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월하 김달진(1907~1989)은 1929년 《조선시단》에 ‘상여 한 채’ ‘단장일수’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서정주. 김동리. 오장환. 김광균 등과 동인지 《시인부락》의 한 멤버로 시작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올빼미의 노래] [한 벌 옷에 바리때 하나]와 [산거 일기] [손오병서] [장자] [한산 시] [고문진보] [법구경] 등 훌륭한 번역서를 남겼다.
2. 김달진 시학의 특징은, 동양적 정밀과 세속적 번뇌를 초탈한 절대세계를 지향하면서, 언어를 최대한 절제한 평범하고 기교가 없는 표현으로, 불교의 화엄적 생태관, 세계관에 기반을 둔 경이로운 우주를 담아내는데 있다.
1)초기 시
주로 자연을 노래하고, 인간과 자연이 평등하게 어울려 사는 속에서 인간의 본성이 밝아지고, 자연의 제 모습이 드러난다고 하는 동양적인 본질에 바탕을 두고 있다. 자연물을 차용하여 자신의 내면세계를 투영하기도 하고, 자연물의 한 부분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금붕어] : 지상의 유폐된 삶은 불교의 광활한 우주와 대립된, 수인 의식으로 변주되기도 한다. 즉 금붕어가 살아갈 공간은 나무, 이슬, 이끼, 호수, 별 등이 있는 드넓은 외부세계이지만, 금붕어는 작은 수족관에 살고 있다. 수족관에 갇혀 사는 금붕어가 유리벽을 쪼는 행위는 현실에 대한 운명의 인식이며, 현상계에 대한 깨달음이다.
그러나 금붕어는 유리벽을 통과하는 빛을 통해 차별의 벽을 깰 수 있다. 그것은 금붕어가 수족관 밖의 꿈만을 호흡하고도 수족관 안에서 살 수 있는 분별을 뛰어넘는 인식, 즉 갇힌 세계와 열린 세계가 우주라는 공간으로 확장되는 인식의 결과에서 얻어진 사유이다. 이와 같이 월하의 시에는 동양적 사유, 즉 노장사상과 불교사상이 짙게 깔려 있다.
[목련꽃] : 인간과 자연의 세계가 동시적으로 표현되는 화엄적 사유 - 즉 한 송이 목련꽃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우주 한 모퉁이에 꽃 한 송이가 줄었다’는 사실에서 독자는 생태적 변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된다.
[유월] : 유월의 햇빛 속에서 자연과 조응(합일)하는 무위자연의 사상이 월하의 간결하고 명징한 시세계를 드러낸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 인위적인 행위가 전혀 없는, ‘유월의 꿈이 빛나는 작은 뜰’이야말로 하나의 사물, 자연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며, 만물이 서로 어울려 있는 세계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2) 말년의 시 세계
[마음] : 있는 그대로 자연을 무심히 바라보는, 절대무심의 하늘을 담고 싶은 마음에는 자연 만물의 생명을 존귀하게 여기는 의미가 담겨 있다.
[샘물] : 물아일여의 상상력이 우주적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다. 시인은 샘 속에서 하늘, 흰 구름, 바람, 그리고 바다처럼 넓어져 우주의 극히 작은 일부분인 샘물이 하나의 우주가 되는 셈이다. 이는 인간이 자연과 분리되어 별개의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의존적이며 자연의 일부로 조화를 이루어 질서 있게 살아가는 모습이 화엄적 상상력으로 그려지고 있다.
[씬냉이꽃] : 월하의 생태 상상력은 그늘 밑에 피어난, 작고 하찮은 씬냉이꽃에서 하나의 우주를 보면서 더욱 깊어진다. 시인의 예리하고 섬세한 눈은 ‘나와 나비, 씬냉이꽃을 우주속의 일원으로 평등하게 인식한다. 씬냉이꽃은 다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임을 체득하는 이 시는 월하 시의 압권이다.
의상대사의 <법성게> ‘한 티끌 속에 세계를 머금었고, 낱낱의 티끌마다 우주가 다 들었네(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 즉 화엄적 상상력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 : ‘나를 세우는 곳에는 우주도 굴속처럼 좁고 나를 비우는 곳에는 한 칸 협실도 하늘처럼 넓다. 나에의 집착을 여의는 곳에 그 말은 바르고 그 행은 자유롭고 그 마음은 무위의 열락에 잠긴다.’ 즉 번뇌 망상, 집착이 없는 마음이 무위의 열락에 도달하는 방법임을 역설한다.
3. 월하의 노장 사상, 불교의 우주론과 연기론에 기반을 둔 무위자연의 생태학적 시적 세계는, 욕망과 집착에 끄달려 불안하게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내려놓기와 비움의 사유를 통한 마음 치유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016.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