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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한 인생 속에 참 의미/ 계강현 목사 /변영희 옮김

능엄주 2018. 2. 15. 23:06
날짜 : 2016.12.11
예배명 : 주일 연합예배
설교자 : 계강현 목사
제목 : 허무한 인생 속에 참 의미
본문 : 전도서 1:1-4; 3:11-13


 

멕시코 연안에 사는 어떤 노인이 돛단배를 타고 홀로 먼 바다로 나가서 낚시로 고기를 잡았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물고기가 잡히지 않았고 매일 허탕을 치고 돌아왔다. 그런데 그렇게 84일 동안이나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드디어 85일 째 되던 날 노인은 큰 물고기를 한 마리 잡았다. ‘청새치라고 하는 주둥이가 뾰족한 큰 물고기다. 그런데 얼마나 큰 지, 잘 딸려나오질 않는 거다. 그래서 노인은 그 물고기를 잡느라고 며칠 동안 씨름을 했다. 줄을 풀었다가 당겼다가 하면서 필사의 싸움을 했다. 드디어 사흘 째 되던 날, 물고기가 바다에 떠올랐고, 노인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작살로 고기의 옆구리를 찔러 죽였다. 죽어서 축 쳐진 고기를 너무 커서 배 안에 올려놓을 수가 없으니까, 배 옆에 끌어다 매고서 노인은 육지로 돌아가게 되었다. 노인은 모처럼 큰 행복감에 젖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피 냄새를 맡은 상어 떼가 고기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때부터 노인은 또 상어와 필사적인 싸움을 해야만 했다.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가까스로 육지에 도착했다. 캄캄한 밤에야 도착한 노인은 자기 집으로 돌아와 쓰러지듯 홀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사람들은 항구에서 노인이 잡아 온 물고기를 구경하고 있었고, 다들 고기의 크기에 감탄과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살점은 다 떨어져나갔고 앙상하게 뼈만 남아 있는 것이었다. 노인은 허탈한 심정으로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만다 

이 내용은 어니스트 헤밍웨이노인과 바다라는 소설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큰 것을 얻으려고 질풍노도처럼 달려간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 사투를 벌인다. 그것을 얻은 것 같고, 잠시 동안 성취의 느낌을 누린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누구에겐가 다 뜯기고 만다. 남는 것은 앙상한 뼈 뿐이고 그는 어느새 노인이 된다. 이루어놓은 업적이라는 것은 추억에 머물 뿐이고, 남들은 그것을 지나가는 말로 짐작할 뿐이다. 고단한 그는 깊은 잠이 든다. 결국 인생은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는 허무한 것이다. 그런 허무주의적 실존주의 작가 헤밍웨이는 이 소설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기의 흐름이 그치고 필라멘트가 끊어진 전구처럼 고독하다.”고 유서를 남긴 채 엽총 자살로 그의 생을 마감했다 

솔로몬 왕은 구약성경에서 잠언, 전도서, 아가서를 기록했다. 아가서는 솔로몬이 젊었을 때 술람미라는 여자와 나누었던 뜨거운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고, 잠언은 솔로몬이 중년이 되었을 때 그의 원숙한 삶의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지혜로운 삶이 무엇인지를 일러주고 있다. 반면 전도서는 솔로몬이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렀을 때 자기가 걸어온 인생의 발자취를 돌아보면서 잘못한 것들을 뉘우치는 심정으로 기록한 것이다. 전도자는 전도서 서두에서 외친다. 1:2,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 외침은 허무주의에 관한 그 어떤 작품보다도 더 처절하게 인생의 허무를 노래한다. 또한 전도서에는 헛되다는 말이 27,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란 문구가 7번이나 등장한다.(1:14; 2:11,17, 28; 4:4,16; 6:9) 여러분, 바람을 잡아봤나? 잡히던가? 그렇게 허무한 것이 인생이란 얘기다.

 

1. 전도자는 왜 그렇게 허무하다고 할까?

전도자는 1~6까지 인생의 허무함을 조목조목 나열하고 있다. 전도자는 무엇이 헛되다고 말하고 있는가 

1) 우선 그는 인생이 유한하기 때문에 헛되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안개와 같고, 인간의 그 어떤 것도 영원하거나 새로운 것이 없다. 헛되고 피곤한 낡은 것의 반복이란 얘기다. 인간은 오고 가지만 땅은 영원히 있다. 인생은 유한하기에 헛되고 허무하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한참 청년 때였는데, 아직도 마음은 청년인데, 어느덧 세월이 흘러 내일모레면 60이다. 화살처럼 지나가는 인생이다. 청춘, 사랑, 꿈 이런 단어들을 마음속에 그리며 청년으로 오래오래 살 것 같았는데, 훅 지나가고 이제는 인생을 회상하고 정리하며 살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누구나에게 다 똑같이 이런 시간이 온다. 인생무상이다 

2) 그런 유한한 인생이 땀흘려 수고하여 얻은 이득과 소유가 다 지나가기 때문에 헛되다. 인생이 헛된 데, 헛된 것에 매달려 목표를 삼고 사는 사람의 모든 수고가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헛된 것에 매진할 필요가 있겠는가? 열심히 밤잠을 설쳐가면서 일하고 수고했는데, 다른 사람에게 그 소유가 넘어간다는 사실에 전도자는 허무해한다. 내가 수고한 만큼 대가를 받고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 있으면 손 들어봐라. 아마 다들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만족을 모르는 부에 대한 욕망 때문에 사람들은 권력을 추구하고 나보다 조금이라도 못한 타인을 학대한다. 사람의 수고와 성취, 성공이란 게 경쟁심과 시기심에서 비롯되기에 결과적으로 적대적이 되고 고독하고 외롭다. 그러기에 다 헛되다는 얘기다 

3) 많은 지혜와 지식도 헛되다. 전도자는 자신의 관심사인 지혜와 지식을 추구하였다. 원래 하나님이 지혜를 주셨고, 왕의 권력을 이용해 많은 지혜자들을 동원해 연구하고 살피게 함으로 더 큰 지혜를 얻었다. 하지만 그것도 다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이 허무했다. 지혜가 유익한 점도 있지만, 번뇌도 많고 근심을 더하게 되더란 얘기다. 여러분, 석박사는 행복한가? 사실 더 골치 아프다. 모르는 게 더 많다는 것을 알 뿐이다. 인터넷 정보시대에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더 많다. 많이 배웠다고, 많이 가졌다고 행복한가? 사실 그렇지 않다. 그 사람들도 한거풀 벗겨보면 다 공허하고 허무함을 느끼며 사는 인생이다

가끔 아프리카의 못 살고 못 배운 나라 어린이들의 얼굴을 보면 그 해맑음에 우리 마음조차 환해질 때가 있다. 세계인의 행복지수를 조사해보면 언제나 못살고 못배운 나라 사람들이 1위라는 건 시사해주는 게 크지 않은가? 그러니 우리도 못배우고 가난하자는 게 아니다. 부유함이나 지식이 많음이 곧 행복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자는 얘기다. 그러니 그것에 목매고 살지는 말라는 얘기다 

4) 즐거움과 쾌락도 헛되다는 것이다. 솔로몬 왕은 천하만국을 통치하는 제국의 왕으로 온갖 세상의 즐거움과 쾌락과 다 누렸다. 그런데 아무리 술을 마시고 웃고 쾌락을 추구해도 모든 것이 다 지나가는 덧없는 것이기에 헛되다고 고백하고 있다. 연예인들의 자살율이 높은 이유도 다 거기에 있다. 우리도 경험해보지만, “연극이 끝나고 난 뒤란 노래 가사처럼 쾌락 뒤에 공허와 슬픔이 찾아온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적이 있나요? 음악소리도 분주히 돌아가던 세트도 이젠 다 멈춘 채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있죠. 어둠만이 흐르고 있죠. 배우는 무대옷을 입고 노래하며 춤추고 불빛은 배우를 따라서 바삐 돌아가지만 끝나면 모두들 떠나버리고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있죠. 고독만이 흐르고 있죠.’ 그런 가사다. 한 때의 영화와 쾌락과 즐거움이 지나가고 나면 허무하다. 동일한 죽음이 모두에게 닥치기 때문이다 

현대무용의 어머니라 불리는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 1878527~1927914)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의 발레리나였다. 그녀가 춤을 추면 사람들은 모두 정신을 놓고 바라볼 정도였다. 그러나 그녀는 무대에서 휘황차란한 조명 아래 수많은 사람의 기립박수를 받고 공연을 다 마치고 난 후 호텔에 돌아와서는 침대에 자기 몸을 던져놓고 한없이 울었다고 한다. ‘사는 게 뭘까? 이렇게 춤을 추고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아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면서 말이다 

5) 권력 또한 무상하고 헛되다는 것이다. 왕이 되고 대통령이 되면 사람들이 그를 따르고 정치권력들이 줄줄이 붙지만, 다른 왕이 세워지고 대통령이 세워지면 다 떠나가고 새로운 권력을 따라 가게 되어 있다. 권력이 참 무상한 것이다. 국정농단과 불통과 무능력으로 탄핵된 대통령에게 무엇이 느껴지는가? 무한 권력이 아니라, 5년 임기다. 뭘 그리 영원할 것같이 생각하며 행동하는지 모르겠다. 탄핵을 맞은 대통령이 권력을 내려놓지 못하고 버티는 모습에서 국민들은 자괴감을 느낀다. 좀 멋있게 퇴진할 수는 없는 것일까? 대통령의 임기를 마친 후에도 살아 있으면서도 계속 존경받는 대통령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전도서 서두에 헛되다고 5번이나 반복해서 외쳤던 전도자는 마지막 장인 12:8에서도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마무리하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헛되다는 얘기다. 

전도자는 왜 이렇게 허무를 노래하는가? 그래서 우리에게 어쩌란 말인가? 자신이 이것저젓 다 해봤는데, 다 허무하고, 쓸데 없는 짓이니 헛수고하지 말고 닥치고 인생을 즐기란 얘기인가? 그냥 허무를 노래하면서 이 세상을 탓하고 염세주의에 빠져서 저 종말의 천국만 바라보고 넋놓고 살란 얘기인가? 우리는 그가 왜 허무를 얘기하는 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그 의문을 푸는 열쇠는 전도서에 27번이나 나오는, ‘해 아래란 단어에서 발견된다. v2,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해 아래는 하나님이 빠져버린 죄 아래란 의미다. 고로 해 아래죄 아래, ‘하나님이 없이 사는 불신앙적인 인간의 삶의 영역을 상징한다. 결국 죄 아래 있는 세상의 삶이 허무하단 얘기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본래부터 헛된 것은 아니었다. 창조하시고 난 후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마지막에 인간을 창조하시고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 하지만 인간이 범죄하여 타락한 이후 하나님과 분리되어 허무한 데 굴복하게 되었다. 그로 말미암아 땅과 세상은 왜곡되고 뒤틀어져버렸다. 따라서 하나님이 없는 인간사의 모든 허우적거림은 허무를 분탕질 할 뿐이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져도 하나님 없는 인생은 공허할 뿐이다. 그 마지막은 영원한 무저갱과 지옥의 형벌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헛된 세상에서 참된 지혜를 발견하는 일은 우선 그 원인이 된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다. 죄의 문제를 해결받지 못한 인간은 허무할 수밖에 없다. 이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은 결국 처절한 허무에 빠지게 될 것을 전도서는 교훈하고 있다. 하나님이 없이 사는 불신앙적인 삶 전체에는 허무주의만 있을 뿐이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세상으로부터 유익을 얻으려고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허무한데 종노릇하고 있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2.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아 살아야 한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솔로몬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은 없다. 전무후무한 지혜를 하나님이 그에게 주셨다고 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솔로몬보다 더 지혜롭게 사는 방법은 있다. 그가 인생을 다 살고나서야 깨달은 가장 빛나는 지혜를 성경을 통해 배워서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인생을 살면 된다. 그럴 때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 지점에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런 탄식이 아니라, “정말 내 인생은 복되었노라.”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두 가지를 생각하고 실천해보자.

1) 소박한 행복을 누리며 살자. 3:12-13,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우리는 천년만년 사는 게 아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오늘 이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아픔과 상처 때문에 오늘의 즐거움을 상실하지 마라. 미래의 목표와 염려와 부담 때문에 오늘의 행복을 놓치지 말라. 사소한 곳에서 사소한 일과 오늘 내가 마주한 사람들에게서 의미를 발견하고 행복을 찾아라작은 선을 베풀고 먹고 마시고 수고하고, 이런 것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신다. 사소한 것과 소박한 것의 가치, 그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욕심내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의 욕망은 만족을 모른다. 욕망은 우리가 다스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욕망은 항상 거대한 것을 좇기에 작고 소박하고 중요한 것을 놓치게 만든다. 우리의 삶을 바라보면 행복이란 파랑새를 찾으려 밖으로 밖으로 내달리려고만 한다. 그러나 참 행복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다. 행복이란 파랑새는 지금 여러분이 딛고 있는 이곳에, 우리의 만남 속에, 소박하지만 정이 넘치는 우리 집의 김이 무럭무럭나는 작은 밥상에, 교회에서 주일마다 나누는 국수에,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외면하기 쉬운 익숙한 마을에 있다. 우리의 소박한 식탁, 아내, 가족, 좁지만 함께 기대어 살 수 있는 따뜻한 공간, 이런 소박하고 작은 것들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알고, 그것을 제대로 만끽하며 살기를 바란다 

미국에서 한 노신사 부부가 필리핀에 관광을 갔다. 그런데 한 가난해보이는 필리핀 어부가 자기 배 곁에 드러누워 빈둥빈둥 담뱃대나 빨고 있는 걸 보고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보게, 왜 고기잡이를 안 가시오?” 물었더니 오늘 몫은 넉넉히 잡아 놨지요.” 그런다. “필요한 것보다도 더 많이 잡으면 되잖소?” “그래서 뭘 하게요?” “그러면 돈을 더 벌 수 있지요. 그 돈으로 당신 배에 알맞은 발동기를 살 수 있고, 그러면 더 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더 많이 잡을 수 있고, 그러면 또 돈을 더 장만하여 나일론 그물을 갖출 수 있고, 그러면 또 더욱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고 그만큼 돈을 많이 벌게 되지요. 얼마 안 가서 어선 두 척을 살 수도 있겠고, 그러다가 어쩌면 거대한 어로 함대까지 거느리게 될지도 모르지요. 그렇게 되면 당신도 나처럼 큰 부자가 되는 거요.” 노신사의 말에 그 어부는 그러고는 또 뭘 하죠?” 물었다. “그러고는 편안히 앉아 쉬며 삶을 즐길 수 있지요.” 그러자 어부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당신은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앤소니 드 멜로, 종교 박람회   

2)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며 살자. 전도자는 12:1-2,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12:13에서 결론내린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일명 결자해지이다. 생명의 문제는 생명을 창조하신 분에게, 죽음의 문제는 죽음을 창조하신 분에게 맡겨서 문제를 풀라는 것이다. 복의 문제는 복을 창조하신 분에게, 화의 문제는 화를 창조하신 분에게, 생사화복의 문제는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에게 맡겨서 그 문제를 풀어라는 것이다. 빈부 문제의 해결은 부하게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시는 분에게 맡겨서 풀라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 문제를 풀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죄 때문에 허무한 데 굴복한 우리 인생에게 하나님은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시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성탄절이 바로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저 십자가에서 우리 죄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를 보여주셨다.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 구원을 선물로 받게 해주셨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해 아래'(죄 아래) 허무한 인생을 사는 우리들에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 위에'(그리스도 안에서)천국백성으로 저 영원한 천국을 사모하며 살게 해주신다. 이제는 그 하나님을 믿고 그 명령들을 지키며 살자. 그의 명령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고, 영혼구원, 제자 만들기이다. 그것이 사람의 본분 즉 해야 할 의무이다 

신약에 가면 바울사도가 부활장에서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다. 고전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주 안에서 수고하는 것은 절대로 헛되지 않다!’ 전도서는 인생의 허무함을 노래했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뜻은 그 허무 속에 참 의미를 발견하여 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참 희망을 발견하고 그 의미와 가치를 위해서 살라는 얘기다 

우리가 주님의 사역을 하다가 왜 흔들리나? 인정을 받지 못할 때 흔들리고, 열매가 없을 때 흔들린다. 그러나 기억하자. 주 안에서 하는 우리의 모든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고 다 의미가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은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이다. 사람들은 나를 인정해주지 않을지라도 주님이 영원히 기억하시고 인정해주신다. 

또한 헛되지 않다는 말은 이 땅에서 보상과 열매도 있다는 말이지만, 이 부활장에서는 하늘의 상급을 얘기하고 있다. 여러분이 한 영혼, 한 생명을 위해서 땀흘리며 섬기고 희생하고 노력하는 모든 일이 결코 헛되지 않고 갚아주실 것이다. 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최선을 다해 매일 지지고 볶는 데, 오히려 허무만 쌓는 고달픈 해 아래의 인생을 살 것인가? 아니면 인생 고달픈 건 예외없이 똑같지만, 허무의 근원이 채워져가는 뿌듯한 해 위의 인생을 살 것인가? 하나님이 뻐져버린 인생, ‘해 아래서의 삶은 헛되다. 그러나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해 위에서의 삶’(그리스도 안에 삶)은 헛되지 않고, 가치있는 인생이 된다. 영혼구원, 제자 만드는 우리 목장의 삶은 절대로 헛되지 않고 영원히 가치있는 삶이다. 허무한 인생 속에서 참된 의미를 발견하고 하루하루를 즐겁게 그 영원한 것을 추구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자.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