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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은 언제부터인가

능엄주 2016. 2. 6. 23:33

저녁 무렵 나는 불광동 시장에 나갔다.

사람들이 어지간히 살 것을 거의 다 샀을 것이라 생각하고 좀 한가하리라 여기고 늦으감치 나간 것이다.

특별히 내가 구입할 물품들이 종류가 많은 것은 아니고 내가 올 설날을 위하여 시장 볼 것들은 국한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며늘아기의 남편, 또한 나의 아들이 대형마트에 가서 이미 시장을 보아 왔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었다.

 나는 설과 추석에 또는 방학때 오는 아들네 가족을 위해서 늘 시장을 보아왔다.


시장은 몹시 붐비고 있었다. 약과나 만두를 파는 가게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이거 직접 빚은 겁니까?"

사람들이 줄서 있는 것을 보고 만두 가게 주인에게 물었다.

"무슨~ 아니예요. 받아온 거예요."

그런데 웬 난리란 말인가. 젊은 사람들조차 자기 손으로 만두 빚기를 싫어해서인가. 아니면 맛있게 보여서인가.

 나는 한참이나  만두가게 앞에 서 있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나는 만두를 사러 나온 것이 아니라 산더덕을 사러 온 것을 생각하고 시장 골목으로 깊숙히 들어갔다.

산더덕은 며느리를 위한 것이다. 우리집에 오면 그녀는 양념하여 구운 산더덕을  아주 맛나게 먹었다.

"어머님! 맛있어요!"

애교있게 예의바르게 인사말도 잊지 않았다.

먹는 폼이 어찌나 탐스러운지 옆에서 보는 사람이 침이 줄줄 흘러내릴 지경이었다.


올 설날에도 나는 당연히 오지 않는  며느리, 생시의 그녀를 떠올리며 산더덕을 사러 간 것이다.

제사상에 더덕 구이를 올리는 집이 있는지, 혹 올려도 좋은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 .

나는 그녀가 옆 사람이 침이 넘어가게 맛있게 먹던 그 모습을 그리며 더덕 가게를 찾아갔다.

 그런데 가느다랗고 연하게 생긴 내가 찾는  산더덕은 없고 굵은 것밖에 없었다. 그것도 단  몇 개만 있었다.

 마음에 썩 들지는 않아도 더덕을 사오긴 사왔다. 그리고 밤이 깊도록 다른 반찬과 함께 더덕구이도 양념을 해 놓았다.

나는 양념한 더덕을 바라보며 마음이 슬퍼지기 시작했다.


"올해부터는 세뱃돈 올려주세요!!"

딸아이는 벌써부터 조카들로부터 그런 제의를 받았다면서 이미 올린 액수를 봉투에 넣어두었다고 말했다.

'세뱃돈의 액수가 올라가는 것만큼 그 녀석들의 기쁨이  커지는 것일까.

세뱃돈으로라도 그들은 허전한 마음을 달래보려는 것일까.

양념한 더덕을 냉장고에 보관하고 주방에 불을 끈다.

서른 여덟 어여쁜 며늘아기의 추억도 냉장고에 가두고 나는 그만 방으로 들어온다.

설날은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 슬픈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