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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돈이 돼?

능엄주 2015. 12. 29. 23:18

오랫동안 소식이 끊어졌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른 아침부터 나는 여름 낭송회에 보낼 원고를 선별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책과 원고들을 밀쳐내고 얼른 전화를 받았다.

"오랫만이다. 네가 하도 소식이 없기에 나는 이민 간 줄 알았어!"
반가운 나머지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근 3년 만이었다. 충남에 있는 사찰에 다닐 때만 해도 우리는 자주 고속터미널에서 만나 함께 철야기도며 입시기도에 동참하기도 했다.그 무렵 밤하늘에는 별빛이 총총했고, 법당에 앉아 내려다보는 저 아래 세상은 한없이 아름답기만 한 시절이었다.우리는 정해진 기도 시간 외에도 근처 산을 오르며 아이들 이야기와 남편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졌다.

-지금도 너 글 쓰니? 근데 왜  목소리가 그리 급해?
친구의 두 번째 말은 조금 뜨악하게 들렸다. 너무 오랫만이어서 각자의 정서가 경직된 면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뛰어다니거나 걸음을 걷고 있던 것은 아닌데 왜 내 목소리가 친구에게 급하게 들렸을까. 아마도 그것은 내가 어떤 일을 진행하려고 할 때의 긴장감과 속도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무슨 일이건 시작하면 그 자리에서 결말을 보고마는 불같은 성격, 이를테면 이거다! 하면 사그리 밀어부치는 형이기 때문이었을까.그러다 보면 자연 마음이 급해지고 모든 신경이 한 곳으로 집중되기 마련이어서 목소리에 속도가 붙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야. 하는 일 없고 다만....'
나는 말을 꺼내다가 이상하게 움츠러드는 것을 느꼈다.내가 생각하고 있는 일이거나 현재 진행하고 있는 일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기가 주저되었다. 왜냐하면 그건 질책도 아니고 핀잔도 아닌 그 무엇. 혹은 경멸이나 무시 같은 감정을 이전에 다른 누구도 아닌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느꼈기 때문이다.

"나 지금 여름 낭송회에서 낭독할 원고를 고르고 있었어."
라고 시원하게 터놓게 되면
-그거 돈이 돼?
라는 질문이 돌아올 게 명약관화했다. 화살처럼 신속하게.
전화한 친구가 꼭 그렇다는 게 아니라 나는 그동안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그와 같은 모멸에 가득찬 질문을 받아왔다.

-그거 돈이 돼?
어느 장소를 가건 누구를 만나건 대부분 그런 식이었다.
어찌 모든 생명의 일상적인 활동을, 자신에게 즐겁고 유익한 일의 성과를 오로지 돈과 연결시키려고 하는지 그 저의가 헤아려진다. 시대가 그러니까 라고 쉽게 시대탓으로 돌릴 수도 있지만 번번이 당하다보면 나 자신이 왜소해진다.

친구는 막내 딸의 결혼청첩장을 나를 직접 만나서 전해줄까 우편으로 보내줄까를 물어왔다. 일간 한 번 만나서 식사를 하자는 내 말에 친구는
-글이나 잘 써!
라고 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모처럼 전화를 했는데 내가 원고를 찾고 있다는둥 낭송회 어쩌고 하니 이제는 소통조차 어렵게 되었다고 판단한 것일까. 아직도 철이 나려면 멀었군 하면서 자조한 것일까.

나는 전화기를 붙든 채 한참동안이나 멍청히 앉아있었다. 멍청한 게 어디 어제 오늘의 일이랴. 하지만 나는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오더라도 사과나무를 심을 것이다' 더하여 지금껏 묵묵히 해오던 멍청한 일도 당장 그만 두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다짐했다.

-그거 돈이 돼?
친구의 말은 결코  이보다 못하지 않은 어투였다.
그래. 돈도 명예도 다 될 수도 있어. 그러나 내가 원하는 그 세계는  훨씬 먼 곳에 있어. 보통의 안목으론 넘겨다 볼 수 없는 사차원 오차원의 세계에, 아니 6차원의 신비한 그 높이에.

나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 일에 열중한다.
-그거 돈이 돼?
인생이 어찌 돈으로만 환산될 수 있겠는가. 21세기를 온통 혼미의 와중으로 몰고가는 천박한 물신주의 유령이  문제인가.
친구의 전화는 씁쓸함 뿐이었다.


임병문   11-06-02 16:21
변영희 선생님,
선생님의 문학적인 감성은 상업적인 것을 떠나서 학문과 인성이 결합된 道樂에 근거하거늘,
거기에 " 그거 돈이 돼니? " 하고 묻는 것은 참으로 난처한 일이군요. 그들이 어찌 食道樂외에
문학의 道樂을 알겠는지요. 피차 웃고 마는 것이 속편할 따름이겠지요.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변영희   11-06-03 07:48
선생님

문학적 감성이 아니라 <상 노가다.>죠.
매사 경제논리 아니면 먹혀들어가지도 않는 현실인데
일용직 근로자처럼 뛰고 있잖아요.
고맙습니다. 좋은 글 생산하시면서 행복하세요.
이희순   11-06-03 09:15
그거 확실히 돈 되는 일이지요.
오직 자신의 배를 위하여 물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합니다.
그들은 물질적 만족과 육신의 쾌락을  추구하지만
선생님은 인생들의 마음의 양식이 되는 값진 보화를 만들어내고 계십니다.
그러니 정말 돈 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부디 건강하신 가운데 좋은 열매 거두시기 바랍니다.
     
변영희   11-06-04 06:48
선생님 안녕하세요?
사진과 글로만 뵙다가 댓글로 만나뵙네요.
이게 댓글이 말이죠. 수필작품하고는 달라서 순 맨살이 드러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상투적 의례적 그런 게 용납안되는. 그래서 타인의 글에서도 조심이 되었어요.
고맙습니다.
김창식   11-06-03 19:22
그거 참! 제게도 그렇게 물어오는 친구들 간혹 있습니다.
그러고 나선 서로 연민으로 쳐다봅니다, 코드가 안 맞으니...
변영희 선생님께서 어떤 느낌이신지 알 듯도 합니다만.
     
변영희   11-06-04 06:55
<토지문화관>에서 [대산 문화] 라는 잡지, 아마도 교보문고에서 나오는 것 같은데요. 1년 구독료도 저렴하고 읽을 거리가 아주 풍성해요. 그리고  평론가이면서 시인이 쓴 [풍경의 탄생] 은 거의 열광해서 읽었지요. 515페이지의 두터운 평론집인데 우리시대 드물게 정직한 평론가를 만난 것 같네요. 더 큰 소득?이라면 박경리 김지하로 연결되는 생명사상이랄까요. 위대한 새 아침을 맞이한 듯한 감동의 나날입니다.
김용순   11-06-03 20:46
변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글로서 인사드립니다. 지금은 유, 무형의 모든 것들이  경제와 연결되어, 예술의 가치도 돈으로 환산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러고 보면, 나도 돈 안되는 헛일만 하고 있는 셈입니다.
     
변영희   11-06-04 07:02
안녕하세요?
요즘은 요, 예술이 아니라 돈술인 것 같습니다.
모든 게 돈, 돈, 돈 하면서 이갈리게 떠들잖아요.
사람이 육으로만 된 것이 아닌데 정신이나 영혼의 문제는  관심도 없고 완전
괴물의 왕국이지요.
'문화'라는 말이 질펀하게 흘러넘치는데 정작 문화는 증발ㅎㅎㅎ
제가 동문서답했나요?
선생님. 좋은 글 열심히 쓰시기를.
최복희   11-06-06 23:05
잠시 마음 상하셨겠어요.
하지만 우리는 마음의 부자가 아닐까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우리 끼리라면 언제 어디서 만나도 할 말이 많고
함께 있으면 행복한데 말입니다.ㅎㅎ
공감 가는 글 잘 읽었습니다.
변영희   11-06-11 07:13
상하기는요. 뭐 그렇죠.
각자 인생관 가치관이 다른 거니까요.
답장 늦어 미안합니다.
몸이 고장나서 좀 헤맸습니다.
병원에 돈 퍼다주느라고ㅎㅎㅎ
24일 날 예쁜 모습 기대하며
박원명화   11-06-14 09:48
그곳에서 생활을 하시면서 좋은 추억을 많이 담아 가지고 오실 것 같습니다. 박경리선생님의 영혼의 소리까지,....마음속에 심어 오신다면 최고의 소설을 쓰게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영혼의 맑은 피를 수혈하는 문학적사상을 어찌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의 글에서 많은 공감을 느낌니다.
변영희   11-06-15 09:45
雨竭堤陽諸草多色
送君南浦에動悲歌
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 沾綠波

더는 생각이 안 나는데요
오늘 아침 이곳을 떠나려하니  뭉클한 감회가 차 오릅니다.
대부분 적어도 두 달에서 석 달은 머무는 모양인데 이 몸은 이곳 영험한 오봉산  자락 평화의 聖地, 문학의 산실에  더 오래 머물수가 없군요.다음을 기약하고 일단 하산을.
과거시험 보듯 쉬지않고 독서와 글쓰기에 정진했다는 뿌듯한 자부심은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서울 가서 뵙지요.
일만성철용   11-06-18 12:52
오랜만에 변작가를 여기서 글로 봅니다. 한동안 이 사이트를 탖지 못했거증요.
저도 어떤 때는 밤으 새워 글을 쓰는데 아내는 내 독자가 아닌 지 10여 년을 넘었어요.
'돈도 생기지 않는 일에 저렇게도 열중할까'
아내에게 나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는가 봅니다.
변영희   11-06-21 08:05
성철용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이 오신 줄도 모르고 저는 죽자사자 앓았네요
숱한 시간 흘려보내고 겨우 저의 자리로 돌아오니 할 일이 그렇게도 많군요. 그 일이 즐겁도 하지만 가끔 몸져누울 때가 많습니다. 세상이 그만 끝나는 줄 알았지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