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식의小窓多明] 천화동인의 시대/세계일보 원문 입력 2017.05.01 22:34
세상 모두를 고루 이롭게 하고
뜻을 함께 해야 바른 정치 가능
혼돈의 한국사회에 필요한 건
파당·사익 청산하는 대동단결
주역의 괘가 어쩌니 저쩌니 하면 많은 사람들은 골치 아파한다. 사실 이를 정확히 꿰고 있는 분들은 우리 사회에도 많지 않으리라.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 올해 사이에 사람들이 주목하는 괘가 하나 있으니 그것은 천화동인(天火同人)이라는 괘다. 64괘 중에 열세 번째인 천화동인 괘는 하늘(天)에 해당하는 건괘(乾 )가 위에 있고 불(火)에 해당하는 리괘(離 )가 아래에 있다. 아래에 있는 불은 훨훨 타올라 위로 올라가서 위에 있는 건괘와 같이 어울린다. 이렇게 불이 타올라 하늘에서 빛나 사람들과 하나가 되는 모습을 천화동인이라 했다. 이 괘에 대한 주역의 설명(괘사)은 ‘사람들과 함께하되 광야에서 하면 형통하리니, 큰 강(大川)을 건넘이 이로우며 군자의 곧음(貞)으로 함이 이롭다’는 것이다.
왜 이 괘가 주목을 받는가를 알려면 이 앞의 열두 번째 비(否)괘를 보아야 한다. 이 괘는 위에는 하늘을 뜻하는 건괘, 아래에는 땅을 뜻하는 곤괘(坤 )가 있다. 하늘 아래에 땅이 있으니 그저 당연히 평안한 세상 같지만 하늘의 기운은 가벼워서 위로 올라가고 있고, 땅의 기운은 무거워서 아래로 내려가니 두 기운이 서로 만나거나 소통되지 못해 엉망인 것을 상징한다. 말하자면 “천지가 교합하지 못하여 만물이 소통되지 못하며 상하가 교합하지 못하여 천하가 무정부 상태가 된다”는 뜻이 된다. 또 “소인이 안에 있고 군자가 밖에 있으니, 소인의 도가 성장하고 군자의 도가 소멸된다”는 뜻이어서 마치 지난해까지 우리나라의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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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 언론인·역사저술가 |
사람이 같이하는 것(同人)은 힘을 합해 막힌 것을 통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너와 내가 서로 기대어(人)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공동체를 이루고 관계를 만들어 서로의 관심사를 나누고 의견을 나누고 교류한다. 이렇게 동인(同人)하는 것은 인간존재가 가지고 있는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괘가 곧 지난 1년여 동안 우리나라의 사정을 설명해 준 것 같다. 지난 연말부터 사람들은 광장, 곧 들판에 모여 한마음을 보여줬고 그들의 마음엔 사심이 없었다고 보여진다. 그러한 마음을 합해 드디어 큰 강을 건넜다. 이렇게 해석할 상황이 펼쳐진 것이라면 우리나라의 형세는 가히 천화동인이란 괘가 설명하는 바로 그 상황으로 들어선 것임이 분명해진다. 국민의 거대한 마음이 움직이자 지난 시대의 과오를 청산하기 위한 사법적인 조치도 착실히 진행되고 있고, 새로운 세상을 위한 선거도 큰 탈 없이 치러지고 있고, 이어서 새로운 지도자와 지도부가 등장할 것이다.
공자는 천화동인 괘를 설명하는 단사(彖辭)에서 “문명하고 굳건하며 중정(中正)으로 응함이 군자의 정도(正道)이니, 오직 군자이어야 천하의 마음을 통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말은 앞으로는 치우치거나 어느 한 쪽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고 세상 모두를 고루 이롭게 하는 큰 길을 같이 걸아야 천하의 마음이 통할 수 있으며 정치가 제대로 펴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가 천화동인의 괘에 들어섰다면 우리나라는 밝은 길을 똑바로 가는 군자, 사사로움을 버린 군자만이 모든 것을 투명하게 밝힐 수 있고 우리 모두가 함께 나아갈 방향을 지시할 수 있다. 모든 것이 훤하게 밝혀진 뒤라야 같은 방향을 보고 길(道)을 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천화동인 괘는 어울림의 지혜를 알려준다. 첫째는 모든 것을 오픈해서 투명하게 하라는 것, 둘째는 끼리끼리 패거리를 만들지 말라는 것, 셋째는 욕심을 내어 분란을 일으키지 말라는 것, 넷째는 자기 위치, 자기 자리에서 원칙을 찾으라는 것, 다섯째는 공감의 능력을 배양하라는 것이라고 어느 분은 말한다.
그동안 끼리끼리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 패거리를 조성하고 작은 이익에 눈을 팔고 사람 사이의 소통을 멀리하던 데서 환골탈태해 바람이 통하는 넓은 들판, 아니 광장에 나가서 대동의 큰 마음으로 함께 앞길을 열어가야 한다는 것을 주역의 천화동인 괘는 우리 사회에 간절하게 말해주고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