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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 남해의 고독한 성자

능엄주 2022. 7. 31. 10:21

책속으로 - 남해의 고독한 성자

 

만중은 만기 형과 어머니 윤 부인이 다 함께 외갓집에 살게 되자 나름대로 안정을 찾았다. 그러나 일가친척이 번다한 집안이므로 상사가 자주 일어나 집안이 어수선했다. 만중 4세 때 조부 참판공 김반이 타계했다. 윤 부인에게는 시아버지였다. 참판공은 병자호란이 끝난 직후 만중의 숙부와 함께 강화도에 달려가서 서 부인과 만중의 부친 생원공 김익겸을 애도했다. 황망 중에 시신을 서둘러 수습하여 청라로 가서 임시로 묻고 오지 않았던가. 참혹한 전란에 다행히 살아남기는 했어도 전란의 후유증은 이렇듯 심각했다. 9월에 회덕 정만리에 참판공을 장사 지내고 강화도 함락 당시 자결한 서 부인을 옮기어 한 자리에 같이 모셨다. 만중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사후에 비로소 다시 만난 것이다. 만중의 아버지 김익겸도 같은 언덕에 모셨다.


장원급제 후 5월 1일 만중의 관직은 정6품 전적으로, 성균관에 속하며 학생지도 담당이었다. 5월 22일 정5품 예조좌랑이 된다. 쾌속 승진이었다. 만중은 예악, 제사, 연회, 조빙, 학교, 과거 등을 담당하는 직책을 받았다. 6월 9일 승문원에 분속되어 큰 나라는 섬기고 이웃 나라는 사귀는 외교정책 즉, 사대교린에 관한 문서를 담당한다. 그즈음 만중의 형 서석공은 왕에게 소를 올려 한유한 고을을 맡을 것을 소원했다. 어머니 윤 부인을 편안하게 봉양하기 위해서였다. 서석공의 극진한 효심의 발로였다. 서석공은 맏아들로서 더 높고 좋은 벼슬자리보다도 어머니 윤 부인을 잘 모시고 싶었다. 상감께서 허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쌀을 하사하셨다.

-김만중을 먼저 파직시킨 뒤에 추고하라.
왕은 즉석에서 만중에게 형벌을 내렸다. 파직이 먼저다. 파직을 먼저 시키고 나중 국문을 하겠다는 취지다. 만중이 더 말을 못한다. 만중이 왕 앞에서 오직 나라의 바른 정사를 위해 이치에 닿게, 충정으로 아뢴 대가는 선파후추 형벌이었다. ‘서관’이라는 호칭에서 상감의 분노가 극에 달했음을 알 수 있다. 만중이 물러 나온다. 김만중은 훗날 허적 일당으로 인해서 임금에게 참화가 닥칠 것을 예감하고 있던 것일까. 만중의 말은 누가 들어도 임금을 겨냥한 게 아닐 수 없다. 잘못은 소인인 허적보다 임금에게 있다는 뜻이 아닌가. 왕은 김만중의 직언에 중도를 잃고 있다. 김만중에게 선파후추는 하대, 능멸, 모욕이었다. 또 한 편으로는 모든 신하가 숨죽이고 있는 차에 김만중의 과감한 직언은 많은 신하들의 답답한 심정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청량제가 될 소지도 다분히 있었다.

김만중은 홀어머니를 기쁘게 하는 것이 그 인생의 지상목표였다. 잡다한 세속 일로 그는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어머니 윤 부인을 위해서라면 세상의 무엇도 가리는 바가 없었다. 어려서는 형과 함께 ‘삐약 삐약’ 병아리 소리를 흉내 내어 어머니를 즐겁게 해드렸다. 책을 좋아하는 어머니에게 드리려고 기회가 닿는 대로 역사책 소설책 등을 열심히 모았다. 고사, 이서를 모은 것이 집안의 서가를 가득 채울 정도였다. 그것을 어머니에게 읽어드리고 삼모자 함께 담론을 펼치기도 했다. 만기 만중 형제는 어머니 윤 부인과 함께 가난해도 행복한 유소년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김만중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진다. 참람 바로 그것이다. 그는 선천의 서쪽 변방 귀양살이에서 돌아와 겨우 두어 달 가족과 지냈다. 지금은 최남단 남쪽 변방 남해로 유배 왔다. 남해는 고려대장경 판각지이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전적지 관음포가 있는 역사적인 지역이다. 그래서일까 만중은 왠지 남해가 낯설지 않다. 남해에 도착하여 그는 계속 시를 짓기 시작한다. 그에게 시를 짓는 일은 자기 구원이며 빛이었다.

노도 섬은 큰 섬 남해에 비해 더 궁벽하고 더 적적 막막이다. 전후좌우로 하늘 구름이고 산봉우리였다. 산에는 동백, 유자, 소나무, 대나무였다. 문을 열면 그대로 푸른 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졌다. 잔물결이 이는 바다는 만중에게 한양에서는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아름다운 저 바다의 감미로운 멜로디였다. 갈매기 떼가 바다 위를 유유히 날고 있다. 만중은 갈매기들이 무한 부러웠다. 갈매기들의 자유가 그에게도 주어지기를 갈망했다. 그렇지! 나도 저 갈매기처럼 노도 섬을 발판으로 내 꿈을 활짝 펼쳐보자. 순간 만중의 마음은 창공으로 비상했다. 이전에 머물던 다른 유배지와는 모든 상황이 변했다. 남해 큰 섬에서 나와 작은 배를 타고 푸른 물결을 가르고 삿갓섬이라는 노도로 들어오던 날,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그를 몽환의 세계로 안내하는 듯, 그는 가슴이 자꾸 울렁거렸다.

산수가 어우러져 평화로운 곳으로 노도 섬은 남해 용문산 적소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작은 섬마을에 낮 밤 없는 적요가 사방에 가득 흐르고 있어. 고독의 강도는 남해보다 노도 섬이 훨씬 심하다고 볼 수 있었다. 깊고 처절한 고독은 차라리 만중에게 구원의 기단이었을까. 그는 고독의 끝자락 같은 노도 섬에 이르러 비로소 태풍보다 더 격렬한 심란을 잠재울 수가 있었다. 그것은 그가 소설 구운몽을 저작함으로해서 가능했다.

김만중은 당대 굴지의 문장가이면서 고위급 정치가였다. 굴원은 위대한 초나라의 애국자요, 시인이면서 정치가였다. 이재가 보건대 김만중과 굴원은 비슷한 역경을 겪었고 상통하는 점이 있었다. 만중은 선천에 이어 남해 유배지에 도착하자마자 저작의 큰 꿈을 펼칠 수 있어 고무적이었다. 정비를 내친 숙종대왕의 그릇된 여인 섭렵을 개선해보려고 목적소설 『사씨남정기』를, 어머니 윤 부인을 위해 『구운몽』을 창작한 것이다. 한지에 낱낱이 쓴 것을 한양에 사람을 보내 대량 필사를 맡겼다. 만중은 한시라도 빨리 어머니 윤 부인에게 보내드리려고 서책 한 권을 따로 엮었다. 처량한 지경에 처한 유배객 김만중으로서는 가히 독보적이고 공격적인 저작 행보였다. 이는 곧 김만중의 기적이면서 남해의 기적이었다.

아들이 지은 책을 읽는 동안 윤 부인에게는 서광이 비쳤다. 유배의 척박한 환경에서 노약한 모친을 웃게 만드는 이 소설을 쓴 아들 만중이 윤 부인은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윤 부인이 긴 인생 살아보니 세상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침 이슬 같고 뜬구름 같은 부귀공명에 앞서 마음의 평화였다. 마음의 평화는 고요한 처소와 평온함이 함께 하는 일상이었다. 고요함 속에 있을 때 사람들은 평온해지고, 평온함 속에 있을 때 차분히 앞날을 설계할 수 있다. 평온함과 고요함 속에서 피어나는 생각은 사람들에게 성공의 기회를 제공한다. 만중의 심신은 지금 어떠한가. 고요와 평온을 누리는가. 바야흐로 안정을 찾은 것 같아 윤 부인은 안심한다.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이 소설은 변영희 작가의 장편소설로 『구운몽』의 저자 김만중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저자는 유배지의 극한 상황에서도 삶의 의지를 잃지 않고 『구운몽』을 집필하면서 절망의 상황을 이겨내는 김만중의 모습을 전율이 느낄 정도로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소설은 김만중이 그냥 유배의 삶을 수용하는 단계가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바꾸면서 인간의 존재와 삶이 지니는 가치, 정신적인 의지로 자신의 시간을 채색하며 『구운몽』을 그려내는 장면을 세필화처럼 묘사하고 있다.

유배자의 고독과 곤궁함 속에서도 삶의 성찰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김만중의 몸과 마음, 정신을 그리고 있는 『남해의 고독한 성자』는 병자호란 와중에 퇴각하던 병선에서 태어나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로부터 교육을 받고 자라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을 하며 임금에게 숱한 간언을 하다 유배가게 된다, 강원도 금성, 평안도 선천, 남해의 노도 섬 등, 낯선 유배지를 떠도는 김만중의 시간을 입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유배객 자탄의 정서를 절절하게 나타내면서도 힘든 생활 속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임금과 어머니, 가문 동문에 대한 걱정과 근심으로 잠 못 드는 인간 김만중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궁벽한 처소에서 밤마다 꿈결에 젖어드는 천리 고향길, 꿈결도 고달프고 몸은 고목이요 머리는 쑥대인 채로 한시도 어머니 생각을 잊지 못하고, 어머니가 너무 그리워 초승달 바라보며 밤새 모래톱을 거니는 효자 김만중의 심상과 모습이 뼈에 사무치게 와 닿는다.

작가의 남다른 직관력은 김만중이 남해의 환경과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동네 사람들과 만나고 다른 유배객들과의 문학적 교감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구운몽』이라는 주옥같은 작품을 창조해가는 과정을 몸짓, 호흡 같은 단절의 순간순간을 통해 정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유배지에서 자신의 내면에 관심을 가지고 더욱 더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세상과의 갈등을 구운몽을 통해 조화롭게 해결해 간다. 마침내 성찰과 순명, 그리고 진실의 발견에 이르는 남해의 고독한 성자 김만중의 노정을 구도자의 순례길로 뛰어나게 형상화하고 있다. 그 길은 자칫하면 자기를 잃을 수 있는 무수한 자기 부정과 자기 긍정의 곡절을 겪는다. 마침내 ‘절대정신’의 경지인 ‘구운몽’을 피워낸 값진 ‘순례의 길’이다. 김만중은 그 길에서 자신이 마주한 경지의 순간을 직접적으로 가르쳐주지 않고, 『구운몽』을 통해 간접적으로 깨닫게 한다. 마치 화엄경의 ‘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에게 보살의 행을 묻자, 문수보살이 덕운이란 비구를 찾아가라는 답변과도 같은 것이리라. 이처럼 변영희 작가는 구운몽의 양소유와 성진 그리고 김만중을 통해 우리가 성진도 되고 양소유도 되고 서포도 될 수 있는 몽중몽인이라는 것을 소설 『남해의 고독한 성자』를 통해 알려주고 있다.

소설은 산과 들에서 지저귀는 새소리, 들꽃과 봄빛과 바람, 비가 만들어내는 무지개, 언덕 위의 각양 각색의 생명, 죽림 위의 둥근 달, 몸을 스치고 지나는 맑은 바람소리, 바다를 비추는 노을, 파도 소리와 물결 속에 취해 시를 쏟아내는 시인 가객 김만중의 모습도 기가 막힌 절창으로 풀어내고 있다.

변영희 작가의 장편소설 『남해의 고독한 성자』는 유배지에서 유·불·선 광대무변, 사통팔달 막힘없는 경지에 이른 김만중이 즉신성불(卽身成佛), 즉 자기 구원에 그치는 게 아니라, 어머니를 비롯해 타자(사회성)를 위해 『구운몽』에 이어서 『서포만필』 『선비정경부인행장』을 집필한다. 이처럼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불태우고, 56세에 남해 노도 섬의 외지고 허술한 초옥에서 천상의 흰빛으로 돌아가는 순례의 여정을 아름다우면서도 거룩하게 노래하고 있다.

작가의 말


꿈속의 양소유와 실제의 성진은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구운몽의 저자 서포 선생뿐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독자 또한 성진도 되고 양소유도 될 수 있다. 불가에서 분별심을 버리라는 말씀, 불이(不二)의 가르침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소설의 처음은 강원도 박경리 토지문화관에서 출발하였고, 햇수로는 장장 3년이었다. 지난 8개월여 동안 『남해의 고독한 성자(聖者)』를 지극히 존경하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집중, 집필했다. 초고는 남해 노도창작실에서, 퇴고는 귀가해서 조심스럽게 마칠 수 있었다. 오로지 서포 선생의 전무후무한 충심 효심 문심을 배워 시방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었다. 성자 각자 신선인 서포 선생의 인품은 어느 생애에서도 두 번 다시 만나보기 힘들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또한 서포 선생의 어머니 윤 부인의 모성도 각별히 살펴 부각시켰다. 오늘날 윤 부인 같은 모성을 만나기는 하늘의 별 따기일 것 같다. 서포 선생이 남해 노도 섬에서 세계명작 『구운몽』의 기적을 이룬 데에는 하늘의 뜻과 숭고한 이치가 분명 존재한다고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