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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야구장

능엄주 2018. 1. 16. 07:28

히어로즈와 SK 야구경기를 보았다.

지난 경기에서 매번 상당한 격차로 패배하던 히어로즈가 모처럼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을 보고 환호와 함께 손뼉을 힘껏 쳤다.

한참동안 손뼉을 치고나니 기분이 상승되는 것을 느꼈다. 지는 편이 있으면 이기는 편이 있는 것이지만 히어로즈의 승리는 나로 하여금 별다른 감회를 자아내게 한다.

정외과의 미남자였다. 당시에 등록금 마련은 물론 학업을 꾸려 나가기가 너나 할 것 없이 만만치 않던 시절에 이목구비가 준수하게 빠진 한 선배 남학생과 동대문운동장으로 야구를 보러 갔다. 돌계단에 나란히 앉아 K대와 S대의  야구경기를 보는 동안 홈런을 날릴 때마다 우리는 소리를 얼마나 우렁차게 질러댔는지 두 팔을 얼마나 휘저었는지 훨훨 공중으로 날아갈 만큼 젊은 우리들이지만 나중에는 목이 쉬고 어깨가 뻐근했다.

야구장에 들어오면서 간식거리와 음료수를 준비해 왔으나 야구경기에 폭 빠진 우리는 간식 봉지가 어디 있는지조차 알 길이 없게 되었다.

경기가 종료되고 돌계단을 내려올 때가 되어서야 목도 타고 시장끼도 심하여 빵봉지를 찾느라 둘러보았지만 간 곳이 없었다. 단 벌 부라우스는 땀에 흠뻑 젖어 몸에 착 달라붙고 단정하게 묶어 놓은 머리는 멋대로 헝크러져 볼상 사나웠다. 또 보니 평소에 별 친숙하지도 않은 정외과의 선배와 동행인 게 아닌가.

그와는 단지 L교수님의 문학창작론을 같이 들은 일 뿐으로 L교수님 생신에 문과학생 전원을 자택으로 초청한 날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 친분 정도였다.

그런데 누가 먼저 동대문운동장에 야구를 보러 가자고 제의한 것인지, 빵과 음료수를 살 때는  누가 먼저 지갑을 열었던 것인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생각나는 것이라곤 야구를 보면서 이상하리만큼 흥분이 고조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가 응원한 K대학 팀이 이겨준 것이 다행이긴 했으나 그렇긴 해도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고래고래 함성을 질러댄 일이며 빵과 음료수가 든 봉지를 분실한 일 등은 도가 좀 지나친 감이 있었다.

야구도 야구려니와 미남자가 문제인 게 틀림없었다.

진작부터 축구를 위시해서 농구 배구 탁구 등 구기 종목에 대하여 전반적인 흥미는 가지고 있었지만 야구를 보기 위해 동대문운동장 야구장까지 진출한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신당동 L교수님 댁으로 돌아오는 골목에서 가까스로 기억해 낸 것은 정외과의 선배 남학생은 대다수 모든 여학생들이 선호하고 흠모와 동경을 보내는 그런 상대라는 것.그래서 였을까. 야구장에 메아리치던  고함과 환희의 순간은 그 남학생의 존재를 포함시켜서야 제 빛을 발하는 거였다.

 야구경기 관람은 꿈이 아닌 엄연한 현실로서 오래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잠재의식 속에 숨어 있다가  마침내  히어로즈의 승리에 열광할 수 있게 한 근원으로 작용한 것이 아닐까. 동대문운동장에서의 야구 경기 관전의 추억은 내 삶 속에 뜨거운 불길처럼 여전히  힘을 보내준다.

풋풋한 시절에 만났던 그  사람. 그는 지금 어디에 살고 있을까. 

                                

임병식  09-05-11 08:40
변영희선생님, 안녕하신지요?

야구경기를 좋아하시는군요.  저는 야구보다는 축구를 더 좋아합니다,
물론, 한일전 같은 큰 경기는 빼놓지 않고 보지요.

이번에 문학기행에 뵐줄 알았는데 오시는줄 알았더니 안오셨더군요
더워지는 날씨에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변영희  09-05-11 13:41
임병식 회장님

논에 물이 그렁그렁 고이는 계절입니다.곧 모내기가 시작되겠지요.
올 봄에는 봄세미나를 좀 다녀야겠다 그리 맘먹었는데 우리 애기가 어린이집에서 다쳤어요.
며칠은 어린이집을 안보내고  집에서 저가 애기를 보게 되었어요.
꼼짝못하고 있거든요. 그게 금주말까지 계속될 모양이에요.
보성에 못가 저도 유감이었습니다.

임재문  09-05-11 14:54
해해 여기서 뵙는 군요 변영희 선생님 ! 저는 이제 많이 회복되어 걸어서 교회에 예배도 드리러 다니고, 운동삼아 왕송호수도 들러 보기도 하고 그렇게 지냅니다. 그러나 아직은 요양 단계입니다. 그래도 남보담은 빨리 회복되고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감을 갖고 살고 있답니다. 어느 땐가는 이산 가족 만나듯이 우리 모임에서 뵈올 수 있겠지요. 그때는 그냥 누구 보나 안보나 이산가족 재회의 그 신을 연출 합시다.  ㅎㅎㅎㅎㅎㅎㅎㅎ

정진철  09-05-11 19:20
예쁜 추억을 간직하고 계시는것 같습니다. 흔히들 남자는 첫사랑을 못잊고 여자는 첫사랑보다는 마지막 사랑을 못잊는다고 하는데 변 선생님은 지금까지 기억하시는것을 보면 첫사랑이라기보다는 그냥 예쁜 추억이었던 것 같습니다. 좋은 계절에 좋은 취미를 가지신것 같습니다

최복희  09-05-11 23:13
변영희 선생님! 야구와 얽힌 아름다운 추억을 갖고 계시는군요.
선생님의 소녀 시절은 눈이 부셨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아름다운 미모를 간직하고 계시니 말입니다.
풋풋함이 느껴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변영희  09-05-12 10:56
영희씨!

일제와 6.25를 겪은 우리 부모님 세대는 자식 많이 낳는게 무슨 훈장 벼슬처럼 당당하고 우쭐 이었던지 내 순번은 9남매의 네번 째. 잔뜩 낳아놓고 양육이 어렵다보니 유치원이며 학교에 일찍 입학시킨 탓에 동창들과 나이 차이가 좀 . 그런 친구들이 가끔 영희씨! 하고 메시지 보내오고 전화해서 깜짝 놀라기도합니다만. 나이 더 먹은 사람이 자기보다 나이 덜 먹은 사람을 가리켜 씨!라 부르는 게 타당한지 글씨유.
임재문 선생님 고맙습니다.

보성에 갔으면 만났을 정진철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신선함을 안겨주는 [새가 날아오는 집]의 주인공 최복희 선생님에게 감사 말씀 드립니다. 謝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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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명화  09-05-21 10:50
야구 보시며 오랜 추억의 앨범을 꺼내 보시는 변선생님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지난 기억들에도 분명 노여움이 있었을 터인데, 나쁜 일들은 모다 강물에 씻겨 내려간 듯 아름답고 기쁜 일들만 우리들의 기억 창고속에 남겨지는 것 같습니다. 변선생님 작품을 읽다보면 소설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랄까요. 좋은 작품 많이 보여주시고 늘 건강하세요.

변영희  09-05-21 23:00
우리 어릴 때 뒷곁에 꽃밭이 있었는데 수세미 등넝쿨 나팔꽃이 꽃지붕을, 그 아래로 박하(허브) 와 노랑꽃, 보라꽃 빨간 맨드라미가. 그리고 시멘트로 발라놓은 반지반질 길들은 장독대가 널직하게 펼쳐졌는데
거기서 뭘했냐 하면 소꼽놀이를. 그 얘기 하는 게 왜 이리 힘들지? 중요한 건 소꼽놀이를 그대 원명화님과 꼭 같이 했던 것 같다고. 그게 뭐냐면 정답다는 바로 그 말인데 이리 어렵네. 비오는 날 雨中飛行을 한 듯 기분 삼삼.
맞아요. 사람의 마음이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한다고 하네요. 주로 좋은 것들만. 노여움은 소설쓸 때 써먹지 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