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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전야제

능엄주 2017. 12. 9. 11:44
별난 전야제                                                                                                                                2016. 12. 19.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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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인사동 가자"
"인사동은 왜?"
일요일 외출이 내키지 않는 나는 딸애의 인사동 외출 제의에 싱드렁하게 대답했다. 인사동은 우리집에서 한 시간 안에 다다를 수 있는 곳으로 동창 친구들과 또는 문우들과 후딱하면 가게 되는 곳이다. 더구나 일요일은 조계사 법회가 있어 그 동네로 가는 길이 다소 복잡할 수도 있었다.


"그럼 명동은 어때?"
명동이라고 별로 관심이 쏠릴 것도 없었다. 나의 20대 돌체다방에 공초 오상순선생님과 같은 레벨의 저명 인사들이 잘 온다나 하면서 괜스레 폼?잡고 다닐 때 명동이지 시장판으로 변해버린  현재의 명동은 호기심이 동하지 않았다.
"있잖아, 원세개의 집, 그 찻집에 가자고"
현재는 중국대사관이 되었다는 그 옛날 원세개의 저택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정원이 내려다 보인다는 그 찻집. 서울시내의 명당 중의 명당이라는 그곳에 좋은 기를 받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이야기는 전에 들은 일이 있었다.


나는 외출 준비를 간단명료하게 완료하고 딸애를 따라 집밖으로 나왔다.

요즘처럼 의기소침하여 자꾸만 지리산 산바람이나 그리워 할 거라면 명동 나들이가 어떤 계기를 마련해 줄지 누가 아는가.
명동은 입구에서부터 소란의 본거지가 돼 있었다. 00교회 전도단이 틀어놓은 확성기-찬송가가 명동성당은 물론 중앙극장과 금강제화 골목, 유네스코 회관 저 멀리로 울려퍼졌다.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젊은 인구가 꾸역꾸역 확성기 근처로 모여들고 있어 우리는 잠시 길을 못 찾고 그곳에 멍청히 서 있어야 했다.


"기왕 왔는데 원세개 기 좀 받아가야지"
딸애는 사람의 물결을 가르고 앞으로 나갔다. 그런데 고생을 겪으며 겨우 찾아온, 중국대사관 정원이 아늑하게 내려다 보인다는  그 찻집도 명동 입구의 인파보다는 약간 덜한 감은 있지만 구석 자리 두어 개를 제외하곤 좋은 기가 무시로 발산된다는 좋은 자리는 우리 차지가 될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원세개의 집 정원이 내려다 보이는 기 받는 자리로 슬쩍 다가가서 보니 중국대사관 건물은 리모델링 중이라 정원은 각종 건축자재가 쌓여 있고 그 가운데 나무 몇 그루만이 겨우 보일 뿐 별 것도 없었다. 

 
외출하기 싫던 처음의 생각에 충실하지 못했음이 후회스러웠다. 나오기 싫은 날은 집에 머무는 게 상책이라니깐.

나는 투덜거리며 딸애 손을 끌다싶이 잡고 명동을 돌아 나와 청계천을 지나서 영풍문고로 갔다. 명동 인파에 비하면 일요 오후시간대에 영풍문고는 한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신간 코너에서 새로나온 책 <한국소설 베스트선집 2> 는 바로 식별할 수 있었다.


"여기에 내 그림자가 숨어 있어. 너도 이 책 사서 읽어봐라."
나는 한껏 호기를 부리며 딸애의 독서의욕을 부추겼다.
"알았어 엄마. 이제 신촌으로 가자"
"전에 살던 동네는 뭣땜에 가니?"

항의할 새도 없이 신촌행 버스가 오자 딸애는 막무가내로 나를 밀어넣었다. 


전에 살던 동네 현대백화점 앞에서 하차했다. 연세대학으로 가는 뒷골목에  있는 돼지족발과 왕순대로 유명한 [구월산]이었다. 나는

순전히 타의에 끌려  구월산의 나무 의자에  털썩 주저 앉고 말았다.
"여기 왕족발 대(大) 한 접시하고 왕순대랑 동동주...."
"그걸 누가 먹게?"
"엄마하고 나지 누구야?"
"아서라. 요즘 나 고기 체질 아냐. 식성 바꾼 것 너 모르니?"
"히야! 맛있다. 엄마 이 집 족발은 없어서 못 판대."


족발과 순대 선전까지 듣는 가운데 나는 나름대로 집히는 바가 있긴 하였다.

다 못 먹어서 남은 음식은 비닐 봉지에 싸 달라고 하여 들고 올 수 밖에 없었다.
"솔직히 신촌에는 아는 데가 여기 밖에 없어. 엄마 입맛은 이게 아닌데...그치?"
딸애 말소리는 전례없이 나긋나긋하였다.


좌석버스에 오르자마자 내 뱃 속은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싸아하니 아랫배가 아파오면서 앞 뒤, 옆으로 인정사정없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당장 진땀이 배어나오고 속이 미쓱미쓱한 것이 위기상황이 목전에 도래한 낌새가 완연했다.

아마도 얼음처럼 차거운 동동주와  돼지족발이 불협화음을 이룬 게 틀림없어 보였다. 참기 어려운 복통이 애낳을 때의 진통처럼 주기적으로 엄습했다. 나는 불현듯 내 어머니의 가을 날의 복통을 상기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했고 모처럼의 나들이에 나는 거의 초죽음이 되었다.
내일은 내 생일이었다.

                                 
 


  09-10-21 16:00


일만성철용 : 한 편의 멋진 꽁뜨네요. 모녀 간의 구체적인 사랑이 "내일은 내 생일이었다."와 제목이 절묘하게 들어맞는.

                                                           

[출처] 별난 전야제|작성자 영4531h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