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버리
어리버리
나는 가슴이 떨리고 당황했다. 외출이 오랜만 이기는 하지만 출판사 대표?를 만나는 날이어서 일거다. 조금 신명도 났다. 어쨋든 외출은 즐거운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지하철은 날씨가 풀린 때문에 사람들이 꽤 많은 편이었다. 빈자리가 없다. 밖에 나오니 이렇게 사람들이 활동을 많이 하고 있구나, 나처럼 섬에서 돌아오고나서 집에 붙박혀 지내는 중생은 드물겠구나. 천하에 바보가 '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국역에서 내렸다. 수년을 두고 매일 출근하다시피 다니던 서울 거리, 장편소설 3부작 [마흔넷의 반란], 장편소설 [황홀한 외출] 과 수필집 [비오는밤의 꽃다발]을 창작한, 조계사와 천도교 건물이 있는 그 거리에 사람들이 별로 없다. 지하철은 만원이었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가고 쓸쓸할 만큼 한산했다. 누구나 인사동쪽에서 그집이 그래도 제일 국물맛을 잘 낸다고 인정하는, 그래서 내가 상탈 때 축하해준 친구들과, 또는 소설가 동료들과 즐겨 다녔던 그 식당, 그 거대한 공간을 다 채우던 손님들도 드문드문하고 대체로 썰렁했다.
어이구! 안녕하세요?
우리는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주먹 악수보다 진일보한, 코로나19 발생 전처럼 손을 쥐고 악수했다. 뭔가 대박바람이라도 불어오는듯, 나는 그 출판사 친구를 보자 마음이 기뻐지기 시작했다. 3년 여에 걸쳐 가지가지 고초를 겪으며 쓴 내 소설을 또다시 책으로 출간하는데 대해서 나는 어떤 희망을 품어 보았다. 나는 출판사를 옮겨볼까 생각도 했다. 만약 이번 출간이 내 생애의 마지막 작품이라면 더 유명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출판사로 가고 싶었다. 나는 의리를 지키는 게 옳다 싶었고, 대체로 준수한 평가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더 고려하지 않았다.
나에게 새로운 운기가 싹트는가 싶고, 이제 평화와 안정이 도래하는 것으로 믿고 싶었다. 배가 고프지 않지만 그 집의 국물은 인공조미료가 조금도 들어가지 않은 오리지널이었다. 옆집으로 가서 차를 마셨다. 사람 사이에 믿음이 간다는 것은 행운이다. 그만큼 서로 신뢰를 쌓았다는 증거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시장을 볼 생각이었다. 매일 끼니를 소홀히 했고, 옛날 60년대 벤또 같은 식사를 일삼았으니, 끼니 해결하는 게 고역처럼 여겨졌다. 마트에 들려 몇 가지 봄나물이라도 사오려 했다. 그런데 웬일! 지하철에서 내리는데 갑자기 핑그르르 어지러웠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자욱을 떼어 놓는데 걸음 걸이가 위태로웠다. 아, 이런 게 빈혈이라는 것인가보다. 나는 지하철 구내를 빠져 나오자 로데오 거리의 둥근 의자에 얼른 앉았다. 미련할 만큼 몰두의 세월이 길었고, 자신을 돌보지 않고 방치한 결과였다.
집까지 걸어오는데 그야말로 어리버리, 곧 쓰러질 듯 아슬했다. 귀에서 윙! 하는 소리가 나면서 순식간에 귀가 멍멍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극심한 두통이 일었다. 길바닥에 주저 앉을 수도 없고 어리버리 횡단보도를 건넜다. 아파트 단지로 들어오자 거기 큰 바위에 앉아 버렸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전화를 걸어본다 해도 받을 사람이 없다.
그렇다. 그 시절 그때 나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었다. 대단한 분이 사장님으로 막 취임한, 소공동 소재의 출판사에서 전화가 온 것이다. [마흔넷의 반란] 3권을 한달음에 써서 세상에 내보내고 나서 얼마 후였다.
'원고 있으면 가지고 사무실로 오라!'
나는 그 시절 더할 수없이 무식하고 무지했던가.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그 출판사가 어떤 곳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쪽에서는 내가 아마도 도도하거나 건방진 것으로 알았을 수도 있다. 나로서는 일생의 큰 실수였다.
어리버리는 내가 늘 골골해서 나의 두 아들이 중학생 시절에 나에게 붙여준 별명이었다. 결혼 이후 나는 단 한 순간도 어리버리 그 목록에서 비켜가지 못했다. 어리버리하다가 결국 이렇게 고생하면서, 늦글?을 저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미련했고 융통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꽁생원 기질이었던가. 후회막급이다.
세상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면 합리적인 변명이 될까.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청주가 나를 그렇게 자라도록 방치했나? 학교 생활이나 집안 환경이 결정 장애를 가지도록 억압적이었던가. 한 가지에 몰두하면 다른것은 돌아볼 줄 모르는 고지식, 외골수, 잘 모르면 지인들에게 자문이라도 청해 볼 것이지.
어리버리는 더 이상 용납이 안된다. 바야흐로 나는 택천쾌澤天夬를 꿈꾼다.
"너는 다 갖추었는데 왜 그리 망설이지? 나는 너를 이해할 수가 없어!"
글 쓴다고 작은 가게 하나 없는 외딴 섬에 머물때, 온갖 장아찌를 품격있게 담아 나에게 보내준, 초중고 과정을 일등만 했던 친구의 뼈아픈 충고를 기억해야 하리라.
다 내탓이다. 외부에서 원인을 찾을 필요가 없다. 소극적이고 매사 망설이는 병. 나에게 가장 긴요한 것은 바로 택천쾌가 아닌가. 우선 어지럼증을 해결하자! 며칠 동안 안정을 한 후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다녀올까. 고로쇠물을 음용하러 지리산에 갈까. 칠불사 얘기만 나오면 심신이 함께 들썩거리는 은경엄마를 불러내볼까. 나 역시 집밖으로 나가면 기운이 펄펄하지 않았던가. 나는 안일했고 게을렀어! 핑계도 많고 불평도 많았어. 어리버리는 이제 끝내자!. 택천쾌의 첫 걸음이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