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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비 소리

능엄주 2014. 5. 12. 02:06

0시 30분이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나는 왜 한 밤중에 홀연히 잠에서 깨어났는지를.

어제 온종일 나는 힘든 작업을 진행했고 몹시 피곤하여 밤 11시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다.

물론 TV 도 그대로, 전등도 그대로 켜둔 채였다.

 

밤비 오는 소리에 놀라 깨었을까.

혹 사나운 꿈을 꾸다가 깬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밤비 오는 소리라면 잠이 깨기는커녕 오히려 빗 소리를 자장가삼아 더 달콤하고 깊은 잠에 떨어져야 옳았다.

 

나는 겨우 1시간 정도 잠을 잔 후 그냥 말갛게 깨어난 것이다.

이렇게 황당할 수가 없다. 도대체 왜 잠이 달아나 버린 것일까.

곰곰 생각해보니 근심거리 같았다.

 

여행을 가느냐 마느냐.? 아니다. 나는  이미 안 가는 것으로 마음을 정리하고 통보했다.

이제 환불이 남았을 뿐 아닌가.

그런데 여행을 가지 못하게 된것이 서운해서였나. 억울해서였나.

돌아보면 지금 내가 여행이나 떠날 때가 아니다.

 

그러나  개운치는 않은 마음이다.

창밖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봄 가믐이 해소되려는가.

엊그제 남산 한옥마을에 가보니 거기 개울에 창포꽃은 곱게 어우러졌는데 물이 없었다.

바위에 물이끼가 때처럼 붙어 있는 것이 물줄기가 콸콸 흘러가면 그런 모양새는 아닐 것이란 생각을 했다.

 

밤비가 흡족하게 내린다.

세상의 온갖 설움과 원한들, 그리고 간절한 소망과 염원들을 잠재우려는 듯, 조곤조곤 착실하게 내린다.

밤비 소리 들으며 다시 잠을 청해보는 것인가.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난 나는 하릴없이 창밖을 내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