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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향

능엄주 2022. 8. 12. 20:35

회향

 

오늘이 며칠인지 몰랐다. 며칠 전에 달력을 보긴 보았어도 곧 잊은 모양이다. 아침밥을 먹으면서 갑자기 생각났다. 8월 중순이고 음력으로는 7월 보름이었다. 아차! 나는 얼른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비가 멎어 적당히 서늘해진 날씨에 외출은 큰 부담이 없다. 다만 발가락이 발갛게 부어있어 신경이 쓰였지만 안 갈 수는 없다. 

 

폰에 찍히는 문자 카톡을 보느라 안국역까지 잠깐인 듯 했다.  종로경찰서 담장에는 보라색 무궁화꽃이 막 피어나고 있었다. 애기 감을 무수히 달고 있는 감나무도 있고, 담장이 넝쿨도 어우러져  종로경찰서에서  한 여름의 풍치가 새삼 두드러진다. 

 

조계사가 가까워지자 염불 소리가 들려왔다. 염불소리에  그동안 세속사에 골몰하느라 재를 올려놓고 오지 못해서일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법당안은 물론, 마당 여기 저기에도 수많은 신도들이 의자에 혹은 바닥에  앉아서 염불에 맞춰 절을 하고 경전을 읽고 있다. 나는 발가락을 다쳐 초재 2재를 빼고는 참석하지 못하다가  불현듯 회향하는 날 연꽃이 만개한 조계사에 올 수 있었다. 연꽃이 아름다웠다. 백련은 오직 한 송이였다. 

 

서둘러 부처님께 예배드리고, 향을 피워 올린 후 탑을 돌며 원주 변씨 아버지 영가, 창녕 성씨 어머니 영가, 원주 변씨 큰언니 영가, 서른 여덟에 간 며느리 영가, 그리고 수자 영가를 위해  기도 드렸다.  그런 다음 보고싶은 보살 친구도 만나지 못한 채 도량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굉장한 작가님도 함께 오십니다."

하필 어제 약속이던 것을 내 사정으로 오늘로 미룬 것이 아쉬웠다. 발을 절룩거리면서 안국역으로 달려갔다. 아파있는 오른쪽 세째 발가락이 천천히 가자고 요구했다. 마음이 급했다.  xx사 신도 회장님은 저명하신 작가님과 함께 오신다는데 지각은  안될 것 같았다. 안되고 말고, 작품 70여 권을 쓰신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하셨다. 

 

차장으로 푸른  여름이 펼쳐진다. 왕성한 힘이 전해지는 것 같다. 언제 이처럼 세월이 흘렀던가. 한 주가 다음 주로, 한 달이 다음 달로 순식간에 흘러가 버린 것을 알아차린다.

종점에서 내려 땡볕을 걸어갔다. 친절한 아주머니를 만난 덕분에 헤매지 않고 약속장소를 바로 찾았다. 내가 제일 먼저 도착했다. 인터넷에서 익히 알고 있는 분이지만 대면은 처음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에게 호기심과 기대가 상승한다.

 

불교계의 큰 인물을 만나는 것, 오늘의 회향이 이렇게 마무리 되는 것은 어쨋든 감사할 일이 아닌가. 나는  땀을 들이고  신열을 식히며 차분히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