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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연의사람in] 친일과 문학[정길연의사람in] 친일과 문학/세계일보

능엄주 2018. 8. 4. 21:39

[정길연의사람in] 친일과 문학

예술가는 작품으로 말하고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예술성과 인간성은 별개라는 의미이겠다. 그러나 문학은 사유의 기호인 언어를 매개로 하는 장르다. 작가의 내면이나 가치관이 은연중 드러나게 마련이다. 한 개인과 작품의 됨됨이를 명확하게 분리해내기란 애당초 불가능하다.

가령 레프 톨스토이의 작가로서의 존재감은 견고하다. 기존 기독교에 실망을 느껴 새로운 기독교적 무정부주의를 제창한 사상가, 농민 자녀를 위한 학교를 세운 교육가로도 기억된다. 특히 그의 비폭력 사상은 간디의 반식민 투쟁에도 영향을 끼쳤다. 젊은 시절의 방탕한 생활에서 중년 이후 청빈과 금욕 예찬으로 개종(?)한 톨스토이의 실제 삶은, 그럼에도 언제나 상대적으로 영화로웠다. 톨스토이 생애의 화룡점정은 숲속의 영지 야스나야 폴랴나에 남아 있는 그의 무덤일 듯싶다. 지나치게 소박해서 자칫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는 그의 무덤 앞에 서면, 위대한 작품을 남긴 톨스토이보다 성(聖)과 속(俗)의 모순된 인간 레프가 더 잘 이해된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진’ 톨스토이와는 판이하게 다른 삶을 살았다. 대부분 인간적 결점이나 약점이 불러온 불운이었겠으나 아무튼 그의 삶은 내내 고단했다. 그는 끊임없이 빚을 갚아야 했고 쫓기듯 글을 써야 했다. 괴팍한 성격에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자주 보여 인간관계도 원만하지 못했다. 이상주의자 톨스토이가 추종자들에 둘러싸인 채 세속적인 아내 소피아와 불화했다면, 외부세계와 조화롭지 못한 도스토옙스키에게는 아내 안나의 빛나는 조력이 있었다. 도스토옙스키는 오로지 작품으로 기억되는 불멸의 작가인 셈이다.

우리 현대문학사에는 작품성과 별개로 인간 아무개의 과오가 명백해서 논란의 대상이 되는 문인이 있다. 분단 이데올로기가 작품의 시대적 가치와 인간의 품격을 동시에 덮어버린 경우도 적지 않다. 조국의 현실을 시로서밖에 항변하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한 윤동주나 강렬한 저항 의지로 시작활동과 독립투쟁을 병행한 이육사처럼, 작품으로도 영혼의 고결함으로도 잊히지 않는 시인도 있다. 그들이 끝내 보지 못한 광복의 그날이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온다.

작품으로 작가를 평가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작품성이 작가의 불의한 처신마저 용납해야 하느냐는 물음에는 늘 말문이 막힌다. 좋은 작품인가, 못 미치는 작품인가. 아름다운 인간인가, 바람직하지 못한 인간인가. 모든 작가는 그 범주 안에서 잊히거나 기억될 것이다.

정길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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