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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반찬

능엄주 2021. 10. 24. 22:07

시장이 반찬

 

요즘 입이 변했다. 맛이 변했다. 집에서는 라면 한 젓가락도 버겁더니 라면이 지금 제맛이 난다. 

제 맛이 아니라 시장이 반찬인가. 나는 매일 라면을 먹는다. 읍내 시장으로 한 번 나가보자. 그 생각만으로 한달이 다 돼 간다. 읍내 시장에 싱싱한 생선이 많이 나온다는데~ 나는 바지락, 모시조개, 홍합을 사고 싶다. 지금 많이 피곤해서  백합 조개국을 끓여먹으려고 한다. 오래 전 나는 섬진강 제첩국을 먹으면 기운이 생기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가는 길을 모르는데 누구하고 가나? 

 

여기서 배를 타고 벽련碧蓮항에 다달아서 택시를 타고 가면 갈 수 있을까. 나는 왜 이렇게 겁이 많을까. 자랄 때 무심천 냇물만 보다가 난데없이 앵강만 바다를 눈시리게 보아서일까. 하긴 전에도 나는 바다가 무서웠다.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 때 개설한 임간학교에서 명암방죽에 멱 감으러 간 게 전부다. 수영도 할 줄 모른다. 친구들 하고 풀장에 가면 나는 저만치서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옷을 훌렁훌렁 벗는 것도 딱 질색이다. 저녁마다 동네 사람들이 무심천에 멱 감으러 가도 우리집 식구들은 아무도 가지 않았다. 어머니가 뒷꼍에  목욕탕을 지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공동탕을 잘 가지 않았고 나는 더구나 밤중에 개울에 가는 건 생각도 못했다.

 

바다를 보면 시원하고 마음이 넓어지는 것 같지만 나는 냇물 아닌 큰 물이 무섭다. 

어떤 명리학 박사는 나에게는 물이 필수 요건이라고 했다. 하다 못해 물 水자가 들어간 동네에 살아야 운이 핀다고 했다나는 현재 우룰 井자가 있는 마을에 살고 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집을 구하다보니 마을 이름도 예쁘고 그리되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혼자서 배를 탄다는 건 상상이 안된다 . 까짓 10분이면 벽련항에 도착한다고 하는데 못 갈게 없지. 하지만 나는 쉽게 외출을 못한다. 다음 화요일은 한 번 단행해 볼 생각이다. 아마도 코로나19로 오랜동안 실로 다리를 꽁꽁 묶인 잠자리처럼 밖에 나다니기를 중단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더 큰 이유라면 내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일이 쉽게 진척이 되지 않는, 그게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 구운몽이 평안도 선천에서 제작된 것으로 공부했는데, 여기서는 그게 아니었다. 논문도 소설에서도 남해로 획신하고 있다. 남해로 지정하고 보니 와그르르!  내가 쌓은 문장 벽돌이 무너지고 여간 소요스럽지 않다. 

 

리모델링이 신촉보다 더 까다롭고 힘들다. 머리칼이 뭉턱뭉턱 빠져 가을 산에 솔잎 날리듯 한다. 이거 큰 걱정이고 명확한 외모 손실이다. 머리꼭지에 불같이 열이 난다. 이 열불에는 부채도 에어컨도 소용없다. 나는 지금 함정에 빠진 기분이다. 솔직한 내 심정이다.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여길 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큰 오류를 범할 번 했지 않은가. 오게 돼서 천만 다행이다.

 

나는 잘 하고 있다. 집중력 있고, 주의력 넘치게 깔고 앉아 있다. 나는 나름 기도하면서 중분히 검토하고 보완과 수정에 박차를 가한다. 기도를 하는 것은 무소불위 전능자에게 빌기보다 나 자신을 절제하고 중심을 잡는 방법이다. 나는 잘 할수 있으며 잘 하고 있다.

 

라면에 나는 김치보다는 조개 종류를 넣고 끓이는 게 더 개윤하다고 여긴다. 그렇다면 나는 수일 내에 특별히 용감해져야한다. 누구를 의지하거나 무엇을 사오라고 믿고  맡길 사람이 여기 없다. 라면이 먹기 싫으면 다른 걸 사올 수도 있다. 나는 시장이 반찬이란 말을 별로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시장이 반찬이라기보다 울며 겨자먹기이다. 참 딱하게 되었지만 부끄러울 것은 없다. 내가 그냥 용기만 조금 내면 문제는 해결된다. 새로운 시장 풍경, 색다른 경험을 가지게 되는 장점도 있다.  다음 주에는 내가 필시 용감해지리라는 확고한 기대로 마음 설레인다.

 

 '시장이 반찬' 나는 반드시 시장해서만 식사를 하고 있는 건 아니다.  내  신체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다. 나는 살아남아서 멋진 작품을 생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바야흐로 용기를 낼 것이다. 배를 타고 그리고 최초로 읍내에 나가 보는 일, 나는 이 밤 가슴이 다 떨린다. 현재 '시장이 반찬'인  나의 라면 식사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과제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