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소원하면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원할 때가 있다.
전혀 터무니 없는 염원이 아니라 이는 오래 전부터 마음에 담아 온, 그 일이 이루어져야만 하는 당위성과 까닭이 분명한,
나 개인으로서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므로 말미암아 절망에서 희망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마음 이동이 신속히 전개되는 그런 일,
2 년 여 전 예쁘고 사랑스러운 애들 에미가 이 세상을 떠난 후부터 웬만한 일로는 전혀 즐거움을 누릴 수가 없었다.
어디를 가도 무엇을 먹어도 누구를 만나도 온통 허망함 뿐이었다.
이제는 그 기억이 차츰 희석되고 많이 잊혀진 것 같은데도 문득 집안 곳곳에서 그녀의 흔적을 발견할 때의 깊은 슬픔과 그 곤혹스러움은
어떤 새로운 일의 성취에 따른 기쁨이 아니고서는 환치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런데 고대했던 그 일이 마지막에 이르러 틀어졌을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 상심과 허탈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를.
그동안 나는
'올해는 문제 없다. 틀림없는 영 순위다.'
기꺼이 추천장에 도장을 찍어 준 분들의 격려와 지지에 힘 입어 몇 개월이나 지루한 판정의 날을 기다리면서도 지레 기쁘고 가슴 설레었다.
되면 졿고 아니면 말고가 아니었다. 된다는 믿음이 확고했던 것은 주변 사람들의 응원과 신뢰에 의해서였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이른 아침의 동료의 전화는 결국 탈락을 알리는 조종이었다.
나는 하염없이 창 밖을 바라보았다. 잎이 다 지고, 그나마 무자격 비 전문가에게 전지를 당해 흉물스런 모습으로 서 있는 아파트 단지의 겨울 나무들, 그 삭막한 모습이 바로 지금의 심상이었다. 위로도 아니고 비아냥도 아닌 전화가 이 저녁 울화를 돋운다.
기회는 부단히 노력하는 자의 것!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온다해도 나는 도전하리라.
후퇴나 낙심은 금물이다.
간절히 소원하면 우주가 우리의 등을 밀어준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묵묵히 PC 앞에 좌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