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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임

능엄주 2014. 5. 6. 09:37

오래 만나지 못했던 후배 네 집을 방문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한낮인데도 2호선 지하철 안은 많은 승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동행한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며 합정역 근처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정거장도 아니고 어중간한 지점이었다.

아마도 무슨 사고, 고장이 났으니 모두 하차해달라는 말 같았다

.

그런데 그 말을 우리가 우리식대로 잘 해석해서 들은 것뿐

실제로는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알아듣기 어려웠다.

 분명 한국어로, 큰 소리로 반복하고 있었음에도 확실한 이유,

왜 승객들이 중도하차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모호한 데가 여실히 드러났다.

 

" 언니! 듣긴 뭘 들어요. 뭔가 수상쩍으니 우리는 여기서 내립시다!"

후배가 앞장 서 입구쪽으로 갔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서 그녀가 간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수많은 승객들이 출입구에 몰려있고, 동작 빠르게 출입구를 빠져나간 사람들은 출구로 가는 계단을 밟고 있었다.

 

"빨리 나가자! 여기를 나가는 게 수야!"

후배가 저만치 걸어가면서 나에게 소리쳤다.

밖으로 나오니 햇살이 눈부셨다. 바람이 다소 센 느낌이 들었으나 날씨는 계절의 여왕 답게 화사 찬란하였다.

 

"언니는 근데 왜 그렇게 망설였어? 방송 나올 때 얼른 나가야지."

"난 세월호 사건이 떠올라서 살이 불불 덜리던데."

일어나 나가야할지 그냥 앉아있어야할지 망설임 끝에

뒤쳐져 나오는 나를 바라보며 그녀는 한탄처럼 중언부언 했다.

 

그렇다면! 위험상황이었나?

핀잔?을 들은 덕에 나는 다소 기분이 소침해졌다.

"언니! 차 한 잔 하고 갈까?"

핀잔을 퍼부은 게 걸리는 지 후배가 물었다.

우리는 헤어져 각자 버스로 갈아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앗! 나는 깜짝 놀랐다. 전동차 사고소식이었다. 바로 2호선 열차의 추돌 소식.

200여 명의 부상자 중에 중상자가 2명!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 TV 뉴스를 경청했다.

잔인한 4월에 이어 5월의 전동차 추돌 사고 소식도 우울증을 가중시킨다.

 

대저 망설임이란 하등 고려할 가치조차 없는 것.

현재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로 보아서 망설임, 그것은 죽음의 공포 같은 두려운 단어가 아니겠는가.

 

망설임. 그 망설임이 내 인생 자체를 지각하게, 혹은 위험에 빠트리지는 않았던가.

나는  신중도 좋지만 매사에 망설임을 대폭 줄이는 방향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언제나 다정하고 살가웠던 후배의 핀잔이 고맙고 미더운 것으로 인식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