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측은지심 惻隱之心

능엄주 2022. 1. 12. 09:16

측은지심 惻隱之心

 

"괜찮아요! 우리끼리 남해고속버스터미널에 갈 수 있어요."

"콜 택시 타고 갈 게요. 이 겨울 노도 섬에 큰 공사도 벌였는데 그냥 계셔요."

"그동안 너무 잘 해주셨어요. 우리 가는 것 보시면 더 외로워지실 거예요. 섬에서 그냥 헤어져요."

 

나는 그의 외로움을 이야기했다. 그는 노도 섬의 섬직이, 충직한 일꾼, 관리소장이었다. 노도 섬 언덕바지, 바닷가에 면한 그곳에 레시던스 3동을 지어 입주작가가 섬에 들어오므로하여 그의 일상은 수시로 뒤흔들렸다고 할까. 분주해진 것은 분명하다.

 

"계란하고 두부 좀 사다 주세요."

"싱싱한 야채랑 고구마 좀 사오시면 좋겠어요."

"쌀과 고기가 필요해요. 들어오시는 길에 부탁할 게요."

 

세 사람은 그 나름으로 주문이 있었고, 매번 절실했다. 섬에서 조달할 수 있는 소소한 물건도 섬 주민들은 외지에서 들어온 우리들에게 잘 팔지 않았다. 그냥 받아먹기도 한두 번이지 우리는 번번이 읍내 시장으로 구입하러가야 했다.

 

그는 50 중반의 노도 섬에서는 가장 젊은 주민이었다.  70~90 넘은 노년들이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섬에서 궂은 일 좋은 일 다 알아서 처리해주는 선량한 주민이었다. 게다가 몇 달 전 부터는 세 사람의 작가가 입주하여 시시때때로 주문 사항이 많았다. 먹이 구하는 일 뿐 아니고 수도가 고장났다. 세탁기가 이상이 있다. 수질이 안 좋다. 실내 비품이 필요하다 할 경우에도 그는 호출되어 뛰어왔다.

 

노도 섬에 온지 한 달 이상 경과하자 입주작가들은 남해 문학기행에 대해서 논의가 분분해졌다. 필히 군청 담당자의 허락을 받고 남해에 깃든 서포 선생의 발자취를 찾아가게 되었다. 그때마다 그는 자신의 차로 우리를 섬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야했다. 그는 한 쪽 다리를 조금 저는 모습이었다. 나는 처음 노도창작실 입주식이라는 의식을 치르던 그날 바로, 그의 다리에 이상이 있음을 눈치챘다. 나는 굳이 문학기행이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나갔다 들어왔다 움직이는 게 나의 장편소설 작업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듯했다.

 

단체활동이라는 명칭으로 참여했고, 경치 좋은 남해 일대를 돌아보는 재미도 더러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미안하고 신경이 쓰였다. 노도 섬에서 태어나 성장한 후 도시에 나아가 사업을 크게 하다가 귀향했다는 그는, 사업실패로 아내가 떠나고,  90이 훨씬 넘은 노모와 단 둘이 살고 있다고 했다. 그도 작가들과 모처럼 자신의 고향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겠지만 나에게는 그 하루가 더 고되고 시간 낭비로 보였다. 글을 쓰는 중에 인터넷으로 참고해도 되는 사항이었고, 다 쓴 다음에는 확인차 둘러보면 될 것으로 여겼다. 그렇게 여러 차례 그의 차를 이용했고 그때마다 그는 친절한 안내자로 우리와 함께 했다. 

 

우리가 영영 이 섬을 나가는 날, 그는 뱃전에서 손만 흔들어주면 될 것이었다. 그는 또 택배 하고 남은 우리가 들고가야할 짐을 차에 실었다. 고속터미널로 가는 중에 읍내에 내려 다같이 점심식사를 했다. 그리고 우리는 남해버스터미널에서 그와 헤어졌다. 서울행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지켜보다가 발걸음을 돌리는 그에게 우리는 다만 마음속으로 감사를 드렸을 뿐이다. 정이 많고 선량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보다 더 진정성있게 우리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봉사했다고 평할 수 있다.

 

내가 집에 돌아온지 오늘로 사흘 째다. 연일 영하 14도에 빙판도 있고, 치과와 정형외과에 갈 수가 없다. 나는 왜 노도 섬 레시던스에 머물 때보다 더 내 몸이 아픈가?를 생각하다가 그가 아픈 다리로 우리의 무거운 짐을 일일이 들어주고 옮겨주던 그의 몸 상태를 기억했다. 노모가 나이 많아 식사 준비도 제대로 못 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함을 잃지않고 아무런 내색없이 노도 섬 전체를 위해, 더구나 노도 섬의 임시 거주민이었던 우리들의 불편을 해소시켜 주기 위해 노고가 많았던 그에게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궁리한다.

 

"100일 동안 노도 섬에 들앉아서 쓴 엄마 소설이 빛나면 돼! 엄마 아픈 몸도 그때 씻은 듯이 다 치유될 거야."

 

항상 배포 큰 소리로 자신의 입지?를 굳히는 딸은 말했다. 

 

'너는 모른다. 부자유한 몸을 지닌 사람의 심정을, 그는 우리가 노도 섬에 머무는 동안 우리에게 최고의 가장 좋은 인상을 남겼어.'

 

이런 내 마음은 단지 측은지심에만 머무는 것일까. 미안함과 고마움을 아는 염치에 불과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