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언제부터 쥐똥나무가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또 언제부터 쥐똥나무꽃 향기가 아파트 통유리를 뚫고 온집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는지 그것은 더욱 모른다.
날씨가 후끈 더워져서 베란다에 면한 창문을 활짝 열어놓았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흔히 마지막 행굼을 진행하고
있을 즈음해서 세탁기 안으로 털어넣는 세제의 향기가 옷가지에 달라붙어 뿜어내는 향내인 줄만 알았다. 기분좋게 빨래를 펴널며
빨래라는 가사노동의 한 종목이 그다지 고역이지만은 않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 향내는 세제가 갖는 비리고 역한 쪽의 향내와는 분명히 구분되었다.
비로서 창문 밖으로 목을 길게 빼고 향내의 출처를 수색했다. 창문 저 아래 쥐똥나무꽃이 정답게 무리져 있었다.
아,아! 나는 그만 놀라 소리지를 뻔 하였다. 그 죄끄만 것이 뿜어내는 향내치고는 사뭇 강렬하고 매혹적이라서가 아니었다.
몇 년을 연속해서 아카시꽃도 라일락꽃도 알게모르게 향기가 사라지고 없었다. 지금 막 열정적으로 빨간 꽃봉오리를 터뜨리고 있는
덩쿨장미 역시 전에 비해서 향기가 지극히 미미해졌다.
공해때문에 벌 나비가 소멸돼 꽃향기도 안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쥐똥나무꽃은 공해와는 상관이 없는 것인가. 너무나 작고 앙징맞아서 공해가 무차별로 날아와 쥐똥나무꽃 향내를 방해할 수 없어서인가. 오종종해서 볼품하고는 거리가 먼 꽃망울. 그것은 일주일 내내 우울과 슬픔에 젖어 있던 나에게 미소를 되찾아 주었다. 다정한 이의 방문처럼 따스한 위로를 주었다.
그랬다. 쥐똥나무꽃 향기는 언제 그 자리에 있었는지 조차 모르고 지내온, 마치 그 향기는 자전거 꽁무니에 손녀딸을 태우고 시골길을 내달리던 그 한사람, 어떤 한 사람의 사람냄새를 연상시켰다.
일주일 여에 걸친 내 우울과 슬픔은 가짜가 아닌 참 사람냄새의 상실에 있었던지 모른다. 그 진짜 사람스러움과의 결별에 대한 아쉬움, 억울함, 분노와 허망함의 총체였다고 할까. 그런데 쥐똥나무꽃 향기가 사람의 향기를 생각나게 하고 절절한 그리움을 일깨울 줄이야.
향기가 진동하는 꽃과 사람의 사람스러움에 대한 전설은 날이 모자라고 달이 부족하다. 긴 침울의 그림자를 걷어내도 좋게 되었는가. 쥐똥나무 꽃향기라도 맡을 수 있어 5월의 마지막날이 덜 적막한 것인가. 어둠이 내리는 창가에 서서 쥐똥나무의 순한 꽃향기에 그리움을 실어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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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문 |
09-06-01 06: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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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희 선생님 쥐똥나무에서는 쥐똥냄새만 나는 줄 알았는데, 그 향이 그렇게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올 정도라니요. 꽃향기처럼 그렇게 나도 사람사는 냄새를 풍기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어느 누구에게 그렇게 사무치게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으면 더 없이 행복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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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희 |
09-06-01 1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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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문 선생님
병문안차 [왕송호수]를 방문하려 한 것인데 벌써 6월 이네요. 환자생활에 있어서는 저가 선험자이니 그 아픔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를. 많이 좋아지셨다니 감사합니다.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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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명화 |
09-06-03 15: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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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 향기 보다도 더 진하게 풍겨오는 쥐똥나무 향기에 취할 지경입니다. 국립묘지 뒤문 쪽으로 올라가는 저희 아파트 담장이 모두 쥐통나무로 쳐있는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향기에 뒷산을 가고 싶은 데 에궁~ 손자땜에? 그저 창밖으로 풍겨오는 향기만 맡고 있답니다. 그 작은 소재를 가지고도 좋은 수필 한 편읋 이렇게 맛깔나게 쓸 수 있다는 게 변선생님의 탄탄한 저력인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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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희 |
09-06-04 07: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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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아기보러 갔다가 밤늦게 집으로 오는 길. 어디선가 쥐똥나무꽃 향기가 솔솔. 한 순간에 피곤이 싹! . 원명화님의 정다운 글 내게 향기 되어 날아와. 오늘은 문학의 집 숲체험에 이은 글짓기 대회 가는 날. 고맙고 감사. 이처럼 아픈 몸으로도 새로운 하루를 살 수 있음이. 今天快樂! 永遠幸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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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복희 |
09-06-08 2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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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희 선생님! 역시 선생님의 글 솜씨는 누예고치가 실을 뽑아내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흐르는군요. 첨엔 저도 무슨 향기일까 궁금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읽었지요.ㅎㅎ 쥐똥나무꽃 향기라! 전 아직 그 향기를 맞지 못했는데 앞으로 그꽃 앞으로 지나게 되면 코를 벌름거릴 것 같습니다. ㅋ 잘 감상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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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희 |
09-06-09 16: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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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똥나무꽃이 피면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밀려와요. 옛날 천승준의 ' 아카시꽃' 을 읽고 신문사에 전화를 한 일 있더니 그게 다 <향기>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향기가 안나면 그리 매력일 것도 없는 쥐똥나무꽃. 꽃의 향기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향기는 더 말할 것도 없을듯. 문인들은 모두 향기나는 한 송이꽃. 근데 우리언니 이름이 복희라. 변복희. 청주 시내 멀리 우암산을 찌르던 그 인기 다 놔두고 6.25에 희생된 내 언니. 최복희 선생님. 내가 지금 또 소설 쓰고 싶어지네요.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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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준 |
09-06-26 16: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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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희 선생님! 얼굴을 대하는 듯합니다. 다정다감하시던 그 얼굴, 가냘프지 않으면서도 날렵한 몸매, 어딘지 모르게 매력을 느끼는 분입니다. 문학에 열을 쏟는가 싶더니만 학문에 대단한 성의를 다 보이시던 변선생님, 오늘은 볼품없는 쥐똥나무에 까지 감탄하십니다. 이 글의 흐름은 참으로 감미롭습니다. 흥미로운 소설을 읽는 듯 하기도 하고 생활속에 젖은 한 편의 수필 같은 그런 정감어린 글인듯 하기도 합니다. 대가의 글을 읽으니 더욱 반갑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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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희 |
09-06-28 14: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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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준 선생님께 예전에 삐륵삐륵 울리던 삐삐도, 핸드폰도, 이메일도 없던 시절 저는 편지를 곧잘 썼어요. 년말이면 평소에 자주 찾아 뵙지 못한 어른들에게 정중하게 편지로나마 인사를 드려야 했지요.그런데 그게 많아야 3통 정도 쓰고 나면 그 다음 것들은 아무래도 문장이 바래져요. 진솔함이 덜하고 그냥 상투적인 것이 되기 쉽더라고요. 그런 이유는 아니지만 글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글을 절제해야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 오랫만에 글로나마 뵙게 돼 감사합니다. 몸과 마음이 폭 아파본 사람이면 自我 탐색이 진지하다고 할지.아니면 그렇게 되가도록 바람이, 神이, 자연이 밀어주는지도 모릅니다. 健康하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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