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른팔을 사용할 수 없는 오십견의 심각한 아픔 그대로 한국을 떠나왔다.
이 저녁에 한 편의 글을 쓰고 싶은 강렬한 욕구 때문에 펜을 들고 있기는 하나 내 팔은 글씨를 써나갈 수 없을 만큼 막무가내로 아프다.
0일 아침 김포공항을 출발, 보스턴에 머문 지 일주일이지만 그동안 물리치료를 중단하였고 근육이완제나 신경안정제 따위의 병원에서 주는 약도 끊었으므로 아픈 것은 당연하다. 미국에 와서 몸을 쉬고 있는 상태에서 통증은 오히려 한결 심화된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팔의 아픔을 잠시 망각할 수 있을 만큼 나의 머리와 가슴으로 아름답고 풍부한 감정이 찰스강의 강물처럼 밀려들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르노와르의「DANCE AT BOUGIVAL」 때문이다.
전 세계의 회화, 소묘, 판화, 공예, 염직 등 수많은 미술 작품이 작가별로 혹은 작품별로 전시되어 있는 속에서 발견한 르노와르의 그림은 언제보아도 호감이 간다. 한동안 나의 시선을 고정시켜 다른 작품으로 쉽게 옮겨갈 수 없게 하는 신비한 힘을 발휘한다.
그리스 신전과 똑 같다는 웅대한 보스턴 미술관, 헌팅턴 애비뉴에 면한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까지도 미술관에 전시된 미술 작품들과 감히 비길 만하다고 생각되었다.
끝없이 펼쳐진 잔디밭과 민들레꽃, 노랑 빨강으로 만개한 튤립. 흰 꽃이 구름처럼 활짝 핀 큰 나무들, 연못의 뛰는 고기와 야외수업 나온 미국 어린이들, 풀밭에 누운 젊은 연인들의 평화, 사방으로 뻗어 있는 꿈길 같은 산책로와 그리고 시몬스 칼레지의 고즈넉한 건물을 비롯한 자연과 사람이 훌륭한 조화를 이룬 풍경 등.
세잔느, 고흐, 드가, 마네, 코로, 밀레의 작품도 그들 나름대로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깊은 감동으로 소용돌이치게 하였지만 나는 유독 르노와르에 취하여 하염없이 서 있었다.
춤추고 있는 소녀의 복숭앗빛 피부, 살포시 아래로 내려 뜬 두 눈, 수줍은 표정이면서 몸 전체에 잔잔히 흐르는 환희가 화폭 전체를 5월의 햇살처럼 밝고 싱그럽게 한다.
드넓은 전시관 한 모퉁이에서 미술 대학생인 듯한 미국인 여학생 몇이서 스케치하고 있다. 화필을 부지런히 놀리고 있는 그들 역시 내 눈에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소녀의 손을 잡고 허리를 감싸고 있는 파트너가 얼굴을 가까이 대려고 하는 것인가, 춤추는 소녀는 약간 몸을 돌린 듯한 동작이 무한히 애교스럽게 비친다. 소녀의 옆에 있는 두 남자와 턱을 괴고 앉아 있는 검은 모자를 쓴 여자의 표정도 충분히 회화적이면서 함초롬히 미소를 머금게 한다.
나는 이 그림이 왜 이처럼 좋은지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서해가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인천의 송도 유원지 높은 언덕의 별장에서 빈궁한 첫 살림을 시작할 당시였다고 헤아려진다.
시인이었던 고교 때의 국어선생님이 크리스마스에 보내준 역시 르노와르의「모녀상」을 벽에 붙여놓고 그들처럼 예쁜 첫딸 낳기를 절실하게 기도해 마지않았다. 르노와르와 친숙해진 건 그런 동기였고 그 이후 나는 어디서나 르노와르의 여인들을 만나면 너무나 반가워 탄성을 지르곤 하였다.
나는 미술관 일층 매장을 돌면서 망설임 없이 르노와르의 그림카드 한 상자를 선택하였다. 딸애에게 생일선물로 주기 위해서였다. 세느강의 CHATOU, 섬 어린이, 항아리의 꽃들, 강가의 낮은 풀밭에서 꽃을 따는 소녀들, 맨턴 근처 해변 풍경 등이었다.
나는 특별히 르노와르가 표현한 여인들처럼 알맞게 수줍을 수 있는 여자, 정숙한 품위와 고상한 분위기를 갖춘 여인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딸에게 향한 짙은 열망을 가지고 00달러를 지불하였다.
르노와르로 하여 나의 미국 여행이 온통 보람으로 가꾸어지고 있는 듯했다. 한편의 그림만으로도 넉넉해지는 마음은 아침 한 시간 한국방송에서 본 전직 대통령 딸의 해외재산 도피사건도, 배후의 비호세력이 쉽게 노출되지 않고 있는 빠칭코의 대부에 관한 불쾌한 보도도 희석시키고 있었다.
한 가지 석연치 않은 점은 거대한 면적의 전시관에서 물량과 종류의 다양성을 과시하는 듯한 일본에 배해 자칫 지나치기 쉬운 위치, 마치 셋방살이처럼 일본관 한 옆에서 겨우 찾을 수 있는 한국 작품들이었다.
오천 년의 찬란한 역사는 어디로 갔는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21세기의 코리아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이 고작 낡아 보이고 이 빠진 것 같은 고려청자나 이조백자 몇 점에 국한된 것인가 생각하니 어이없고 분개가 치받치기도 하였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올림픽 잔치도 물론 중요하지만 대외적으로 문화의 뒷받침이 너무나 허술한 데에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미술관 내의 인위적이고 깊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천심원(天心園)이란 일본식 정원을 바라볼 때 나의 쓴웃음은 비애와 절망으로까지 확산되어 아들과 함께 울분을 안고 미술관을 나와야 했다.
에어브러시 기법을 사용하여 늦은 밤까지 그림에 몰두하는 아들 곁에서 나는 팔의 통증으로 얼굴을 바로 펴지 못하였다. 또 한편 엄청난 감동과 기대가 펴오르기도 하는 것이다.
보스턴 미술관에서의 르노와르와의 만남은 어떤 조건에서든 행복은 마음에 있고 그것은 순간이면서 영원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 귀한 나들이가 되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하는 말을 다시 새겨보는 가운데 보스턴의 밤은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