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경의 내맘대로 본다] 정치하는 엄마가 이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엄마’다. <정치하는 엄마가 이긴다>를 읽고.
“엄마, 엄마는 ‘어떻게’ 나를 키웠어?”
<엄마의 전쟁> 등 신세대 엄마의 고충담이 화제가 되던 무렵, 서른이 넘은 딸이 내게 물었다. 선뜻 답이 나오질 않았다.
남편의 부도, 치매 친정엄마와 중풍으로 쓰러진 시어머니의 간병 등에 본업 외에도 책을 쓰거나 방송 출연 등으로 정신없던 시절에 출근할 때 짝짝이로 신발을 신고 나간 일도 있었다. 너무 피곤해 좀비 같은 모습으로 집에 돌아와 좀 쉬려고하면 아이가 ‘숙제를 같이 해야하고 내일 아침에 가져갈 준비물은 이것저것...’이란 말에 사랑하는 딸에게도 안 보이는 투명인간이 되어 사라지고 싶은 순간도 있었는데 말이다.
“하도 힘들고 이 사회의 부조리와 억울함을 많이 참아서 이제 기침만 해도 사리가 나올 지경이란다. 그 무렵에는 종이기저귀를 쓰는 것조차 사치스러운 일이었고 학교 급식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매일 아침 네 도시락을 싸느라 일찍 일어나….”
이런 말을 늘어놓고 싶었지만 난 대단히 모범적이거나 헌신적인 엄마는 아니었다. 신문기자 시절에는 가족법 개정, 남녀고용평등법을 비롯해 여성의 인권을 위한 법과 제도를 널리 알리는 기사를 부지런히 썼지만 정작 나의 인권, 모성 등은 신경을 쓰지 못했다. 20세기에 태어나 21세기에 살고 있지만 19세기 가치관과 정서를 갖고 있는 나를 비롯한 세대들의 딜레마였다.
그런데 여성의 사회참여가 눈부시고 학교에서 전교 1등과 입사시험 수석을 거의 차지하는 21세기에 정작 그 유능한 여성들은 엄마가 되는 순간, 가정이란 전쟁터의 전사가 되고 사회에선 ‘맘충’이라 불리며 벌레 취급을 받고 있다. 인공지능시대에 살면서도 정작 엄마들에게는 수천년 전의 모성 ‘신화’를 강요한다. 숭고한 모성이란 왕관을 씌워놓고 수퍼울트라 맘을 강요하는 이 시대에 누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을까. 알파걸이 곧바로 맘충으로 전락하는데 말이다.
최근에 ‘정치하는 엄마들’이란 모임에서 펴낸 <정치하는 엄마가 이긴다>란 책을 읽고 나는 고구마와 사이다를 동시에 경험했다. 여전히 열악하고 답답하기 짝이 없는 우리 현실에 울컥했고 지혜롭고 현명한 신세대 엄마들의 등장과 그들의 행동에 시원함을 느꼈다.
1년 전인 2017년 6월에 발족한 ‘정치하는 엄마들’이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절대 ‘엄마를 자유롭게 편하게 만들어달라’나 여성권익만이 아니라 온 가족과 사회, 아니 대한민국의 행복과 발전이다. 남녀에 상관없이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 사람은 모두가 ‘엄마’이며 이 엄마가 제대로 아이를 키우고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엄마’라는 단어 속에는 아이를 출산한 생물학적 여성만이 아니라 돌봄과 양육의 주체가 돼야 하는 사회 전체가 포함돼야 한다는 의미다. 최근 뉴질랜드 남자 총리도 육아휴직을 선언하지 않았나.
이 엄마들은 왜 정치를 내세웠을까. 공동대표인 이고은씨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와 장치인의 이미지에서 교집합을 찾기 어려워 보이지만 확실한 공통점이 있다. 정치의 사전적 의미는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국민’ 대신 ‘가족 구성원’을 넣으면 엄마들의 역할이 된다.”
이들은 유모차를 끌고 아이를 안은 채 지난 1년간 부지런히 마이크를 잡았다. 국회, 정부청사, 광화문 등 곳곳에 등장해 정책을 제시하면서 남성들이 만든 법과 제도에 균열을 일으켰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맘·키즈’라는 코너 이름을 변경할 것을 요구하는 메일을 보낸 결과 부모·아이’로 바뀌었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단체들의 의견을 청취할 때도 출산율 숫자에 집착하는 접근방식부터 변화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비판하고, 국가가 더 오래 아이를 맡아주는 게 아니라, 부모가 아이와 함께하게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육아만이 아니라 복지·비폭력·환경 등 생활 전반의 모든 문제들애 의견을 수렴해 성명서도 발표하고 현장도 찾았다.
물론 이들의 활동이 주목 받을수록 ‘맘충’이란 비난과 혐오도 동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사무실도 없이 랜선으로 연결해 서로 고민을 나누고 대안을 논의하고 실행에 옮긴다. 엄마와 아버지가 아이들의 탄생과 성장에 함께 하는 것,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고 편견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정치하는 엄마들’의 바람이다.
부모들은 물론 저출산 대책에 100조를 퍼붓고도 전혀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정부 각 부처 담당자들에 이 책을 강권하고 싶다. 엄마없이 이 세상은 존재하지 못하는데 왜 엄마 되기를 두려워하는지, 혹은 진짜 엄마들이 불행한지, 그리고 상식적인 해법은 무엇인지 알려면 이 책을 보길 바란다. 내 딸이 엄마가 되기 전에 이 책이 나와 정말 다행이다.
<작가·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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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전쟁> 등 신세대 엄마의 고충담이 화제가 되던 무렵, 서른이 넘은 딸이 내게 물었다. 선뜻 답이 나오질 않았다.
남편의 부도, 치매 친정엄마와 중풍으로 쓰러진 시어머니의 간병 등에 본업 외에도 책을 쓰거나 방송 출연 등으로 정신없던 시절에 출근할 때 짝짝이로 신발을 신고 나간 일도 있었다. 너무 피곤해 좀비 같은 모습으로 집에 돌아와 좀 쉬려고하면 아이가 ‘숙제를 같이 해야하고 내일 아침에 가져갈 준비물은 이것저것...’이란 말에 사랑하는 딸에게도 안 보이는 투명인간이 되어 사라지고 싶은 순간도 있었는데 말이다.
“하도 힘들고 이 사회의 부조리와 억울함을 많이 참아서 이제 기침만 해도 사리가 나올 지경이란다. 그 무렵에는 종이기저귀를 쓰는 것조차 사치스러운 일이었고 학교 급식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매일 아침 네 도시락을 싸느라 일찍 일어나….”
이런 말을 늘어놓고 싶었지만 난 대단히 모범적이거나 헌신적인 엄마는 아니었다. 신문기자 시절에는 가족법 개정, 남녀고용평등법을 비롯해 여성의 인권을 위한 법과 제도를 널리 알리는 기사를 부지런히 썼지만 정작 나의 인권, 모성 등은 신경을 쓰지 못했다. 20세기에 태어나 21세기에 살고 있지만 19세기 가치관과 정서를 갖고 있는 나를 비롯한 세대들의 딜레마였다.
그런데 여성의 사회참여가 눈부시고 학교에서 전교 1등과 입사시험 수석을 거의 차지하는 21세기에 정작 그 유능한 여성들은 엄마가 되는 순간, 가정이란 전쟁터의 전사가 되고 사회에선 ‘맘충’이라 불리며 벌레 취급을 받고 있다. 인공지능시대에 살면서도 정작 엄마들에게는 수천년 전의 모성 ‘신화’를 강요한다. 숭고한 모성이란 왕관을 씌워놓고 수퍼울트라 맘을 강요하는 이 시대에 누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을까. 알파걸이 곧바로 맘충으로 전락하는데 말이다.
최근에 ‘정치하는 엄마들’이란 모임에서 펴낸 <정치하는 엄마가 이긴다>란 책을 읽고 나는 고구마와 사이다를 동시에 경험했다. 여전히 열악하고 답답하기 짝이 없는 우리 현실에 울컥했고 지혜롭고 현명한 신세대 엄마들의 등장과 그들의 행동에 시원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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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인 2017년 6월에 발족한 ‘정치하는 엄마들’이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절대 ‘엄마를 자유롭게 편하게 만들어달라’나 여성권익만이 아니라 온 가족과 사회, 아니 대한민국의 행복과 발전이다. 남녀에 상관없이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 사람은 모두가 ‘엄마’이며 이 엄마가 제대로 아이를 키우고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엄마’라는 단어 속에는 아이를 출산한 생물학적 여성만이 아니라 돌봄과 양육의 주체가 돼야 하는 사회 전체가 포함돼야 한다는 의미다. 최근 뉴질랜드 남자 총리도 육아휴직을 선언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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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엄마들은 왜 정치를 내세웠을까. 공동대표인 이고은씨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와 장치인의 이미지에서 교집합을 찾기 어려워 보이지만 확실한 공통점이 있다. 정치의 사전적 의미는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국민’ 대신 ‘가족 구성원’을 넣으면 엄마들의 역할이 된다.”
이들은 유모차를 끌고 아이를 안은 채 지난 1년간 부지런히 마이크를 잡았다. 국회, 정부청사, 광화문 등 곳곳에 등장해 정책을 제시하면서 남성들이 만든 법과 제도에 균열을 일으켰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맘·키즈’라는 코너 이름을 변경할 것을 요구하는 메일을 보낸 결과 부모·아이’로 바뀌었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단체들의 의견을 청취할 때도 출산율 숫자에 집착하는 접근방식부터 변화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비판하고, 국가가 더 오래 아이를 맡아주는 게 아니라, 부모가 아이와 함께하게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육아만이 아니라 복지·비폭력·환경 등 생활 전반의 모든 문제들애 의견을 수렴해 성명서도 발표하고 현장도 찾았다.
물론 이들의 활동이 주목 받을수록 ‘맘충’이란 비난과 혐오도 동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사무실도 없이 랜선으로 연결해 서로 고민을 나누고 대안을 논의하고 실행에 옮긴다. 엄마와 아버지가 아이들의 탄생과 성장에 함께 하는 것,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고 편견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정치하는 엄마들’의 바람이다.
부모들은 물론 저출산 대책에 100조를 퍼붓고도 전혀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정부 각 부처 담당자들에 이 책을 강권하고 싶다. 엄마없이 이 세상은 존재하지 못하는데 왜 엄마 되기를 두려워하는지, 혹은 진짜 엄마들이 불행한지, 그리고 상식적인 해법은 무엇인지 알려면 이 책을 보길 바란다. 내 딸이 엄마가 되기 전에 이 책이 나와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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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뉴스 Z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