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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곡할 노릇

능엄주 2021. 11. 13.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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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곡할 노릇

 

귀신이 곡할 노릇이 무슨 말인가. 귀신이 있기는 있는가. 귀신이 있다면 형체가 있는가 없는가.

전에 TV프로에 '전설의 고향'이라는 게 있었다. 그리고 '납량특집' 이라는 것도 더러 시청한 일이 있다. 그 프로에는 소위 귀신이라는 것이 자주 출연했다. 대개 여자 형상이었다. 

 그 여자 형상의 귀신은 긴 머리채를 늘어뜨리고, 아래 위 흰 옷을 주로 입었으며, 얼굴은 정확하게 윤곽이 나타나지 않았으나 사람 형상은 맞다. 혹은 기괴한 울음소리를 낸다든지, 자취도 없이 홀연히 등장했다가 소리소문없이 스르르 한 순간에 사라지곤했다. 그런 귀신의 출현은 보는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주었다. 공포감은 공포감이고 재미는 따로 있었다. 귀신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귀신이 왜 곡을 한다고 할까. 서럽고 억울해서인가. 살아있을 때 당한 파란때문인가. 귀신이 곡을 한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장면, 이야기 감은 못된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죽어 귀신이 되어서까지 곡을 할 지경이 되는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귀신이 곡한다는 말은 또 다른 면으로도 자주 사용된다. 살아서 원통한 일을 당한 것과  같은 느낌을 갖게하는 그런 의미보다는 무엇인가 갑자기 없어졌을 때. 번쩍 나타났다가 눈 깜박할 사이에 사라졌을 때, 사람들은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이 순간 '귀신이 곡할 노릇' 이 말을 사용하는 게 이상하거나 예외가 될 까닭은 없는 것일까. 과연 내가 바른 의도로 이 말을 인용하는 것인가, 한 번 돌아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오늘 새벽 나는 무척 한기를 느꼈다. 지난 밤 날씨가 추워지는 기미여서 방 보일러 온도를 조금 높여 놓고 잠들었다. 새벽 4시에 깨어나니 온몸으로 한기가 막 쳐들어왔다. 포근한 이불을 덮고 잠을 잤는데 오늘 새벽은 여간 떨리는 게 아니었다. 어깨도 발도 다 시렸다. 거실로 나오니 거실은 더 싸늘했다.  이 한기가 웬일이지? 갑자기 추위가 닥친 것인가?  TV 뉴스를 전혀 안 보니 일기예보도 깜깜하다. 노도 섬에 머물면서 처음 한기를 경험하는 것이다.

 

책상으로 와서 노트 북을 잠시 열고  '천뢰무망' 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글을 수정하려고 블로그를 잠시 열은 것 같다. 수정을 하고 <완료>를 누르지 않았던가. 바로 전에 쓴 [감 풍년] 그 글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고1 소녀들이 충청북도 청주시 변두리 가덕, 홍강이네 집에 가서 바지랑대를 쳐들고 동네가 떠나가도록 깔깔대며 감을 따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  내가 쓴 [감 풍년] 은 남녘의 산타클로스를 등장시킨 짧은 읽을 거리였다.

 

내 실수겠지. 무슨 귀신이 곡을 하냐?  그렇게 생각을 하기는 하지만 참으로 이건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 글을 쓸 때의 감정을 다시금 되살릴 수 없으니 귀신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 아니겠는가. 찾아보기에도 없고, 한글  문서에도 없는, 언제나 블로그에 뚝딱! 한 순간에 써 버릇하니 다른 데서 그 글을 찾을 길은 없어 보인다. 

 

그놈의 한기 때문이었다. 감기가 엄습하는 기미여서 약을 먹으려면 필히 밥을 먹어야하니 라면이냐 누룽지냐를 놓고  허둥거리다가 '완료' 와 '저장'을 깜빡한 것 같았다.  '그것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니라 이쯤 되면 文苑 선생이 곡할 일이었다.  하루 종일 기분이 별로에 머물고 있다. 차라리 밖으로 나가 바닷바람이라도 쐬고 오자! 한기도 감기도 물리치고 씩씩하게 집밖으로.

 

나는 한기에  실제로 당황했다. 노도 섬이 외딴 섬인 관계로 누구든 병이 나면 헬기가 떠야한다는 이곳 관계자의 말을 너무나 곧이곧대로, 순진하게 가감없이 받아들어서 이런 사단이 난 것이 아닌가. 나는 오직 나의 배포 작음을 한탄해야 할 것이었다. 차라리 이 참에 [감 풍년]이 어휘 풍년,  문장 풍년, 나아가 행복 풍년이 되어주면 더욱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