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소설 논개>에 푹 빠져 있다.
지난 9월 한 달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흘러갔다. 심신이 거의 초죽음이 되어 독서는커녕 앉고 서는 것조차 불편을 겪었다.
치아는 얼마나 쑤시던지 밤마다 머리맡에 저승사자가 떼 지어 몰려와서 나를 끌고가기 위해 사지를 꽁꽁 묶는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보려고 해도 천근만근으로 몸은 늘어지고 마음은 피폐했다.가까스로 딸애의 권유를 받아들여 멀리 요양을 갔지만 한동안 낮밤을 모르고 헤맸다.
아플 만큼 앓고나면 지혜가 생기는 건 어린애들에게만 통용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나의 뇌리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소설 논개를 읽으며 나의 새 작품을 구상한다. 김만중의 소설화는 이미 많은 작가들이 시도했고, 수상의 영광을 얻은 이들도 많다. 그러나 내가 꿈꾸는 김만중은 그들과는 차별을 두고 싶은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일단은 소설 논개를 끝까지 읽는 게 순서일 것 같다.
얼마나 재미 있는지, 이 소설을 쓴 작가에게 얼마나 경외와 찬사를 퍼붓게 되는지,
소설가 동료와 이 책을 함께 읽으며 우리는 수시로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면서 신나는 시월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섬세하고 정감있게,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잘 갈무리하면서 쓴 소설 논개는 우리들에게 즐거운 충격이었다.
흔히 논개 하면 교과서에 실린 정도의, 진주 남강에서 적장의 목을 껴 안고 강물에 투신했다는 의기(義妓)로서의 논개를 알 뿐이었는데 소설 논개는 논개의 유년시절의 총명함과 당찬 모습을 직점 보고 느낀 듯(역사적 자료도 별로 없는데) 리얼하게 역동적으로 그리고 있어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다. 더구나 어린 소녀들의 성에 대한 호기심과 그 표현은 감히 누구도 흉애낼 수 없을 만큼 압권이다.동기(童妓)로서의 생활 묘사도 Arthur Golden의 <memoris of a geisha>에서 주인공 사유리가 겪는 체험보다 훨씬 시청각적 쾌감을 안겨준다.
이래저래 10월! 시월은 내게 참 좋은 달이다. 좋은 책을 만날 수 있어서 그렇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가 시월이 좋은 그 두 번째 이유다.
기력 없는 사람에게 시월의 서늘바람은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시월의 마지막 밤' 노래라도 흥얼거리고 싶게 한다.
요즘 시간가는 게 몹시 아깝고 많이 아쉽다.
이만큼 살아오고 보니 시간은 새삼 금이 되고 은이 되고 있다. 단 한 시간이라도 낭비하거나 소모할 수 없다는 생각이 절실하여 잠시도 느슨하게 쉬지 못 한다.
한 권의 책이라도, 한 편의 소설이라도 정성을 다하여 몰두하려고 한다. 우선은 소설 논개를 읽는데 시간을 투자하기로 한다. 소설 논개는 나에게 큰 은전(恩田)이고 낭보(朗報)이다. 단어마다 문장마다 페이지마다 탄성과 감동이 함께 한다. 소설 논개를 쓴 작가의 역량과 문학적 안목이 놀랍다.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
시월! 시월은 유익하고 보람있는 달. 소설 논개를 읽으며 나 자신을 깊이 성찰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을 감사한다.
오랜 침잠에서 깨어나 새롭게 '나'가 발화*發火)하는 환희가 있다.
시월이 가기 전에 많은 일을 획책하고 이루리라고 믿는다. 맑고 선한 영혼에 대한 글쓰기 작업도 이제 속도를 더할 필요가 있다.
소설 논개를 만난 시월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