사회에 기여하는 자세로 작품을 창작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예를 부러워하거나 따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 나’ 이면 족한 것이다. 가장 나답게 꽃피우고 열매 맺자는 각오와 사명감에서 비롯한, 내 문학의 기저를 이루는 가치는 치유治癒, 위무慰撫, 정화淨化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불교의 중도사상, 그리고 자비(인간애)와 보시(베품)의 감성으로 창작에 임해야 한다는 원칙을 작품 속에 구현,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흔히 사람들은 막장드라마의 비상식적인 불륜과 폭력 악행에 빠진다. 그것이 전대미문의 흉악한 스토리일 경우 더욱 열광하는 악마근성도 엿보인다. 이는 《그리스 인 조르바》에서 “인간은 짐승이예요! 그리고 짐승은 책을 안 읽어요!” 라고 토로하는 조르바의 말이 타당성을 갖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성적이고 지적인, 작품속의 화자인 ‘나’와 철저히 대비되는 갈탄 탄광의 노무자 ‘조르바’ 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 그대로 살아가는 하위 계층의 인간 유형이다. 수많은 등장인물 가운데 어떤 인간형이 옳다 그르다 언급할 사항은 아니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을 돌아볼 때, 인간은 짐승이라고, 짐승(인간)은 책을 읽지 않는다고 표현하는 조르바의 생각이 전적으로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일제 강점기 36년, 해방 5년 여 만에 터진 6.25 한국 전쟁, 그리고 4.19와 5.16 등 국가적인 큰 사건을 겪으면서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심성은 황막한 광야의 맹수가 되었다. 이웃은커녕 가족도 없다. 날로 극악무도해지는 범죄의 증가세는 문학작품과 드라마, 매스컴의 영향도 결코 작다고는 할 수 없을 것으로 사료된다.
각종 문명의 이기가 발달함에 따라 점점 이기적 개인주의 성향으로 치달으면서 가족, 친족개념이 파괴되어 근친상간이 벌어지고, 교권이 무너진 학원에서 교사가 학생을 성폭행, 불과 며칠 전에는 초등학교 학생이 교실에서 선생님을 폭행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게다가 어린이집 아기들이 보육교사의 학대로 숨지거나 불치의 상처를 입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목격한다. 우리 사회 도처에서 미투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고, 몇 푼의 돈을 위해서 부모도 형제도 친구도 아랑곳없이 흉기를 마구 휘두르는 상황이다. 이유와 동기가 어찌 되었든 이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구 생태계의 변화, 이상 기후, 전쟁과 핵의 위험, 인간성 실종, 날로 심화되는 빈부격차와 가진 자들의 갑질로 우리 사회의 갈등과 모순, 불합리는 이미 그 도를 넘어선 상태다. 적어도 의식이 있는 작가라면 심각한 생명 경시 풍조에 경종을 울리고, 돈이 최고라는 물신주의의 천박한 관념을 문학이라는 코드로 해결해야할 과제로 인식, 사회 정화와 인간 심성의 순화를 위해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여겨진다.
고 최인훈 선생님은 “소설의 형식은 꼭 이러해야한다는 전형이 있을 수 없는 것” 이라고 피력한 바 있다. 나는 이 말씀에 동의한다. 혼란한 시대에 작가의 자리에 섰다는 자체가 역사적 현실 기피나 외면이 아닌 것으로 파악한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다면 글에도 문격이 있다고 본다.
소설이든, 시나 수필이든, 영혼이 병든 이들에게는 치유의 언어로, 사랑이 갈급한 사람들에겐 따뜻한 위로의 말로, 용기와 희망을 북돋우는 작품을 써야만 하는 것이다. 한편의 문학작품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평화가 깃들게 되면 강력 범죄는 차츰 줄어들고 사회는 안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서정적이고 정제된 언어로 인간 심성을 순화시키는 작품을 창조하는데 집중하고자 한다. 이는 사람다운 삶을 향한 절실한 소망이며 문학에 임하는 나의 숙연한 다짐이 아닐 수 없다. 나의 문학은 치유, 위무, 정화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힘차게 매진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세상 풍경이 화평하다면 또 다른 문학적 입장을 밝힐 수 있을지? 그것은 미지수다.
위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독자가 보내온 독후감을 올린다.
1. ‘오년 후’ 를 읽고 - C님 : 금세 다 읽었어! 너무 잘 썼어요. 상 탈 정도가 아니라 읽는 사람이 영혼이 맑아져요. 너무 이쁘게 썼어. [마흔넷의 반란] [영혼 사진관] 하고 차원이 달라요.
작가의 혼魂이 녹아 있어, 표지도 밝아. 안의 내용과 맞아떨어졌다고요.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아요. 아주 정말 누구누구보다 더 잘 썼어. 인기 연연하지 말고 당당해! 하나도 거부감 없이 잘 다듬어서 썼어요. 불교 이 쪽도, 기독교 저 쪽도 아니게 잘 그렸어. 뎅그렁! 뎅그렁! 풍경 소리 여운 남겼어. 빈 말이 아니고 정말 잘 썼어요. 깊은 산속에서 맑은 샘물 마시듯 사람의 영혼을 정화시켜주더라고요.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읽게끔 하더라고. 어떻게 이렇게 잘 쓸 수가 있을까. 불교 기독교 배려하면서,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고 담담하게 세상을 달관한 듯 썼어.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우회적으로 표현, 글이 향기로워.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고 담담히 쓴 글, 글을 거르고 걸러서 맑은 물이 흘러나오듯 썼어요. 변영희 작가님! 파이팅!
2. J님 : 변 선생님 책 다 읽었어요. 얼마나 재미있게 쓰셨는지 넘 잘 쓰셔서, 넘 재미있어서 궁둥이를 떼지를 못하고 자면서도 읽는 거요. 어디서든 상 받아야해! 술술 잘 읽히고 진짜 잘 썼습니다. 사람 생긴 대로 글도 얌전하게 잘 썼다고들 하네요.
3. B님 : 변영희 글 확! 땡겨. 너무 센치해. 문장 표현이 고품격. 고결, 고상해요.
4. S님 : 젊게 쓴 소설. 글에서 상긋한 풀 향기가 풀풀 나요.
5. Y님 : 재미있고 불교적이에요. 재산 사회에 환원은 너무 감동적.
6. 'K님 : 그거 너무 재미있고 순수하고 자연스럽고 술술 잘 읽혀. 참 잘 썼어.
7. L님 : 변 선생님 '오년 후‘ 문장 예쁘고 함축, 스토리 연결이 좋아요. B작가 보 다 더. 너무 귀골로 생기고 성격도 고급스럽고~.
출처 ; 2018. 한국수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