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한산 용의 출현을 보러 갔다

능엄주 2022. 8. 29. 23:57

한산 용의 출현을 보러 갔다

 

한산 섬 달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긴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笳)는 나의 애를 끊나니~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시조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장장 7년이나 지속되던  임진 왜란 당시 나라의 존망을 걱정하는 모습이 여실하게 드러난다. 존함 앞에 성웅이란 명칭이 붙은 것은 이순신 장군의 위력, 용맹, 곧 지장智將  덕장德將 용장勇將으로서의 면모를 대변해 준다고 할까. 

 

달빛이 한산 앞바다에 질펀하게 깔린 깊은 밤, 홀로 수루에 올라 나라의 안위와  도탄에 빠진 백성의 참상에 대해 고뇌하고 있다. 충무공의 건강상태가 썩 양호하지도 않았다. 잠시도 쉴 새 없이 적의 동향을 살피고 휘하 수군들이 게을러지지 않도록 훈련에 더욱 힘써야 했고, 각 지방관들이 찾아오면  원하든 원치 않든, 함께 술을 나누며 항전, 전투에 대해 의논하고 활쏘기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한 장소에만 머물러 있는  게 아니다. 수시로 주변 다른 섬에 이동하여  상황을 점검하고, 치열한 전쟁 와중에도 비리를 저지르는 관리를 보면 즉석에서 처형도 했다. 충무공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홀로 계신 어머니의 안부였다. 수시로 사람을 보내거나, 서찰로 어머니의 안부를 확인했고,  아들 염의 병환을 염려했다. 집안 제사나 어머니 생신날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여의하지 않았다. 

 

충무공은 선조의 비호를 받는 원균의 참소로 말미암아 옥에 갇히는 불운을 겪는다. 선조는 어디로 도망갈까, 오로지 자신의 안녕만을 궁리하는, 역대 가장 무능한 임금님이다. 충무공은 전쟁중에 군무를 도외시하고 술타령과 여자에 눈멀어, 시시때때로 이순신을 중상모략하는데만 골몰하는  경상우수사 원균을 증오하지도 않았다. 충무공은 묵묵히 왕의 명령에 따랐다. 국가의 존망이 풍전등화인데 왕의 사고는  고작 한양이 함락되자 평양까지 피난을 가는데 머무른다. 더하여 아예 백성은 팽개치고 국경을 넘어 명나라까지 피난가려고 작정한다. 왕은 저급한  국가관을 가진, 나라도 백성도 나몰라하는 극단의 이기주의자 같다. 

 

'명량'을 보던 당시 나는  한 사람의 관람객으로서 영화에 아쉬움을 느꼈다. 충무공의 분투, 활약하는 모습은 환호한다.단 한 가지  막중한 책임을 떠맡고 있는 장군으로서 심려하는 장면은 한 컷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격전중이라도 단 몇 분이나마 내가 상상하는 지장 덕장 용장으로서의 이순신 장군을 면모를 보여주는데는  미흡했다고 여겼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하면 우리는 제일 먼저 ㅎㄱ교에서 배운대로  '한산섬 달밝은 밤' 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영화에서  단 수초 동안이라도 지장 덕장 용장의 이미지가  융합된 이순신의 소환을 꿈꾸었기 때문이다. 

 

'한산 용의 출현'은 어떠할까. 나는 영화관으로 가는 어두컴컴한 계단을 오르며 기대를 담뿍 품었다. 무엇보다도 전시상황에서는 장군으로서의 이순신 역할이 중요하다. 기왕 욕심을 부린다면 생사가 순식간에 엇갈리는 전투 현장에서조차 인간 이순신의 내면, 참모습을 만나고 싶었다. 분연히 일어난 의병, 승군의 활약상에 대해서, 또한  피난가는 백성들의 적나라한  실상도 몇 장면 보태졌기를  바란다. 

 

우리가 일찍 왔던가. 3층 영화관은 맨 뒤에 아이들과 부스럭거리며 팦콘을 먹고 있는 가족 외, 불과 몇 사람뿐 썰렁하다. 왜적들이 분탕질을 끝내고 유유히 사라져 간, 핏물 흥건한 허허로운 바다가 연상될 정도다. 가을 빛 찬란한 날,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좌우로 시선을 돌려 영화관을 둘러보고나서 중간쯤의 자리에 앉았다. 영화가 시작될 무렵 사람들이 다수 들어오는 기척에 나는 다시 한산섬의 달밝은 밤을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