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내 풍경
읍내 풍경
" 아이구 이모! 안 돼, 안돼요! 계란만 갖고 안 된다고요!"
玟이가 펄쩍 뛰었다.
"내일 첫 배타고 나가서 집에 가려고 해. 아무래도 병원에 가야할 것 같아."
"아니야 이모! 병원 갈 필요 없어요. 이모 내가 보니 영양 결핍이예요. 단백질 부족."
"나 편안해! 먹고 싶은 것도 배고픈 일도 없어."
"이모! 머리카락이 주먹으로 빠진다며?"
"그래서 병원 가려는거야. 나 이런 일 첨 본다."
"이모! 병원은 왜 가? 이모 아픈 데 없잖아요. 병원가면 여기저기 검사하고 약을 줄 건데 피부과 약 너무 독해요. 큰 병원 은 하루 이틀 다녀서 될 일도 아니예요. 내가 보니 이모 단백질 부족이거든, 단백질 부족해서 머리 빠지는 거예요. 당장 고기 사러 가요! 생선도 좋아요. 한 번 먹어서 되는 거 아니니까. 듬뿍 사다놓고 집중적으로 먹어봐요. 머리카락은 단백질이 필요하다고요. "
병원에 가겠다는 나에게 간호학을 전공한 珉이가 강력하게 단백질 부족을 선고했다.
"이모! 머리 그거 그냥 두면 골다공증으로 가요. 골다공증은 넘어지면 그대로 영 가버리는 거라고요."
珉이는 더 위험한 소리로 나를 다그쳤다.
나는 엊그제 마침 읍내 간다는 주민을 따라서 큰 맘 먹고 8시 첫배를 타고 읍내 미용실에 갔었다. 밤새 잠을 못자고 고민 했다. 머리카락 때문이었다. 볼일은 그거 말고도 더 있었지만 나는 미용실이 급했다. 너무 이른 아침이어서 두 시간여를 읍내 거리를 배회했다. 두 시간 기다림으로도 모자라는 미용실 간판이 있었다. 미용실은 코로나19 때문에 12시 이후에 오픈한다고 써붙인 곳도 많았다. 나는 반들반들 빛이 나고 청결해 보이는 남해 읍내 거리를 오르내리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는 곳이라고는 지난 봄 또 다른 조카와 현장답사 왔을 때 일박한 적이 있는 맨하탄 숙소 근처 남해읍의 명동이랄 수 있는 큰 거리였다.
바닷가보다는 덜하지만 읍내도 이른 아침 바람은 찼다. 나는 다리를 쉴 겸 햇살 바른 길가 바위에 앉았다. 사람들이 거리로 많이 나오기 시작할 때 한 미용실이 문을 열었다. 나는 사정을 이야기했다. 깔끔하고 정돈이 잘 된 미용실이었다. 미용사는 내 머리 피부를 헤쳐본다.
"이 머리는 손도 댈 수 없어요. 만지지도 않했는데 막 손에 묻어나는데요. 이 정도면 얼른 병원에 가보셔야 해요."
예쁘고 어려 보이는 미용사가 나에게 미용 가운을 입히지 않았다. 그냥 가라는 얘기였다.
"이대로 두시면 나중에 손도 못 써요.."
나는 겁에 질려서 다른 볼 일을 생각도 못하고 맥없이 섬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일단 집으로 복귀할 생각이었다.
지난 여름 내 얼굴(볼)에 괴상한 날벌레가 둥지 틀고 알 까고, 그래서 헐고 진물나고 괴롭던 그때, 나는 대학병원에 가서 레이져 수술을 받았다. 벌레집을 부수고 연고와 의료 테잎으로 여러 날 견딘 후 왼치되었다. 1cm도 안되는 작은 상처때문에 나는 수 차례 병원을 드나들어야 했다.
올해는 왜 이렇게 기이한 일이 생기나? 하긴 여기 온 이후 밥을 제대로 먹은 기억이 별로 없다. 입에 잘 대지 않던 컵라면으로 적당히, 초라하게, 그것도 노상 앉았으니까 일어선 채로..... 나는 '굳세어라 금순이 시대'로 환원한 듯 한 달 이상을 그렇게 지내오지 않았던가. 그래서일까? 그렇다면 珉이 말이 옳은 것인가?
딸이 전화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현재 상황을 말했다.
"환절기라 많이 빠지는거야. 나도 많이 빠진다고."
"글쎄, 보통 빠지는 정도가 아니라니까. 가을 산에 솔잎 날리듯 푹 푹 내려 쌓인다고."
" 엄마는 한 번 앉으면 일어나지를 않으니까 그럴지도 몰라. 산책도 하고 좀 쉬어가면서 글을 쓰면 괜찮을 거야."
"일어나지 않기는, 나는 ' 매일 서포의 책'으로 걷기도 나가고, 아침 저녁 국민보건체조도 열심히 한다고. 지가 안 당해 보니까 맘대로 지껄이네."
"엄마가 서포 선생 쓰러 갔으니까 서포 선생을 겪는 거야! 엄마는 오직 김만중만 생각해!"
아무리 얘기해도 내 입만 아팠다.
유난히 깨끗하면서 안목있고 수준 높게 느껴지는 읍내로 고기를 구입하러 다시 나가보는 것인가. 한 눈에 보아도 어느 도시들 보다 공기 해맑고 남쪽 지방의 색다른 식물들로 환경정리가 잘 된 거리풍경이었다. 미국의 아들이 귀국 하면 이곳에 자리잡도록 내가 실험적으로 한 번 살아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도 나이 더 먹으면 별 수없이 고국이 그리울 것 아니겠는가. 머리카락 근심을 해소하기 위해 고기를 구입하러가는 것인데 아들의 미래 귀국까지 염두에 둔 외출이 될 것 같다.
珉이 말대로 읍내로 고기를 사러 나가야하나? 고기먹고 머리카락을 붙잡아야 하나?
12시 배로 나가볼까? 그러나 배에서 내려 한 참 걸어야 한다는데, 버스가 금방 연결이 안된다는데 어쩌면 좋을까. 배 시간과 버스 시간이 서로 안맞아서 반드시 택시로 움직여야 한다고 옆 방 작가가 알려주었다. 생소한 길, 어떻게 택시를 타?
나는 머리가 왕창 뽑혀 나오니 기분이 다운되고 많이 슬펐다. 심란스러워서 차분히 작업을 진행하기도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엊그제 내가 본 이른 아침의 읍내 거리는 상당히 정답고 친화적이었다. 우선 사람들이 모두 건강해 보였으며, 여인들의 머리도 하나같이 풍성한 것이 내 눈에는 여자들의 숱많은 머리만 잘 보였다.
가보고 싶고, 걷고 싶은 정결한 거리, 가을의 맑은 바람까지 더 보태진 읍내는 아름다운 남국의 거리 풍경을 연상하게 했다. 이곳을 좀 더 잘 가꾸면 캐나다 나이아가라 해변의 별장지대처럼 환상적인 명소가 될지도 혹 모른다.
머리카락 때문에 읍내를 또 나가야 하나? 혼자 배타고 택시타고? 나에게는 만만치 않다. 글쓰기, 자료 섭렵, 현장 답사, 식사 문제 등, 내가 건너야 할 산맥이 여러 개가 있다. 그러나 사정이 급하다.
아! 그렇다. 출타한 1호 시인이 섬으로 돌아올 때 고기를 사오도록 부탁하자!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미안해서였다. 그러나 이건 매우 현명한 결정이었다. 나는 솔직히 배로 바닷물을 건너는데 대해서 겁이 많다. 또 나가서는 어디로 가야할 지도 감감하다.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이곳에서 나의 행동반경은 쪼그라든 셈 아닌가. 나는 읍내로 나가려는 마음을 누르고 1호 시인에게 카톡을 날렸다.
돌아오는길에 마트에 들려 고기를 듬뿍 사오도록! 머리카락이 뭉턱 빠지므로 고단백이 절싷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