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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길을 묻다(전편)

능엄주 2016. 6. 21. 21:54

그날 나는 소설가 동료가 보내온 창작집을 읽을 작정이었다.

쨍쨍 내려 쪼이는 땡볕에 나가기가 내키지 않았고 외출보다는 글쓰기와 독서로 그늘 속에 좌정해야 옳았다.

남편의 항암치료로 지쳐있는 그녀는 바닷가 근처에 황토방을 마련할 것이라며 시급한 사항이니 나에게 동행해 줄 것을 요구했다.


나는 그림 공부를 수년 째 하고 있는 동창 친구와 함께 강화도 근방의 집터를 한 번 보고 온 일이 있었으므로

울며 겨자 먹기로, 아니면 선한 일을 한다는 자부심 비슷한 감정으로 책을 덮고 그녀를 따라나섰다.

일요일 날 가면 화가가 못돼 한이 된 친구가 차로 안내해 줄 거란 내 설득이 아무런 효과를 얻지 못했다.

친구는 텃세 심한 시골에 집을 지으려면 동지가 여럿 있는 것이 든든하다고 젤 먼저 나를 그곳에 데리고 갔던 것이다.


낡아서 구멍이 숭숭 뜷린 나의 하나 뿐인 고물 양산을 펼쳐들고 땡볕의 강행군은 막이 올랐다.

강화행 버스를 타고 인공폭포를 지나 너르고 평평한 김포평야를 달려갈 즈음까지는 활자와의 씨름에 비해 훨씬 유쾌했는데

그것은 내 옆에 앉은 그녀가 쉴 새 없이 내미는 먹이- 초콜릿 아몬드 쥐포 등등의 입맛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길 옆 풀 섶에서 개망초 산나리 구절초 등의 들꽃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유난스러워서 나 역시 시골집을 갖겠다는 결심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친정집이 강화 석모도라는 그녀는 일차 답사과정을 끝낸 나보다도 길눈이 밝은 편이었고, 버스 기사에게 〇〇면 가는 길과 내리는 지점에 대해 묻는 등 열심이었다.

비릿하고 구수한 쥐포를 씹으며 뒷전에서 바라보기만 한 게 화근이었을까.


내려! 그녀의 명령에 나는 허겁지겁 고물양산을 들고 버스에서 구르다시피 내렸는데 그 다음부터는 죽음의 행진곡이었다.

한 번 지나간 버스가 돌아 나오자면 4시간이나 걸린다는 외진 곳에 와서 우리는 그만 길을 잃은 것이다.

금송화와 접시꽃이 흐드러진 어느 양철지붕의 낯선 집에 당도하기까지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새롭게 부각되는 아슬아슬한 순간이 몇 차례나 반복되었다.

그렇지. 내가 기억할 수 있는 6. 25는 염천에 목숨 걸고 걷던 땡볕으로 이어진 공포의 신작로였으니까.


타박타박 걸을 때는 허리에 몸 중심이 실릴 때 얘기였다.

허리 따로 머리 따로, 어깨 따로 몸통 따로, 이처럼 몸의 각 기관 부위가 따로따로 라는 것은 형용하기 어려운 참담한 지경을 말함이었다. 길 물어 볼 인가도 행인도 없는 허허벌판을 두 사람은 허위허위 걸어간 것이다.


0.6의 내 시야에 들어오는 마을이라야 아득히 먼 그림에 불과했다.

핸드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하니 족히 두 시간이 흘러갔고, ‘전설의 고향’에 출현함직한 다 쓰러져 가는 외딴 집에 이른 것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그 이상의 기분이었다.

살았다, 이젠 됐어! 물이라도 마실 수 있으니까.

우리는 빨간 양철지붕의 삐뚜름한 삽작문에 몸을 기대고 악을 쓰듯 큰 소리로 주인장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