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 나는 요즘 새로운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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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언젠가부터 '꿈'이 사라진 나의 일상이다. 당장 해결해야 할 일들이 눈앞에 산적해 있다 보니 오늘을 무사히 넘기면 그저 감사한 게 현실이 돼버렸다. 만약 한 달 뒤, 아니면 1년 뒤에 도모할 아주 즐거운 일이 기다리고 있다면 엄청 신바람이 날 텐데, 나도 그렇고 주변을 둘러봐도 그렇고 그런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과거를 돌이켜보면 가슴 벅찼던 순간이 적지 않았다. 아빠를 졸라 어렵게 얻은 중고 스케이트를 머리맡에 두고 잠들었던 일곱 살의 어느 겨울날이 그랬고, 쏟아질 듯한 별빛의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느꼈던 초등학교 시절 어느 야영장의 여름날도 그랬다. 밤늦게 자율학습을 마치고 나오면서 친구와 들국화 노래를 소리쳐 부르던 고3 어느 봄날의 기억도 사진처럼 선명하다. 지리산 종주를 마치고 대원사 계곡으로 내려가다 마지막으로 묵은 치밭목산장에서 가을 보름달을 맞이하며 느꼈던 대학 시절의 감동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답다.
해묵은 사진첩 속에서나 겨우 발견할 수 있는 당시와 지금 나의 삶을 가르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꿈'이다. 그때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마음으로 느끼고 머리로 상상하는 모든 것이 꿈으로 연결됐다. 스케이트를 잘 타는 모습을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꿈, 별빛이 더 반짝이는 곳으로 야영을 가고 싶은 꿈, 조금만 견디면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수험생의 꿈, 땀범벅으로 산을 내려갈 때쯤에는 내가 한 뼘은 더 어른이 돼 있을 것 같은 대학생의 꿈.
일상의 꿈을 꽤나 오랜 기간 잊고 살던 나에게 요즘 새로운 꿈이 생겼다. 생각할수록 정말 신나는 꿈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전혀 꿀 수 없었던, 우리와 북한이 정말 형제의 나라처럼 사이 좋게 지내는 꿈이다.
그래서 내가 북한을 제집 드나들 듯 왕래하고, 자동차나 기차로 북한을 가로질러 중국과 러시아 대륙으로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런 꿈이다. 거기까지 가려면 정치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 너무도 많아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만 설령 실현되지 않는다 해도 꿈은 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분되는 일이다.
묘향산에 있다는 북한 사찰도 가보고 싶고, 교과서에서만 봤던 개마고원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직접 보고 싶다. 그 옛날 봇짐을 메고 걸어다닐 때 지름길이었다는 강원도 양구 길을 따라 금강산에도 가보고 싶다. 서울에서 출발하는 야간 침대열차를 타고 평양, 신의주, 단둥, 선양을 거쳐 베이징으로 가거나 선양에서 길을 바꿔 창춘, 하얼빈을 거쳐 중·러 접경 도시 만저우리까지도 가보고 싶다. 길을 러시아 연해주나 시베리아로 연장할 자유도 나한테 있을 터다.
어디 그뿐이랴. 미지의 세상에서 뭔가 새로운 일을 도모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보는 것도 그저 기쁜 일이다.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할 수도 있고, 국내 최초로 북한 여행기를 발간하는 상상도 해볼 수 있다. 어쩌면 북한 소식을 한국으로 직접 전하는 일을 내가 맡게 될지 누가 알겠나.
우리 아이들이라면 더 많은 꿈을 꿀 수도 있을 것이다. 배나 비행기를 타지 않고는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사실상의 '섬나라' 한국이 유라시아 대륙국으로 부상할 경우 가질 수 있는 꿈은 지금과 비교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다양해질 수 있다. '헬조선'을 '희망한국'으로 바꿀 힘이 여기에서 나올지 모를 일이다.
미·북 정상의 최근 행보가 정말로 진심인지 아직 확인할 수 없어 안타깝지만 부디 세상이 나를 속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정혁훈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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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ㅡZU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